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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미래전략실 해체를 보는 7개의 시선] 재벌개혁 바람 재계 전체로 확산하나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삼성, 미전실 58년 역사와 결별... 컨트롤타워 부재로 대형 투자·M&A 어려움 예상

삼성이 3월 1일자로 미래전략실(미전실)을 공식 해체했다. 미전실의 전신인 삼성물산 비서실이 만들어진 지 58년 만의 일이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 해체는 사실상의 그룹 체제 해체를 의미한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수행하던 모든 업무와 혁신을 종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전실을 진두지휘하던 삼성의 ‘2인자’ 최지성 부회장도 사임했다. 삼성 미전실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삼성의 그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 것인지, 그 파장과 전망을 일곱 갈래로 짚어봤다.


삼성이 2월 28일부로 미래전략실(미전실) 해체를 공식화하자 재계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최순실 게이트’ 관련 청문회 때 미전실 해체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럼에도 예상보다 빨리(당초 삼성은 총수 구속에 미전실을 당분간 존속시키면서 특검 수사 대응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로 나타나자 곳곳에 비상이 걸렸다. 주요 기업들은 예의주시하면서 향후 검찰의 대응 등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경제단체들은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한 채 재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분석 중이다. 한편 삼성의 개혁을 요구하던 시민사회는 정작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01 | 미전실 해체, 재벌 체제 해체인가.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은 총수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재계 맏형 삼성의 미전실 해체는 ‘재벌개혁’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간 미전실은 그룹 전반의 일에 관여하면서 오너 일가의 수족처럼 기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정부·국회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전개하는 대관 업무를 전담해 정경유착의 진원지로 지목돼왔다. 이를 스스로 해체함으로써 총수 일가 중심의 구시대적 재벌 경영에서 탈피, 전문경영인 중심의 기업으로 변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삼성 측이 보였다는 얘기다. 삼성 관계자는 “미전실 해체는 59개 전 계열사가 자율 경영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총수의 경영상 판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뜻이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계열사별로 보다 신속하게 판단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급변한 경영 환경에 삼성도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재벌 해체의 의미로 보기는 이르며, 이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3월 2일 한국경제학회 정책세미나에서 “한국은 급격한 재벌 해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재벌은 생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체이자 혁신의 주체”라며 “재벌 체제가 가진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제도적인 정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전실 해체가 재벌개혁의 신호탄이 돼주길 기대하는 각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일회성 조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미전실 해체는 당연한 일”이라며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도 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그룹 내에 옥상옥(지붕 위에 얹은 지붕, 즉 불필요한 것)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잘못된 관행을 끝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논평했다.

02 | 시민단체는 왜 박수치지 않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의 구속은 미전실 해체와 맞물려 삼성에 격변을 일으킬 전망이다.
재벌을 감시해오던 시민단체들은 삼성의 이번 결정에 선뜻 동의를 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에서 “미전실 해체가 정답이 아니다. 해체 선언은 꼼수”라고 했다. 미전실 해체가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 기능을 나눠 핵심 계열사들 내부로 이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이 향후 미전실의 역할을 나눠서 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기존 미전실의 문제, 즉 ‘법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이 괴리되고, 그 결과 총수 일가와 가신들의 사익을 위해 무리수 내지 불법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문제가 이들 계열사를 통해 반복될 수 있다는 논리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예컨대 삼성전자는 삼성SDI와 삼성전기 등으로부터 소재부품을 공급받는 수직계열화 체제로 경쟁우위를 점하는 기업이다. 이들 계열사가 아무 조정 없이 자율 경영을 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컨트롤타워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드러내야 하며, 컨트롤타워가 판단한 내용을 각 계열사가 자율적으로 검토·수정·승인하는 합리적인 절차를 구축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이사회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배주주와 내부 경영진이 선임한 거수기 사외 이사들로 구성된 각 계열사 이사회의 자율 판단은 신뢰하기 힘들며, 외부 주주가 추천한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03 | 컨트롤타워 부재, 예상되는 어려움은.


▎미전실 해체로 삼성은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지금보다 주주 권익이 보호되는 계기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열린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 현장.
미전실은 삼성이 본격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1970년 대부터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중심을 잡아주는 순기능을 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본부가 그룹의 신사업 발굴과 브랜드 관리에 관여하면서 삼성이 지금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커갈 수 있었다”고 했다. 미전실 해체로 지금껏 없던 업무상의 애로점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단 계열사들로서는 그룹의 비호 아래에서 누렸던 시너지 효과를 더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계열사 간 중복사업을 정리하는 일에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계열사 간 사업 조율을 위해선 컨트롤타워는 필요하다. 해체만이 답은 아니고 주주들의 이해에 반하는 방향으로 컨트롤타워가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실 계열사의 구조조정 역시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카드 등 사정이 좋지 못한 계열사들은 앞으로 그룹 차원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돼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밖에 계열사별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일자리 창출로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게 지금까지만 못할 수 있다는 거다. 그룹 차원의 사회공헌 활동도 사라져 여파가 클 수 있다.

04 | 포스트 미전실 시대 이끌 리더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전실 핵심 인재들이 모두 물러난 상황에서 포스트 미전실 시대를 이끌 핵심 리더로 꼽힌다.
미전실은 컨트롤타워답게 그룹을 이끄는 핵심 인재들로 구성됐다. 이번에 그룹의 2인자 최지성 미전실장(부회장) 등 수뇌부 9명이 나란히 퇴진하면서 삼성은 이들 핵심 인재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도 과제로 떠올랐다. 우선 그룹 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 삼성전자 쪽 인사들이 중추적 리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 예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최지성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그는 현재 삼성 전 계열사를 통틀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부회장 직함을 지닌 임원이 됐다. 이사회 의장이기도 한 그가 최 부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2인자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총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실제 삼성전자는 3월 2일 권 부회장의 직속 조직으로 글로벌품질혁신실을 신설하고 김종호 삼성중공업 사장을 실장에 위촉했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 출신이다. 삼성SDI도 2월 28일 이사회에서 신임 사장에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을 내정했다.

삼성의 또 다른 중심축이 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의 최고경영자(CEO)도 그 역할이 커질 수 있다. 현재 삼성물산은 최치훈 사장이, 삼성생명은 김창수 사장이 이끌고 있다. 이들 리더를 중심으로 삼성은 계열사별로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 체제로 본격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2월 24일 삼성전자가 기부금 집행 규정을 대폭 강화해 10억원 이상이면 이사회 의결을 거치게 한 것도 이사회 강화 차원으로 해석된다. 종전까지 삼성의 경영이 ‘총수→미전실→계열사’로 이어진 수직적 체제였다면 앞으로는 투명성을 추구하는,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수평적 체제로 바뀔 전망이다. 총수가 쥐락펴락 해온 한국적 재벌 경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05 | 포스트 미전실 시대 삼성의 경쟁력은.


삼성의 경쟁력 유지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 브랜드의 핵심이 되는 정보기술(IT) 부문 사업과, 최근 삼성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이던 바이오 등 신수종 사업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계열사별 자율 경영 체제여도 3개의 큰 중심축(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위주로 각 계열사 사장단이 긴밀하게 모여 협의·조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삼성 측은 공식적으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 관측이 들어맞는다면 IT 부문 계열사는 삼성전자, 바이오 부문 계열사는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뭉쳐 세부적인 사업 방향을 정해나갈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형태의 경영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또한 이런 시나리오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계열사별 자율 경영이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는 방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발 빠른 시장 대응력과 적응력은 해외에서도 모범 사례로 꼽혀왔다.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 강점이 약점으로 바뀔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멀리 보고 인수합병(M&A) 같은 굵직한 방향을 정하는 데도 차질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상원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등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그룹 내 입지가 불안정한 일부 계열사라면 모를까, 그동안 삼성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탄탄하게 유지된 만큼 대부분의 자율 경영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고 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삼성전자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이기 때문에 IT 부문 글로벌 경쟁력 유지에 큰 악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바이오·제약을 담당하는 모 애널리스트는 “바이오는 삼성의 신사업이기 때문에 투자와 방향 설정엔 과감한 결단이 중요한데 (자율 경영이) 얼마만큼 효율적일지 모르겠다. 부정적 영향이 따를 수 있다”고 했다.

06 | 컨트롤타워 해체, 재계로 확산할까.

삼성의 미전실 해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따로 운영 중인 그룹들에도 고민을 안겼다. 10대 그룹 중 한화의 경영 기획실은 그룹 전체의 경영 방향을 제시해 미전실과 비슷한 점이 많은 조직으로 꼽힌다. 2015년 삼성으로부터 방산·화학 부문 계열사 4곳을 인수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경영혁신실도 계열사 공동 전략을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SK·LG·포스코·신세계 등도 별도의 조직을 뒀다. 다만 SK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수펙스추구협의회를 뒀고, LG는 2003년 이후 지주사 체제가 안착해 있는 등 그룹별로 차이가 있어 일률적으로 보긴 어렵다.

이들 그룹은 미전실 해체를 계기로 “컨트롤타워를 해체하라”는 여론의 불똥이 튈까 우려한 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그간 삼성이 각 기업들에 벤치마킹 대상이 돼왔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기업들이 향후 자율 경영 체제의 도입을 확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관 업무는 정경유착 근절에 대한 의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도 지금보다 대폭 줄일 공산이 크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직 어떤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대관 업무는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돌고 있다”고 했다.

07 | 삼성 지배구조의 미래는.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경제개혁연대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지칭할 수 있는 법 제도와 현실 관행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성명서에서 밝힌 바 있다. 삼성은 그동안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2개의 핵심회사를 각각 지주회사로 만들어 지배구조 이슈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돼 있고 형사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 만큼 지주회사를 통한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이슈 해결은 당분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경제개혁연대는 “수많은 계열사의 분할과 합병을 거쳐야 하는 지주회사 전환 작업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전에는 시도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1375호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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