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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교수의 ‘중소기업 강국으로 가는 길’(3)] 끊어진 ‘중소기업→대기업’ 사다리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 수십 년째 제자리... 글로벌 시장 판로 지원 정책으로 선회해야

중소기업을 표현할 때 ‘99·88’이라는 암호가 등장한다. 그리고 ‘99·88’ 앞에 ‘경제의 중심’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꽉 찬 숫자만큼이나 양적으로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99·88’은 양적 의미만 있지 않다. 중소기업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숨어 있다.

사업체는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개인사업체 및 회사 법인을 의미한다. 한국의 전체 사업체 수는 354만 개다. 과거 중소기업에 대한 정의는 매출, 자본, 종사자 등 복잡한 기준을 적용했으나 2015년부터 업종별 매출액으로 단순화시켰다. 이런 기준에 따라 전체 사업체에서 중소기업 비중은 99.9%다. 그리고 한국 전체 종사자 수(1596만 명)의 87.9%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바꿔 말하면, 대기업은 3132개로 전체 사업체의 0.1%이며, 대기업 종사자는 전체 종사자의 12.1%이다. 이리하여 탄생한 숫자가 ‘99·88’이다.

독일·일본이 중소기업 강국으로 불리는 이유


그럼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자. 사업체 비중을 보면, 대부분 국가는 중소기업 비중이 절대적이다. EU(유럽연합, 28개국)는 99.8%, 독일은 99.5%, 프랑스는 99.9%, 일본은 99.0%이다. 99라는 숫자는 같다. 그러나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은 큰 차이가 있다. EU는 66.8%, 독일은 62.8%, 프랑스는 63.0%, 일본은 76.1%이다. 정리해보면, EU는 ‘99·67’, 독일은 ‘99·63’, 프랑스는 ‘99·63’, 일본은 ‘99·76’이다. 한국은 ‘99·88’이다.

과연 이런 나라들과 한국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독일, 프랑스, 일본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더 많은 선진국이며, 흔히들 중소기업 강국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종사자 비중은 우리와 비교해 대기업 종사자 비중이 월등히 높다. 어느 날 갑자기 대기업 규모로 창업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선진국의 대기업 종사자 비중이 큰 것은 기업의 성장, 즉 시간의 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 처음에 소규모로 창업해서 소상공인, 소기업, 중기업, 대기업으로 커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중소기업에 입사했지만, 은퇴할 때 내가 다닌 회사가 대기업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대기업이 많기에 그들은 선진국이 됐고, 그런 대기업의 시작이 중소기업이었기에 중소기업 강국이라 칭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강국은 한걸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야 한다. 선진국의 중소기업 역사는 적어도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 선진국의 기업 역사는 200여 년이 넘는다. 그러나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근대화가 더뎠고, 그래서 중소기업의 역사도 50여 년에 불과하다. 한국은 역사가 100년이 넘는 사업체를 손에 꼽지만, 선진국은 1000년이 넘는 사업체도 있다.

그렇다고 시간을 탓할 수만은 없다. 시간이 흘러도, 즉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해도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은 변하지 않았다. 공식 통계가 존재하는 1994년부터 보면,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은 75%에서 출발한다. 매년 빠르게 상승해 2007년 마침내 88%를 달성했다. 이후 다소 비중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88% 언저리를 맴돈다. 그 사이 1인당 국민소득(명목기준)은 1994년 1만 2006달러에서 2014년 3만3847달러에 도달했다. 다소 등락은 있었지만, 상승 추세는 뚜렷하다.

그동안 우리 중소기업은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적어도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그러했다. 양적 팽창을 강조한 이유는 창업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 놓고 보면, 중소기업은 매년 10여만 개 이상 증가한다. 그러나 속은 다르다. 매년 80만 개 사업체가 창업으로 중소기업 통계에 들어오고, 매년 70만 개 사업체가 폐업으로 중소기업 통계에서 나간다. 그래서 드러난 수치는 매년 10여만 개다. 전형적으로 다산다사(多産多死) 형태이다.

다산다사(多産多死) 속 생계형 창업만 증가

이처럼 창업과 폐업이 악순환하는 이유는 생계형 창업 때문이다.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이 줄어들면서 서비스업 창업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실업 상태에서 생산활동을 위한 생계형 창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창업의 52.4%가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저부가 생계형 창업에 집중됐고, 그밖에 생계형 업종을 포함하면 전체 창업에서 생계형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3%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업종 내 과당 경쟁이 생기니 폐업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창업 후 1년 이내 37.6%, 2년 이내 52.5%가 폐업한다. 이런 다산다사 형태를 양적 팽창 또는 중소기업의 역동성이라 표현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99·88’에서 ‘99·99’를 지향하는 꼴이다.

이제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옮겨가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EU 사례를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소득이 증가할수록 대기업 종사자 비중은 더 커진다. 사업체를 기준으로 보면, EU의 소상공인 비중은 90%를 넘는다. 오히려 한국보다 높다. 소득 수준별로 종사자 비중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만 달러인 국가는 소상공인 종사자 비중이 가장 높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 국가를 보면, 대기업 종사자 비중이 뚜렷하게 높다. 중소기업 강국인 독일, 프랑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계방향으로점차 종사자 비중이 커지고 대기업 중심구조가 자리 잡게 된다. 이게 바로 기업의 성장이며, 기업이 성장한다는 것은 일자리를 그만큼 많이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99·88에서 99·66으로

질적 성장을 수치로 표현하면, 한국 중소기업은 ‘99·88’에서 ‘99·66’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로 고민하는 한국경제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도록 성장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 정책을 큰 틀에서 바꿔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산업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만 집중했다. 대기업이 자동차나 배를 만들면 중소기업은 관련 부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그래서 한국경제는 대기업의 ‘승자독식’을 낳았고, 여전히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며 다닥다닥 붙어서 커피를 끓이고, 닭을 튀긴다. 그 결과 생계를 위한 창업이 생존을 위한 창업이 됐다.

이제 정책은 ‘어떻게 팔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매출이 늘면, 일자리를 늘리게 돼 있다. 기술을 지원해 매출이 늘길 기대하기보다 판로를 지원해 매출이 늘어 일자리가 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동안 중소기업 판로는 국내기업 납품에 의존했다.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 답은 글로벌 시장에 있다.

필자는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다.

1375호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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