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보이지 않는 ‘완장’ 

 

문형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지난해 11월 일본 APU 대학에서 개최한 국제 학술대회에 논문을 발표하려고 일본 큐슈의 벳부에 갔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APU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는데 흰색의 완장을 찬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 보니 학술대회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대부분의 학회나 일반 행사에선 도와주는 사람은 ‘스탭’이라고 쓰인 목걸이를 거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상당히 낯설었다. 그래서 일본 교수에게 완장을 찬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누가 도우미인지 멀리서도 잘 보이잖아요.”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한국사람들에게 완장은 힘있는 사람의 비호 아래 온갖 찌질한 갑질을 하는 사람의 상징이 아니던가. 윤흥길 작가의 [완장]이라는 작품 속의 임종술이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듯이.

아 그렇구나. 완장이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필자의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완장은 누구에게나 눈에 뜨이기 때문에 누구의 위임을 받아 어떠한 일을 하는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즉 투명성 자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으로, 혹은 호의적으로 보이기를 바란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학과 심리학에서는 ‘인상관리’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다. 인상관리의 방법 중 하나가 권력을 가진 사람과 자신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위신을 높이고 이권을 챙기려는 행위다. 완장과 관련해 해석해 보면 권력자의 명시적 혹은 묵시적 비호 아래, 혹은 권력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차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눈의 보이는 완장은 그나마 여러 사람의 눈에 띄게 되니 낫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완장을 차고 있는 경우는 어떨까. 눈에 띄지 않는 완장을 찬 자들은 음습한 상황 속에서 은밀하게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로 보통 사람의 약점을 찌르며 속된 욕망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도 바로 눈에 뜨이지 않는 완장을 차고 설쳐대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던가.

인상관리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동은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 부분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눈에 보이는 완장을 채워 투명하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개인의 탐욕을 억제하는데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선출직이든 비선출직이든 공직자 혹은 권력자 주변의 사람들은 눈에 확실히 띄는 완장을 차도록 하면 좋겠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완장의 투명성 때문에 스스로 조심할 수 있고 또한 완장을 채워준 권력자 혹은 공직자를 생각해서라도 사적 욕심을 채우는 행동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권력자, 혹은 공직자로부터 권한을 정당하게 위임받아 정당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완장을 차게 되는 세상을 보고 싶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 무게를 엄중하게 느끼게 하는 완장을 보고 싶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는 완장이 권력자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떡고물’을 만지는 사람의 상징이 아니라, 권력을 투명하게 위임받고 행사하며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징표가 되기를 바란다. 완장을 찬자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들을 조종하는 ‘진짜배기 거대권력의 무자비한 속성’을 ([완장] 4판 작가의 말) 솎아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는 하지만.

1376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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