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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 영혼없는 정책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87+152=239.’

지난달 말 나흘 사이 정부가 쏟아낸 정책과제 건수다. 2월 23일 내수활성화 대책으로 87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나흘 뒤 27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선 투자활성화를 위한 152건의 세부과제를 내놨다. 3년 연속 2%대 저성장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병목지점-소비 침체와 투자 부진-을 나름 짚어 냈다.

정부의 의욕이 넘쳐 보인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에도 흔들림 없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전시효과를 노렸음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해온 민관 합동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물론 경제부총리가 관장해온 내수활성화 대책 관계장관회의까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직접 주재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정책 내용이 회의 규모나 성격, 발표 형식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내수활성화 대책의 경우 지난해 말 새해를 불과 이틀 앞두고 허겁지겁 내놓은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언급한 정책의 재탕·삼탕이 많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정책의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되는 것들도 있다. 회의 일정에 맞춰 뭔가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급조한 탁상행정의 산물이다.

주중에 더 근무하고 금요일엔 오후 4시면 퇴근해 가족과 함께 쇼핑·외식하며 돈을 쓰라는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가 대표적 사례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노동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으로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에게나 해당하지 다수 일반 근로자들에겐 빛 좋은 개살구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시절의 수출진흥회의를 34년 만에 부활시킨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이번이 열한 번째. 그동안 여기서 제시된 대형 지역개발 프로젝트는 42개, 62조원 규모인데 완료된 것은 5개뿐이다. 금액 기준으론 3조8000억원으로 목표액의 5%에 불과하다. 더구나 상당수 문화·스포츠 분야 사업지원 방안이 최순실 게이트와 엮이면서 사업 취지가 의심받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정부는 의욕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가장 역점을 둔 프로젝트는 남해안 광역개발. 전남 고흥군과 여수·순천·광양시, 경남 남해·하동과 통영·거제 등 남해안을 낀 8개 시·군을 통합 개발해 세계적 관광지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려는 내국인 여행객의 발길을 돌리려면 먼저 수도권에서 쉽게 접근하도록 해줘야 한다. 정부가 개발계획을 만들고 민간기업더러 투자하라는 낡은 방식보다 민간이 알아서 투자할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거창하게 회의하고, 그럴싸하게 포장해 발표하고, 여러 분야의 정책과제를 백화점식으로 열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겉치레만 요란하지, 뻔하고 구호에 그치고 마는, ‘아니면 말고’식 소나기 대책은 시장의 피로감을 낳고 불신을 키운다. 정부가 이달 안에 내놓겠다고 예고한 청년 고용대책도 이런 식이어선 실패하기 십상이다.

건수는 많지 않아도 하나하나 당면한 현실과 미래 변화를 함께 반영한 내실 있는 대책을 내놓고 확실하게 실행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따르는 법이다. 공무원의, 공무원에 의한, 공무원을 위한 정책은 국민 세금의 낭비일 따름이다. 국민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을 위한 정책이어야 국민의 공감을 받고 성과를 낼 수 있다.

1375호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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