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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1) 프롤로그] 노후 걱정은 태산 실제 준비는 찔끔 왜?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미래의 나’보다 ‘현재의 나’ 중시 탓...퇴직 전 5년 속성 과정이 조기 준비보다 효과적

저금리·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조기 노후 준비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단기간에 30~40년 쓸 노후자금을 모으는 게 힘드니 시간의 힘이라도 빌려 보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장기전으로 가야 비용도 적게 먹히고 효과도 커지지만 내 집 마련이나 자녀 교육 같은 눈앞의 지출 유혹에 빠져 실행을 미루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그렇다고 노후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장기전이 여의치 않다면 단기전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단기전이라도 밀도 있고 체계적으로 추진된다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5년 만에 끝내는 속성 노후준비, 이번 호부터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일러스트:중앙포토
한국에서 은퇴는 아직 부정적 개념이다. 빈곤, 두려움, 고독, 무료함 같은 단어와 연관돼서다. 은퇴에 대해 이런 감정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노후 준비가 충분치 않은 탓이다. 대부분의 노후 관련 설문조사에서 노후가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90%가 넘는다. 그러나 노후 준비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70% 가까이 “그렇지 못하다”고 답한다. 노후를 걱정하면서도 준비는 소홀히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베이비부머와 그 직후 세대는 상당수가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들이 현역으로 한참 일할 때엔 금리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인구의 고령화도 심하지 않아 연금의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재산이라곤 아파트 같은 부동산 중심이어서 노후생활비로 쓸 현금흐름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동안 자녀 교육이다, 부모 봉양이다 뭐다 해서 자신의 노후를 대비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뒤늦게 부동산을 줄이고 연금재원을 마련하느라 법석을 떨어보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하는 듯하다.

은퇴설계에 관한 서적이나 전문가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은퇴를 가정해 저축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령화로 은퇴 후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저금리로 재산 증식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노후자금을 모을 마땅한 수단이 부족하니 시간을 벌어 복리효과라도 누리자는 것이다. 이는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된다.

노후 준비 방해하는 ‘시간 비일관성’

그러나 조기 노후 준비는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아서다. 사실 20대에 은퇴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다. 젊은 시절엔 노후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목표, 즉 결혼이라든가 내 집 마련, 육아 등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당장 눈 앞의 생활에 급급한 사람에게 20~30년 뒤에 닥칠 은퇴를 미리 대비하라는 것은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40, 50대도 “노후에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등등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답이 떠오르지 않아 자포자기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노후 준비는 뒷전으로 밀어 놓고 자녀 교육이라든가 부채 상환 등 목전의 지출에 우선적으로 돈을 쓰게 된다. 회사에서 받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남겨두지 않고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이 90%를 넘고 연금보험의 절반 가량이 해지되는 현실이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누구나 장기적으론 올바른 선택을 하고자 하지만 단기적으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금연이나 다이어트가 그 예다. 흡연자는 흔히 건강을 생각해 새해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결심은 12월까지 유지되지만 막상 1월이 되면 마음을 바꿔 흡연 유혹에 굴복하고 만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소망하는 내용이 미래의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예는 일상생활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미국 하버드대가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급여의 2%를 자동이체를 통해 저축하는 것에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모두가 동의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부터 바로 저축이 시작된다는 질문을 던졌을 때엔 오직 30%만 참여하겠다고 했고, 1년 뒤 저축이 시작된다고 했을 때엔 77%나 동의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저축 참여율에 차이가 나는 것은 시간 때문이다. 같은 돈이라도 미래에 사용하는 것보다 지금 사용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시간 비일관성’으로 설명한다. 지금 당장 실행해야 장기적으로 높은 효용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현재의 효용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을 미루려 한다는 것이 시간 비일관성이란 개념이다. 시간 비일관성은 원래 국가의 경제정책이 단기적이고 정치적으로 운영될 때 사용되던 말이었다.

우리의 노후 준비 행태도 시간 비일관성과 관련이 있다.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꿈꾸지만 퇴직 때까지는 한참 남았다. 그래서 저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작 저축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망설이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미래의 나’보다는 ‘현재의 나’를 앞세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엄밀히 말해 조기 노후 준비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은퇴전문가들 사이에선 노후 준비를 일찍 시작하면 비용이나 효과 측면에서 유리한 건 맞지만 그렇게 할 경우 즐겨야 할 시기를 희생하기 때문에 전체 생애의 효용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노후에 발목 잡혀 사는 것은 한 번뿐인 인생을 너무 삭막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조기 노후 준비, 생애효용 감소시켜

그렇다고 노후 준비를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일엔 ‘때’가 있듯이 노후 준비도 어느 시기를 놓치면 힘들어진다. 말하자면 노후 준비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어영부영 지내왔을지 모르지만 이 골든 타임이 지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 정년 퇴직 60세를 기준으로 할 때 54~55세가 그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월급쟁이는 이 시기가 되면 머지 않아 퇴직하리란 생각이 피부에 와닿는다. 같은 노후 준비를 하더라도 젊을 때보다는 더 밀도 있고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착수해야 일은 자신의 자산 상태를 점검하고 은퇴 자금 마련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다. 아울러 부채와 소비, 집 규모를 줄이는 등 다운사이징 훈련도 병행해야 한다. 은퇴 기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취미를 기르거나 재취업을 위한 자기 발전 노력도 이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속성으로 준비할 수 있는 연금상품은 많다. 연금저축보험이나 연금저축계좌는 가입 후 5년이 지나고 55세 이상이면 연금 수급자격이 생긴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은 55세 이후엔 가입기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보험사가 취급하는 즉시연금은 가입 다음달부터 연금을 준다. IRP나 연금저축계좌는 불입한도가 있어 연금 준비가 부족할 수 있다. 이때도 방법은 있다. 월지급식 펀드 같은 상품을 들면 연금 형태로 일정 금액이 다달이 지급된다. 이들 상품은 퇴직 후 모아 놓은 노후자금과 원하는 생활비 사이의 괴리를 메워주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1375호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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