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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삼성 컨트롤타워 변천사] 그룹의 구심점에서 쇄신의 진원지로 

 

남승률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비서실→구조본→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 … 계열사별 이사회 경영 시험대 올라

▎삼성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왼쪽)과 장충기 차장 등 수뇌부 9명은 곧바로 퇴사했다.
“글쎄요, 소속사로 돌아갈지, 대기 상태로 있을지 아직 모르겠네요.”

3월 2일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관계자는 심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느 계열사 출신이냐에 따라 삼성전자·생명·물산에서 임시로 일하다 원래 소속사로 가지 않을까 싶다”며 “길면 한 달은 떠돌이 생활을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창업 79년 만에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삼성이 조직 쇄신 차원에서 그룹의 심장부였던 미래전략실을 3월 1일자로 없애면서 이곳에서 일하던 임직원도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미래전략실의 전략·기획·인사지원·법무·커뮤니케이션·경영진단·금융일류화지원 등 7개 팀에는 각 계열사에서 파견된 임직원 200여 명이 일했다.

그나마 계열사로 돌아갈 여지가 있는 임직원들은 행복한 편이다. 그룹의 2인자로 불리던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정현호 인사팀장(사장) 등 수뇌부 9명은 상담역이나 고문직 등의 혜택 없이 바로 퇴사했다. 아울러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에서 ‘그룹’이란 명칭도 사실상 사라졌다.

미전실 수뇌부 9명 상담역 혜택 없이 바로 퇴진


미래전략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더불어 삼성을 이끄는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갤럭시 노트7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진데다 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에서 최순실 일가 지원 등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마에 올랐다. 특히 미래전략실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최순실 일가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삼성 미래전략실에 많은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창업자이신 선대 회장이 만드신 것이고 회장께서 유지해오신 것이라 조심스럽지만 의원님과 국민의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면 (미래전략실 폐지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미래전략실의 모태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1959년 만든 삼성물산 비서실이다. 1959년부터 1998년까지는 비서실, 이후 2006년까지는 구조조정본부,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전략기획실이란 이름으로 그룹 의사결정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삼성물산 비서실은 1970년대 들어 인사·재무·감사·기획·홍보 등을 담당하는 300여 명 규모의 조직으로 커졌다. 그러던 1997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을 바꾸고 계열사 재편 작업을 주도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재벌개혁의 과제로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폐지를 들고나오면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도 존립 위기를 맞았다. 구조조정본부가 계열사 간 부당거래와 상호지급보증 등을 주도하고 오너의 편법 상속을 기획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지목됐기 때문이다. 다만 LG·코오롱 등과 달리 삼성 구조조정 본부는 정부의 재벌개혁 공세에도 건재했다.

위기를 넘긴 구조조정본부는 2006년 다시 전략기획실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불법 정치자금 조성과 증여가 드러난 이른바 ‘X파일’ 사건 이후다. 그러나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수조원대 차명계좌 운용 등이 드러나면서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 등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전략기획실도 해체됐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전략기획실은 2010년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다. 그룹의 중장기 투자와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뜻에서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삼성의 컨트롤타워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삼성은 미래전략실 기능을 유지하는 어떤 조직도 두지 않을 계획이며, 앞으로 모든 의사결정은 각 계열사 자율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이 총괄했던 그룹 차원의 전략·기획·인사·법무·홍보 등의 업무는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미래전략실이 수행했던 대관 업무는 없애기로 했다. 그룹 차원의 인사는 계열사별 인사로 바뀌고, 그룹 차원의 신임 임원 만찬, 연말 CEO 세미나, 간부 승격자 교육 등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하나된 삼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사내 방송도 없앨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룹 차원의 공개채용도 상반기에 이뤄질지 미지수다. 특히 하반기부터는 각 계열사별로 인력을 충원한다. 이에 따라 신입직보다 경력직 채용이 늘어나 삼성이 ‘경력직의 블랙홀’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삼성은 어디로 갈까. 삼성이 2월 28일 발표한 경영쇄신안에서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쇄신안에는 미래전략실 해체와 간부 전원 사퇴,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 자율 경영, 그룹 사장단 회의 폐지, 대관업무 조직 해체, 일정액 이상 외부 출연금에 대한 이사회 승인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 가운데 미래전략실 해체와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 자율 경영이 이번 쇄신안의 핵심이다. 한국식 오너경영에서 벗어나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를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그동안 총수가 큰 그림을 그리면 미래전략실이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계열사가 이를 실행하는 수직적인 구조로 움직여왔다. 앞으론 계열사별 CEO와 이사회가 이런 역할을 맡는 구조로 바뀐다.

삼성 쇄신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계열사별 자율 경영은 이뤄질 수 있겠지만 오너만이 결단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이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래전략실 해체를 계기로 세대교체 발걸음이 더욱 빨라질지도 관심사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 등이 삼성을 떠났다. 특히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최지성 부회장의 거취에 관한 소문이 많이 돌았다. 이학수 부회장이 물러났듯 최지성 부회장도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었다. 이 부회장이 친정체제를 강화하려면 ‘이건희 회장의 사람’을 내보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이병철 회장의 사람을 퇴진시켜 조직 장악력을 강화했다. 이재용 부회장도 인적쇄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사팀장인 정현호 사장마저 물러난 마당이라 세대교체가 당장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질서있는 퇴진이 이뤄져야 하는데 다음 세대까지 갑자기 옷을 벗었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수인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재편 작업도 더뎌질 수 있다. 3월 24일 열릴 예정인 삼성전자 주주총회 안건에도 이 내용은 올라와 있지 않다. 더구나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중이라 삼성에 복병이 될 수 있다. 이와 달리 미래전략실 해체나 이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반론도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기존 미래전략실 같은 조직을 지주회사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5월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검토 결과를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1375호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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