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미래를 건 표준전쟁] 표준 잡는 자 천하를 얻는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전기차·5G 통신·차세대 디스플레이·사물인터넷 시장서 각축전...‘경쟁사 고사’보다 ‘시장 키우기’로 접근해야

전기자동차, 차세대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공장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표준전쟁이 치열하다. 기술 표준을 선점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다른 기업들과 합종연횡하는 사례도 늘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부 사이에서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국제 표준전쟁에서 패할 경우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해 막대한 로열티 부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 표준전쟁의 대한 체계적인 전략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꿀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산업계 표준화 동향과 과제를 알아봤다. 거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 과거의 표준전쟁 사례도 살펴봤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 기조연설에서 ‘5G 혁명’을 강조한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CEO.
시장이 개화하기 시작한 미래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저마다의 실력을 총동원해 개발한 자사의 기술을 산업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30일 BMW·다임러·포드·폴크스바겐 등 미국과 유럽 완성차 업체가 손을 잡았다. 올해 안에 유럽 400곳에 고속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고 2020년까지는 고출력 충전소 수천 곳을 확보한다는 게 목표다. 이들 업체는 성명에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전기차 충전소 네트워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완성차 업체가 충전기 설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단순히 전기차 인프라를 확보하려는 것 외에도,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자신들이 적용한 충전방식을 퍼뜨려 기술 표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충전 방식의 주도권을 선점해 다른 업체가 충전 방식에 변화를 주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전기차 충전 ‘DC 콤보’가 대세

충전 인프라를 보급해야 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충전장치 표준화는 앞으로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제휴에 유럽과 미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 업체들이 참여하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업체는 충전 방식으로 ‘통합충전시스템(CCS)’ 기술을 지지하고 있다. CCS는 DC(직류) 콤보 충전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충전기다. 전기차 충전기 업체 관계자는 “유럽 전역에 CCS 초고속충전소를 세우게 되면 일본 등 다른 국적의 제조사들도 자신들의 충전방식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충전기는 전기차의 핵심 인프라인 만큼 향후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장에서 많이 쓰이는 전기차 충전방식은 ‘DC 콤보’ ‘DC 차데모’ ‘AC(교류) 3상’ 등이다. 유럽과 미국 업체 대다수는 콤보, 일본 업체는 차데모, 프랑스 르노는 AC 3상을 적용하고 있다. 콤보 방식에도 미국식 ‘콤보1(5핀)’과 유럽식 ‘콤보2(7핀)’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충전기와 전기차 간 통신 규격이 같아 호환이 쉽다. 이 밖에 중국 비야디(BYD)나 테슬라 수퍼차저충전소는 각각 ‘9핀’과 ‘수퍼차저’라는 독자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개발 초기 DC 차데모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주요 방식으로 쓰고 있다.

업계에서는 머지 않아 전기차 충전기의 규격이 단일화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충전 방식에 따라 충전소를 따로 찾아가거나 충전기를 중복 설치해야 하면 소비자 만족도가 떨어지고 그만큼 인프라 구축이나 시장 확산이 더뎌질 수밖에 없어서다. 비용도 더 많이 든다. 지금까지 국내에 설치된 충전기 대다수는 한 설치기에 세 방식의 케이블이 모두 달린 ‘멀티형’ 충전기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멀티형 충전기는 케이블 하나만 달린 충전기에 비해 대당 300만원 정도 비싸다.

AR·VR 기술도 표준전쟁 후보군


▎DC 콤보 방식의 전기차 충전기.
완성차 업계 입장에서도 충전 규격 표준화가 필요하다. 현재 완성차 업체들은 특정 충전 방식이 지배적인 지역에는 별도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일본에 수출하는 BMW의 전기차는 따로 차데모 방식을 적용해 생산한다. 이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의 판매 확대에 제약이 생기고 생산성도 저하된다. 완성차 업체들이 충전 방식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적극 나서는 이유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표준으로 삼는냐를 두고 제조사마다 전략과 이해관계가 달라 향후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충전방식 가운데 현재 채택될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는 DC 콤보다. 전기차 보급 초기만 해도 일본 업체들이 주도한 차데모가 북미 지역에 보급되면서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유럽이 독자적으로 콤보 방식을 개발한 데 이어 북미 지역에서 차데모와 콤보를 혼용하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히 2014년부터 미국에서 콤보 방식의 충전기 보급이 급격히 증가했다. 최근에는 아예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손을 잡고 콤보를 새 표준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르노도 2018년 이후 신차 모델부터 단계적으로 콤보 방식을 채택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기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 실장은 “자동차 시장이 큰 북미지역 충전기 보급 추세나 전문가 동향 등을 봤을 때 콤보 방식으로 대세가 기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변수는 있다. 중국 시장이다. 중국의 경우 자체 개발한 비주류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 규모가 워낙 커 자체 방식을 고집해도 오히려 자동차 제조사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실장은 “표준화 논의가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세계 모든 시장의 방식을 통일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같은 곳은 예외 시장으로 보고 별도의 전략을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데모 기반의 완성차 업체들은 콤보와 호환할 수 있는 기술 등을 내세우며 단일화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향후 콤보 방식으로 통일되는 게 불가피하더라도 단기적으로 현재 출시된 모델이 단종되는 시점까지는 단일화를 늦추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표준 역시 콤보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말 국가기술표준원은 국내 전기차 충전 방식을 콤보 방식으로 통일하는 개정안을 고시하는 등 표준 전환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까지 세 방식 모두 국내 표준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국내 자동차 업체가 특정 방식을 주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세계적으로 충전 방식이 통일되기 전에 특정 방식만을 택할 이유나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국내 전기차 급속 충전기에도 3개의 연결케이블이 모두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콤보 방식으로 대세가 기울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황성범 산업통상자원부 공업연구관은 “완성차 업체와 충전기 제조업체와 논의한 결과 콤보 방식의 장점이 많은 것으로 판단했다”며 “각 업계의 이견을 반영해 단기간에 도입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표준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최근 HDR(하이 다이내믹 레인지)를 두고 영역싸움을 벌이고 있다. HDR은 화면의 명암을 세밀하게 표현해 대형화면 TV에서 실물을 보는 것 같은 영상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그간 디스플레이 시장은 ‘SD→HD→FHD→UHD→4K’로 이어지는 해상도의 진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해상도를 높여도 명암비와 색 재현율로 인해 선명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HDR은 이 부분을 보완한다. 강렬한 태양빛은 물론 어두운 밤하늘의 구름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색감은 2배, 명암의 표현은 10배 커진다. 전문가들은 TV 시장에서 HDR 기술 적용이 필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어떤 HDR 기술을 표준 규격으로 삼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현재 HDR 기술은 ‘UHD얼라이언스’의 ‘HDR10’과 돌비에서 개발한 ‘돌비비전’이 각자의 컨소시엄을 구축하고 경쟁하는 양강 구도다. 삼성전자와 샤프·소니 등 TV 제조사들은 HDR10, LG전자와 미국 비지오 등 5개 업체가 돌비비전 기술을 자사 TV에 탑재하고 있다. HDR10은 무료로 사용 가능한 범용 기술인 만큼 참여 기업이 많다. 그만큼 소비자층도 두텁다. 이와 달리 돌비비전은 좀 더 표현력이 우수하지만, 라이선스 비용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돌비 측에서는 “기술적으로 더 우수한데다 HDR10의 하위 호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돌비비전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돌비비전이 탐재된 TV로는 HDR10으로 만든 콘텐트를 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직 뚜렷한 경쟁구도는 나타나지 않지만, 미래형 디스플레이 기술에 대한 표준화도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3D·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이 상용화하면서 시력 보호나 초점, 성능 관련 표준 규격 등이다. 홀로그램, 투명 디스플레이에 대한 논의도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상용 디스플레이 외에도 영하 20℃나 영상 80~90℃에서 정상 작동하는 특수 목적용 디스플레이 기술도 차기 표준전쟁 후보다. 김명곤 국가기술표준원 연구관은 “기존에는 해상도 정밀화에 대한 표준규격 논의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기술 발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표준화 이슈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5G(5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표준 경쟁도 한창이다. 5G는 현재의 LTE(롱텀에볼루션)보다 20배 빠른 최대 20Gbps 속도의 이동통신 기술이다. 20Gbps는 1GB 용량의 영화 한 편을 8초 만에 내려받을 수 있는 속도다. 전송 지연은 LTE의 10분의 1수준인 1㎳, 최대 기기 연결 수는 LTE보다 10배 많은 것이 특징이다. 5G는 최근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한 인공지능(AI)·IoT·자율주행차 등에 필수적인 요소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5G는 LTE와 와이맥스(와이브로) 복수 표준이었던 4G와 달리, 세계 단일 기술 규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5G 표준에 자국 기술을 많이 반영시킬수록 차세대 통신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다.

5G 기술 표준화는 시장의 결정보다는 국제기구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논의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국제표준화단체인 3GPP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ITU는 오는 10월부터 5G 후보 기술 접수에 들어간다. 이후 2019년까지 후보 기술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 후 2020년 2월 최종 5G 국제 표준을 승인한다는 계획이다. 5G 주파수대역 지정은 2019년 10월로 예정됐다. 3GPP는 ITU의 표준화 일정에 맞춰 단계적 세부 기술규격 표준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올 6월까지 내놓을 ‘릴리즈 14’에서 5G의 기본 요건을 정의하고, 7월부터 1차 표준을 개발해 내년 9월에 확정할 계획이다. 3GPP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그대로 2019년 세계전파통신회의(WRC)에서 각국 정부가 수용 여부를 논의한다. 세계 40여개국, 400개 이상의 통신업체들이 3GPP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쟁 중이다.

자연히 5G 표준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신경전도 뜨겁다. 미국은 지난해 7월 5G 통신에 사용할 주파수(28·39㎓ 등) 할당 정책을 승인하면서 총 4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5G 표준이 확정되기도 전에 전용 주파수 대역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할당하면서 미국 업체들은 다른 나라 경쟁사보다 일찍 5G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AT&T와 버라이즌 등 미국 이동통신 업체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5G 시험망 운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5G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일본 1위 이통사인 NTT도코모는 여기에 발맞춰 2019년 6월 ITU에 5G 기술 사양을 제출할 예정이다. 총무성이 스포츠·엔터테인먼트·의료·스마트하우스·교통 등 9개 분야를 선정해 5G 관련 서비스 마련을 독려하는 등 신규 시장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통신망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차세대 통신 수요가 확대된 중국도 5G 기술 선점에 적극적이다. 투자 규모만 5000억 위안(약 85조원) 이상이다. 더 이상 한국·미국·일본 등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강점은 역시 거대한 내수시장이다. 다른 곳에서 5G 표준을 선점해도 중국이 채택하지 않으면 진정한 글로벌 표준이 되기 어렵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5G 태스크포스는 올해부터 5G 테스트에 들어가 2019년 통신망을 개통한 후 2020년부터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차이나모바일이 설립한 5G 공동혁신센터에는 화웨이 등 전기 통신 장비 제조업체와 칩 제조업체, 아우디·비야디(BYD) 등 자동차 회사, 하이얼과 하이센스 등 가전업체, 기타 스타트업 등 총 42개 회사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4G 국제 표준 제정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와이브로(와이맥스)로 국제 표준에 도전했지만 LTE에 그 자리를 내줬다. 5G 경쟁에서는 전술을 바꿨다. 국내 통신사가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과 손잡고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모습이다. 평창올림픽 주관 통신사인 KT는 ‘평창 5G 규격’을 내놓고 시범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SK텔레콤 역시 15개 글로벌 통신·장비업체가 모여 구성한 ‘5G 글로벌 협력체’를 통해 5G 표준화에 대응하고 있다. LG유플러스도 5G 기지국에서 31Gbps 속도를 시연하는 등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5G 표준전쟁에 각국 정부도 나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5월 독일 하노버 산업기술박람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과 독일은 스마트 공장 관련 표준을 정하는 데 합의했다.
아직 시장을 선점한 표준 기술이 없는 IoT 분야에선 글로벌 기업들이 연합전선을 펼치며 국제 표준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까지 IoT 표준과 관련해서는 두 진영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와 인텔을 주축으로 하는 IoT 표준화 단체 ‘오픈 인터커넥트 컨소시엄(OIC)’과 LG전자·파나소닉·샤프·마이크로소프트(MS) 등으로 구성된 ‘올신얼라이언스’다. 그러다 지난해 2월 기존 OIC 참여 기업에 MS와 퀄컴이 합류한 ‘오픈 커넥티비티 재단(OCF)’이 창립됐고, 지난 10월 OCF와 올신얼라이언스도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IoT의 특성상 기기 간 연결성이 중요한 만큼 독자 기술만으로는 표준화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여러 기업이 뭉쳐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단일 단일화된 표준이 나오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IoT 표준은 결국 지적 재산권과 연결되는 이슈이기 때문에 관련 법적 논의가 동반될 수 밖에 없어서다. 또 OCF 회원사라고 해서 모두 자사의 모든 상품에 같은 표준을 채택하리란 보장도 없다. IT업계 관계자는 “이미 대부분의 기업이 여러 표준화 그룹에 발을 걸쳐 놓은 데다, IoT 시장이 거대한 가능성을 지닌 영역인 만큼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허울뿐인 연합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공장 표준 앞서 나가는 美·獨

IoT의 표준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스마트 공장’과도 관계가 깊다. 기기 간 연결이 중요한 스마트 공장의 특성상 기술 방식이 다른 제품 간 데이터를 필수적으로 주고 받는 IoT와 접목할 수밖에 없어서다. 지금까지 스마트 공장은 제조·생산부터 납품·판매에 이르기까지 적용 범위가 방대하고 명확한 개념과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국제표준화 조직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공동으로 스마트 공장 관련 전략·자문그룹을 신설해 구체적인 표준화 작업을 논의 중이다. 현재는 스마트 공장 내 기계설비 간 통신 표준을 지정하는 단계다.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제조업 강국이자 관련 기술을 다수 보유한 독일과 미국이다. 지난해 5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열린 하노버박람회에서 미국 산업인터넷컨소시엄(IIC)과 독일 인더스트리4.0 컨소시엄은 ‘OPC UA’로 기계 간 통신 표준을 정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ISO 등에서 이를 공식화하면 기계장비 업체들이 통신 기능을 탑재한 장비를 팔기 위해서는 OPC UA를 설치해야 한다. 미국과 독일이 먼저 표준화를 주도하면서 스마트 공장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표준 전쟁이 사활을 거는 이유는 결과가 ‘승자 독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기술 표준을 선점하면 게임 규칙을 설정하듯 자신에게 익숙하고 유리한 방식을 표준으로 수용할 수 있다. 산업에서 기술 경쟁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지적재산권이 강조되면서 기술 표준을 보유한 기업은 해당 산업 전반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브라이언 아서 교수는 이를 ‘수확체증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수확체증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일단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그 우위성이 더 확대되고 시장을 계속 지배해나가는 현상을 일컫는다. 미리 특정 시장을 선점하면 시장을 거의 독점할 수 있으므로 후발 주자가 진입하기 매우 어려워지고, 이후에는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확대돼 승자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기술 개발 경쟁 못지않게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표준화 전쟁에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집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병구 국가기술표준원 표준정책국장은 “국제 표준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해당 분야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라며 “관련 전문 인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술 표준화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국내 기업은 자사 기술의 일부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표준화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표준화 영역과 특허 영역을 잘 구분해 일정 부분을 공개하되 경쟁력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준화를 ‘적자생존’으로만 보는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강 국장은 “서로 자기 표준만 주장하다가 시장 자체가 사장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과거에는 표준화를 경쟁사를 누르는 수단으로만 봤다면 지금은 기술로 시장 파이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표준 전쟁에서 승리하는 3가지 전술 - 경쟁사의 과녁에서 벗어나라

①단일 기업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들이 서로 협력해 경쟁사에 대해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는 ‘제휴’가 필요하다. 단일 기업의 힘만으로는 시장 지배자가 되기 힘들다.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끼리, 또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과 생산 역량을 보유한 기업들이 힘을 합치는 등 다양한 제휴 전략을 활용하자.

②핵심 기술은 숨기되 표준은 확대하라: 핵심 기술이 아닌 보완적 관계의 시장을 표준화시켜 자사의 핵심 제품 시장을 키우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인텔은 컴퓨터의 대량 보급이 CPU(중앙처리장치) 판매로 이어진다고 판단해 표준화로 컴퓨터 부품 공급업체들의 가격 경쟁과 대량 생산을 유도했고 막대한 수익을 냈다.

③움직이는 과녁이 돼라: 표준화 시장에서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서는 도태되고 만다. 지배적인 위치의 자사 표준이라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켜 경쟁사들의 정조준 과녁에서 벗어나는 전략이 바로 ‘움직이는 과녁 되기’이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크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40인치 LCD를 개발해 대형 TV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자료: [표준이 시장을 지배한다], 강병구

1373호 (2017.02.2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