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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배우는 ‘지방소멸’ 극복기] 젊은이·관광객 발길 모은 도시와 농촌의 유쾌한 동행 

 

후코오카·사가·오이타현= 류왕보 베티카 대표
다케오 도서관 리뉴얼 후 관광객 3배 늘어... 유후인의 마치즈쿠리, 카야노야 레스토랑 성공 비결 배워야

▎오이타현의 유후인은 힐링 관광과 개인 관광 시대에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 마을 만들기)’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마을 어귀에 자리한 긴린코 호수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작은 선물가게와 디저트 카페가 즐비하다.
국내 대도시와 지방도시를 막론하고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 탄력성이 줄어들면서 ‘지방소멸’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인구가 늘지 않으니 30년 안에 많은 지방도시가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러다 보니 한국보다 앞서 저성장과 지방 침체에 봉착한 이웃 일본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지 궁금했다.

장소와 먹거리의 마리아주


후쿠오카는 한국에서 가까운 곳이고 먹거리나 볼거리도 많은 곳이지만 늘 큐슈를 들고 나는 게이트웨이 역할만 했다. 그래서 한번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둘러보고 싶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모두 쌀이 주식인데도 쌀 소비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의 변화’와 ‘쌀문화’ 즉, ‘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후쿠오카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공항에서 시내가 가깝다는 것이다. 지하철로도 몇 정거장 되지 않고 택시를 타도 부담이 없다. 후쿠오카 하카다역 근처에는 후쿠오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좋은 식당이 줄을 지어 있었다. 쿠우텐가 9층의 식당가는 특히 수준 높은 전문점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 아예 ‘밥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입구 옆에 큰 가마솥 조형물로 장식한 ‘고항야 쇼보안(ごはん家 椒房庵)’이 있다. 30분을 기다려 겨우 들어갔다. 정식을 시켰는데 차근차근 다양한 반찬이 나오고 마지막에 솥밥이 나왔다. 뚜껑을 여니 정말 맛깔스럽게 잘 지은 밥이 있다. 쌀 자체의 수분을 잘 머금고 있는, 질지도 되지도 않은 맛있는 밥이었다. 한국 내 식당에선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후 나중에 밥이 나오는데다 먹어도 그만이고 먹지 않아도 그만인 대접을 받는 것과 달리, 이곳의 식사는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 클라이맥스에 맛있는 밥 한 공기를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놀랍게도 밥이 아직도 식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이후 가고시마·이부스키를 며칠 돌고 가고시마에서 신칸센을 타고 다시 후쿠오카로 향했다. 목적지는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宮)로 잡았다. 다자이후시는 후쿠오카 부근의 위성도시다. 일본 3대 텐만구(天宮, 신사의 한 종류) 중 하나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침 가는 길에 사람들의 물결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시고 있어 연초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입시생과 부모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가족 단위로 수백 명씩 줄을 지어 본당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기도하는 모습도 눈길이 갔지만 그보다 텐만구를 가득 채우다시피 한 매화나무와 텐만구 주변의 매화나무를 주제로 잡은 찹쌀떡집이 흥미로웠다. 그 많은 가게가 저마다 매화 문양이 새겨진 찹쌀떡을 팔고 있었고, 사람들이 줄지어 떡을 사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 가야 먹을 수 있고, 그곳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장소와 먹거리의 좋은 마리아주(mariage)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후쿠오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사가현 다케오시를 방문했다.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였던 다케오시는 츠타야서점(蔦屋書店)과 손을 잡고 북카페 스타일의 시립도서관을 새로 만든 후 연간 100만 명이 이곳의 도서관을 방문하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았다. 이른바 ‘다케오 모델’로 지방혁신의 대표 사례로 불린다.

츠타야서점이 운영·관리 맡아


▎사가현 다케오시의 시립도서관 전경과 내부 모습. 다케오시에서 만들고 츠타야서점에서 운영·관리하는 이곳은 북카페 스타일로 리뉴얼한 후 연간 100만 명이 몰리는 지방혁신의 대표 사례로 불린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1916년에 설립된 평범한 도서관이었다. 2013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케오시 도서관은 세계 첫 공립·민영의 북카페 콘셉트 도서관으로 내부 디자인이 세계 어느 유명 도서관이나 북카페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일본 전역에서 츠타야서점 돌풍을 일으킨 기획사 CCC(Culture Convenience Club)가 리모델링과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 서점과 스타벅스 카페가 있고 안쪽에 도서를 대출할 수 있는 서비스 데스크가 있다. 서고를 없애고 서고에서 잠자던 책을 포함해서 20만 권의 책을 주제별로 이용자가 찾기 쉽게 분류해 서가에 전시했다. 중간 중간에 의자를 배치해 서가 옆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쪽 옆에는 학습실과 다용도 갤러리실이 있어 어린이를 위한 활동이나 전시회를 할 수 있다. 2층에도 대형 서가와 학습실이 있다. 1층 학습실에서는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책을 보고 있었고, 2층에는 주로 20대 청년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도서관 직원들은 모두 호텔 직원 같은 검은색 컨시어지 복장을 하고 있었고 방문객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도서관에서 여는 다양한 강좌에 등록할 수 있어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 친구끼리 온 중·고등학생, 손 꼭 붙잡고 온 노부부 등이 종일 드나들었다. 리뉴얼 전에는 이곳에 연 25만 명(하루 800여 명) 정도가 방문했지만 리뉴얼 첫해에 총 93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지금은 연간 70만 명(하루 2000명) 정도가 방문하고 있다. 방문자는 다케오 시민이 약 60%, 외부인이 40%다. 방문객의 지역경제 기여 효과는 연간 약 2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이 성공적인 사례로 부각되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과 지자체 관계자가 몰려들었다. 다케오 모델에 따라 도서관을 현대화하고 민영화하는 지자체가 줄을 이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의 지자체도 자녀가 있는 젊은 세나 도시민이 지방으로 눈길을 돌리게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현대적인 도서관과 문화센터를 운영하는 방안을 참고하면 좋을 듯했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나와서 동쪽 오이타현으로 달렸다. 동서 간 고속도로를 타면 두 시간 반 남짓이면 도착하지만 일부러 남쪽으로 구마모토를 지나 아소산을 넘어가는 우회 코스를 선택했다. 다섯 시간이 넘는 길이지만 최근 한국에서 ‘스마트팜 빌리지(농산물 생산뿐 아니라 주거·경제·환경·문화·교육·공공 편의시설 등이 포함된 복합단지)’의 모델로 주목받는 아소팜랜드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소팜랜드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구마모토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어 주요 건물이 무너져 내렸거나 금이 가서 폐쇄됐다. 갈라지고 무너지고, 지진이 할퀴고 간 자국을 생생하게 본 적은 처음이어서 당시 얼마나 두려웠을지 상상하면 소름이 끼쳤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이타현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이타현의 벳푸와 유후인은 일본의 대표적인 온천휴양지다. 연간 400만 명이 찾는 곳으로 한국인 관광객만 연 20만 명이 넘는다. 벳푸가 일찌감치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으로 알려졌고 규모가 크고 남성적인 분위기라면 유후인은 인구가 4만 명에 불과하고 소박한 농촌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여성적인 분위기의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자리한 긴린코 호수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작은 선물가게와 디저트 카페가 즐비하다. 벳부와는 달리 조용한 그린 투어리즘(녹색관광)을 중심으로 농촌다움과 지역의 어미니티(amenity,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환경과 접하면서 느끼는 쾌적함)를 잘 살린 곳이다. 유후인은 힐링 관광과 개인 관광 시대에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 마을 만들기)’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이 대형 리조트 개발에 반대해 마을의 원래 모습을 지켜나가자는 합의가 형성되도록 이끈 지도자들이 있었다. 젊은 활동가로 구성된 ‘유후인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은 주민 주도의 지역발전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했다. 이들은 독일 바덴바덴 등 유럽의 휴양지를 돌아보며 배워 이를 바탕으로 마을 전체의 변화를 주도했다. 특히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들의 도움을 받아 실천 회원을 조직하고 기획·섭외·조정이라는 3자 역할 분담 체제로 지역발전을 이끌었다.

‘내 발밑의 보물’부터 찾는다

특히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한데 모으는 데 힘을 쏟았다. 당시 마치즈쿠리에는 농업뿐만 아니고 공업·상업하는 사람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이해가 상충해 계획이 좀처럼 취합되기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유후인만의 독특함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유후인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농촌경관을 지키는 것, 농촌다움을 살리는 것이 결국 유후인을 지키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지만 개발 붐을 타고 마을 내에서도 의견이 대립했다. 그래서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의 이름을 ‘유후인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서로 생각을 조정하고 객관적으로 토론하는 게 가능해졌다. ‘유후인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나온 의견을 빠짐없이 싣기 위해 ‘화수목(花樹木)’이라는 소식지를 만들었다.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을 각자의 실명으로 소식지에 실었다. 이는 일본의 문화에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자기 발언에 책임을 지고 불만을 툭툭 던지기보다는 신중한 발언을 하게 됐다. 행정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이야기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반동분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당시 오이타현의 지사였던 히라마츠 모리히코는 ‘1촌1품 운동’을 주창했다. 그러면서 유후인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모리히코 지사가 관광 분야의 모델로 삼은 곳이 유후인이었고, 농업 분야의 모델로 삼은 곳은 오야마의 고노하나 가르덴이었다(한국 로컬푸드의 효시가 된 완주농협 로컬푸드의 모델). 지사의 관심과 지원에 힘입어 군수들이 다 같이 1촌1품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결국 유후인이 1촌1품 운동의 모델이 됐다.

1촌1품 운동은 ‘내 발밑의 보물’을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사람을 기르고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인재양성기관인 ‘풍숙’을 만들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상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어떻게 만들고 길러내느냐가 근본적인 성공 요인이다. 결국 이런 것을 동력으로 유후인이 지역개발의 성공 브랜드가 됐다. 그러자 고향을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왔다. 고향에 자부심을 갖게 하자던 애초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이런 마을운동을 주도했던 리더 중의 한 사람을 만났다. 유후인에서 산촌요리 전문점과 전통료칸을 운영하고 있는 쿤페이씨를 만난 건 큰 수확이었다. 한국 단체관광객들에게 유후인은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따라 한두 시간 남짓 즐기고 지나가는 곳이다. 대개 유후인의 흥미있는 스토리를 잘 모르고 지나친다. 그러나 이곳이 품고 있는 포부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함부로 손대지 않고 경관을 보존하며 농촌다움으로 수백만의 방문객들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주는 지역개발 전략은 우리가 배울 부분이 많았다.

이번 탐방에선 일상의 일본 식문화에도 주안점을 뒀다. 한국의 식문화가 점점 서구화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밥이 주인공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63kg에 불과하다. 30년 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탄수화물은 건강의 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밥을 덜 먹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도 밀의 소비는 늘었고 수입량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밀이 사람을 길들여서 지구상의 가장 번성한 성공한 식물이 됐다’고 갈파했듯이 밀은 이미 우리 식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주인 자리를 넘보고 있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산속에 있는 카야노야 레스토랑은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제철 식자재를 사용하고 전통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든다. 카야노야 레스토랑의 전경과 내부, 전채 요리.
전통 음식을 명품 반열에 올려 놓다

일본의 마트 한 켠에는 쌀 판매 코너가 있고 즉석 도정기가 있어 원하는 만큼 도정해서 사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우리처럼 10kg나 20kg짜리 쌀을 사서 두고두고 먹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먹을 만큼만 도정해서 밥을 하니 밥맛이 좋을 것이다. 국내 식당과 달리 일본의 식당에서는 밥을 미리 퍼놓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바로 공기에 퍼준다. 어느 식당에서나 취향에 따라 흰밥, 잡곡밥, 다른 주재료를 넣어 지은 솥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밥이 밥상의 중심이다. 일본에서 어떻게 밥이 살아 남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찾아간 곳이 카야노야(茅乃舍) 레스토랑이었다. 카야노야 레스토랑은 후쿠오카 시내에서 40분 남짓 차를 타고 교외를 지나 ‘이런 곳에 무엇이 있을까’ 싶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 카야노야는 ‘초가집’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80t이나 되는 엄청난 억새줄기를 얹은 일본식 전통가옥이다. 일본의 전통가옥 명인들의 손을 빌어 공들여 만든 건물답게 구석구석까지 디테일이 뛰어난 멋진 건물이다.

카야노야의 모기업은 후쿠오카에서 1893년 창업한 ‘구바라쇼유’라는 간장 공장이다. 구바라쇼유는 전통의 맛과 식자재를 지키기 위해 ‘진짜 맛’을 구현하기로 하고 수년간에 걸친 기획과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통해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카야노야의 철학은 ‘생명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라는 식당 슬로건에서 엿볼 수 있다. 지역에서 나는 식자재로 건강한 생명을 얻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흙을 살찌운다는 생각이다. 카야노야는 오직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제철 식자재를 사용하고 전통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든다. 이를 위해 지역 내의 농가들과 계약 재배로 식재료를 수매한다. 식당 안에는 가마솥을 놓은 커다란 부뚜막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왠지 든든하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밥은 매일 아침 새로 도정한 쌀로 짓는다. 채소 등 식재료들은 본래의 풍미를 살리는 조리법을 쓴다. 하지만 그릇이나 데코레이션은 프랑스 쿠진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신경을 쓴다. 전통에 입각해 있으면서도 현대의 기준에 뒤지지 않는다. 완벽한 농촌 식당이면서도 동시에 도시의 일류 레스토랑에 모자람이 없다.

카야노야는 또한 일본 전역에 브랜드 식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물을 우려내는 다시류와 간장, 미소 등 전통 장류를 판매한다. 이런 전통 식품을 팔지만 어떤 일류 브랜드의 매장에도 손색없는 디자인과 품격을 자랑한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서비스 매너도 최일류다. ‘식품의 에르메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서비스면에서는 명품숍보다 오히려 한두 수위였다.

큐슈의 여러 지역을 둘러보고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즐겨 찾는 이들 지역의 특징은 무엇일까. 도심에 있든 시골에 있든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곳의 공통점은 그곳에 ‘도시다움’과 ‘농촌다움’이 함께 녹아 있다는 것이다. 농촌다움은 시골다움이나 지방다움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다움을 디자인·정보기술·마케팅·고객중심주의라고 요약한다면, 농촌다움은 흙·물·공기 등의 자연, 곡물·채소·과일 등의 먹거리의 생산, 배려와 협력의 공동체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에 새로운 가치 불어넣어

기술이 발전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과 지역의 가치 기반이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와 저성장, 양극화가 넓게 퍼지고 심화하면서 지역과 농촌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도시 안에서도 도시재생이나 도시농업을 통해 농촌의 가치를 도입하고 공동체정신을 회복하려는 움직임도 퍼지고 있다. 힐링과 휴식을 중시하고 경쟁보다는 나눔으로 삶의 우선가치가 이동하면서 소박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공동체정신을 회복하는 킨포크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선호가 확산되고 있다. 빠르고 냉정한 도시의 삶에 느리고 포용적인 농촌의 삶의 방식을 접맥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촌스럽게 여겨지던 농촌다움이 도시의 디자인과 기술의 손길이 더해지면서 더 멋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농촌의 생활공간에도 스마트 기술과 디자인이 빠른 속도로 파고들고 있다. 이제는 농촌이니까 시골이니까 불편해도 참으라는 마인드로는 도시 사람의 발길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어렵게 됐다. 도시인의 눈높이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되고 있다.

방문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명소들은 하나같이 도시다움과 농촌다움을 적절히 잘 융합해 배치하고 있었다. 또한 지난 시대의 것을 끊임없이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생명과 가치를 불어 넣고 있었다. 일본은 저성장과 인구 감소를 우리보다 먼저 경험하고 해결 방안을 고민했다. 약 20년에 걸친 노력을 통해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다케오같이 멋진 도서관을 만들어 젊은 세대가 다시 깃들도록 하는 곳도 있고, 유후인처럼 경관을 보존하는 자연친화적인 개발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도 있고, 곧 가보려고 하는 도야마나 후쿠이처럼 새로운 컴팩트 시티를 건설해 지역활성화의 가능성을 여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시대적 과제의 하나가 도시이든 농촌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공간이 다음 세대를 위해 새롭게 재구성되고 활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스기사] 미조카미 마사카츠 다케오 시립도서관장 - “올해 어린이 도서관 따로 만든다”


▎미조카미 마사카츠 다케오 시립도서관장
이 도서관의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다른 공공 도서관에는 없는 다양한 활동과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도서관과의 차별화 포인트는.

“다케오 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1년 365일 열려있다는 점이다. 아침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휴무일 없이 연다. 또 도서관에 와서 느긋하게 있을 수 있도록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좀 더 편안하고 여유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책을 빌려갈 수도 있지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도서관으로 바꿨다.”

외지인이 많이 몰리니 지역 주민들의 불평도 나올 법한데.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주차할 곳이 없다든지, 앉을 곳이 없는 등에 대한 고충은 있다고 들었다. 그래도 다양한 사람이 이곳에 방문하는 것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 의견은 많지 않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책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지만 경영에 무리가 없는 편이다. 이곳에 지자체 공무원, 의원 등 다양한 사람이 오는데 이들은 대부분 다케오시에서 숙박을 해결한다. 그런 측면에서 눈에 띄는 경제효과가 있다. 도서관 내에 서점과 스타벅스를 둔 건 일본에서 처음 시도한 일이다. 도시와 같은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 특히 여성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인력은 어디서 채용하는가.

“시는 도서관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도서관은 시 소속이지만 운영과 관리는 모두 기획사인 CCC(Culture Convenience Club)가 맡고 있다. 직원 채용과 교육도 CCC 몫이다. 직원 중 지역 사람은 3분의 2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른 지역 출신이다.”

공공시설의 역할과 비즈니스 측면에서 생기는 갈등은 없나.

“리뉴얼 당시 다케오시와 CCC가 지속적으로 협의하면서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달 회의·보고회 등을 진행하고 있어 별다른 갈등은 없다.”

어린이 도서관도 따로 짓는다던데.

“알다시피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10월에는 어린이 도서관을 옆에 따로 만들어서 양육 지원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도서관 건설은 다케오시가, 운영은 CCC가 맡을 예정이다.”

이곳을 벤치마킹한 사례는.

“일본 전역의 도서관이 이용객 감소로 고민하고 있다. CCC가 5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스기사] 유후인의 마치즈쿠리 주도한 미조구치 쿤페이 - “눈앞의 이익보다 지역의 미래를 보라”


▎유후인의 마치즈쿠리 주도한 미조구치 쿤페이
유후인이 농촌다움을 살린 지역개발을 추진한 배경과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오지만 옛날의 유후인은 가난한 온천 관광지 중의 하나였다. 벳부보다 규모가 작고 별다른 점이 없는 곳인데다 스스로 좌절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후손은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도록 하자’ ‘유후인 출신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지역개발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따로 계획을 세웠는데 생각대로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전부 합심해서 생각을 모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주민뿐 아니라 마을 밖의 전문가 이야기도 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토론문화도 만들었다.”

유후인의 ‘발밑의 보물’이 농촌경관, 농촌다움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변함이 없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그 생각엔 변함없다. 온천과 유후산이 유후인의 소중한 자연경관 자원이다. 하지만 당시 그게 특별히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드물었고 눈앞의 이익에 관심이 많았다. 벳부가 남자, 단체관광객 위주고 우리는 여성·개인·소그룹을 타깃으로 삼았다. 단체관광에 지친 사람들은 더 안심할 수 있는 곳, 청결한 곳, 좋은 먹을거리가 있는 곳을 찾는다. 이게 요즘의 여행 트렌드다. 유후인은 이미 30년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유후인을 찾는 여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이미지 전략을 실행하자 우리 마을을 방문한 여성 손님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후인은 유명해졌다.”

유후인의 중심 거리에는 고로케나 치즈케익,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주로 팔고 있는데 지역의 전통 식생활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나.

“별로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후인 사람들은 유후인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메인 도로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은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이고 그 뒤에서 유후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전통 료칸이나 산촌요리 전문점들이 지금도 손님들을 위해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가장 유후인다운 음식은 무엇인가.

“집닭·소고기 등이 유후인의 주요 식재료다. 이들 식재료를 가지고 자연친화적인 음식점에서 로컬 푸드의 제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요리와 지역의 문화를 결합해 어떻게 하면 고급화시킬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전통을 재해석한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자주 여는 이유다.”

다른 지역·나라의 지역 만들기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자기 마을에 대한 애향심·열정·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이 운동을 시작한 건 20대 후반이었는데 5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 지금 83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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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호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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