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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FA 대박으로 재조명 받는 스포츠 중재 시장] 한국판 스콧 보라스(미국 유명 스포츠 에이전트) 나올까?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스포츠 강국이지만 선수·구단 중재 시스템 미비… 올 연말 에이전트 제도 도입 가능성 커져

▎이대호가 4년간 150억원을 받기로 하고 롯데 자이언츠에 돌아왔다. 7000만원 금액 차이 때문에 구단과 다툼으로 연봉 조정 신청을 했던 과거 사례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150억원 vs 7000만원.

앞의 150억원은 미·일 프로야구에서 뛰던 이대호 선수(이하 선수 생략)가 올해 자유계약(FA) 선수로 한국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돌아오면서 받을 4년 총액 보수(연평균 37억5000만원)다. 한국 스포츠 역대 최고액으로 FA 100억원(4년) 시대를 열었던 최형우(삼성→기아)보다 50% 많다.

뒤의 7000만원은 2010년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으로 최우수 선수(MVP)에 오른 이대호와 롯데 사이를 벌어지게 한 금액이다. 이대호가 이후 해외 진출로 눈을 돌리게 한 결정적 계기다. 이대호는 당시 구단에 2011년 연봉으로 7억원을 요구했으나 구단에서는 6억3000만원을 제시했다. 7000만원 차이로 이대호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연봉조정위원회라는 스포츠 중재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연봉조정위원회는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KBO 연봉 조정위원회는 “이대호의 기록이 본인이 주장한 7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데 대해 조정위원 모두가 공감했지만, 이대호의 고과 평점에 따른 활약과 구단 내 타 선수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했을 때 구단이 제시한 6억3000만원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측이 제시한 타구단 선수와의 연봉 비교에 대해서는 연봉 고과 시스템이 구단마다 달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데 무리가 있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았다”며 “향후 조정위원회에서는 타구단의 연봉 비교 자료를 제출받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대호의 FA 150억원 계약으로 과거 7000만원 때문에 발생한 연봉 조정 논란이 후폭풍처럼 커지는 양상이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35년 역사를 통틀어 연봉 조정 신청에서 승리한 선수는 2002년 LG 트윈스 유지현이 유일하다. 그동안 100명 가까이 연봉 조정이란 절차의 문을 두드렸지만 구단을 이기지 못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스포츠 시장에서는 연봉 조정을 중심으로 공정한 스포츠 중재 시스템의 활성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과거 이대호의 사례처럼 터무니없는 연봉 조정 결과로 팬들의 불만을 사고 있어 구단 측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구단 프런트 관계자는 “구단 입장에서도 폭등하고 있는 FA 고액 계약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연봉 조정 등 중재 시스템 제도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100명 연봉 조정 중 1명만 이겨


그나마 프로야구는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답게 연봉 조정에 대한 중재 시스템이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스포츠 분야에서는 언감생심이다. 특히 스포츠 중재 총괄 기구조차 오랜 기간 붕 떠 있는 상황이다. 대한체육회는 2006년 경기자와 스포츠 단체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Korea Sports Arbitration Committee)를 설립했다. 체육회 산하 가맹단체 간 갈등은 물론이고 프로·아마에 걸친 스포츠 전반의 분쟁 조정자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는 대한체육회 정관 제10장 제54조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를 통합하면서 대한체육회 개정 정관에서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의 근거 규정을 삭제했다. 존립 근거가 사라지면서 2010년부터 예산 지원이 끊겨 활동이 중단됐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설립했다”며 “중재 권한에 대해서는 정관 개정이 필요한데 현재 승인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명무실한 선수 대리인 제도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활동중인 류현진·추신수의 초대형 계약으로 한국 프로야구 팬에게도 익숙한 세계적인 스포츠 에이전트(대리인) 스콧 보라스는 원래 변호사다. 보라스는 ‘선수에겐 천사, 구단엔 악마’로 불린다. 그만큼 구단과 연봉 협상뿐만 아니라 각종 조정·중재 신청을 통해 선수에게 초대형 계약을 선사하고 있다. MLB에는 일반적인 고충 처리 절차 외에 연봉 중재만을 위한 별도의 중재 기관을 두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보라스 같은 사람을 볼 수 없다. 아직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 선수만이 에이전트를 고용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중인 ‘스포츠 산업 중장기 발전 계획(2014~2018년)’에 따르면 2013년 37조원 정도인 스포츠 산업 규모를 2018년 53조원까지 키우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핵심은 에이전트 제도다. 문체부는 당시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가 생기면 선수 복지와 관리를 위한 연금·보험 등 금융과도 연계돼 전체 스포츠 산업이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이미 에이전트 제도에 관한 근거는 있다. 야구규약 제42조는 ‘선수가 대리인을 통해 선수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법 소정의 변호사만을 대리인으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리인 제도의 시행일은 부칙에 따로 정한다’고 덧붙인 규정이 제도 시행을 아직까지 막고 있다. KBO는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에이전트 제도 도입을 야구규약에 넣었지만 구단의 반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구단 측은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이 선수의 연봉을 더 올리고, 적자를 감수하며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모기업에 타격을 줄 거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연말부터는 보라스와 같은 스포츠 에이전트의 활약을 볼 가능성이 커졌다. 김선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KPBPA) 사무총장은 “연말쯤 에이전트 제도를 시행하기로 KBO 측과 의견 접근을 봤다”며 “다만 대리인의 업무 범위와 수수료 부분과 같은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전트 제도와 연봉 조정 등 스포츠 중재 시장이 커짐에 따라 관련 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는 지난해 말 ‘스포츠 중재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공정한 스포츠 분쟁 해결 제도를 만들어 선수·지도자·기관·전문가·정부 등 관련 당사자들이 분쟁을 조기에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해 가야 한다”며 “스포츠 종합 생태계의 잊힌 한 부분을 복원하는 것으로, 시급하고 절실하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1372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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