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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로가 만난 사람’을 시작하며 |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30여 년간 축적한 경험,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관료출신으로 기업·외환은행장 역임 … “은행 성장하려면 순혈주의 없애야” 쓴소리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 사진:신인섭 기자
윤용로(62) 전 외환은행장은 책 마니아다. 매일 꼭 10~15페이지씩 책을 읽는다. 학창시절 때부터 지금까지 꼭 지켰다. 최근 재미나게 본 책 한 권이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가 쓴 [슈독(shoe dog)]이란 제목의 자서전이다. 슈독은 ‘신발 연구에 미친 사람’을 뜻하는 은어다. ‘다른 자서전과 뭐가 다르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생각이 달라졌다. 보통 성공한 최고 경영자(CEO)라면 자신의 화려한 성공담을 써내려가지만 이 책은 달랐다. 윤 전 행장은 “신발에 미치광이가 된 얘기부터 일본 배낭여행 중 만난 여자친구 얘기, 나이키의 탄생 비화 등 한 권의 일기장을 보는 듯했다”며 “그가 책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CEO로서 ‘이렇게 살았다’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라’라고 알려주는 인생 지침서 같았다”고 말했다.

윤 전 행장은 1977년 행정고시 21회에 수석 합격해 관직을 시작했다. 그 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은행제도과장과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공보관·감독정책2국장·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까지 지낸 후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장(2007~2010년)을 거쳐 시중은행인 외환은행장(2012~2014년)을 지냈다. 관료 출신 중에 은행장을 두 차례나 지낸 유일한 사람이다.

일 잘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어서 관료 선후배들의 평가도 좋았다. 재경부 과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일 잘하는 관료’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사연은 이렇다. 노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일할 때였다. 당시 노 장관의 최대 고민은 수협중앙회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 문제였다. 공적자금 투입 결정권을 쥔 재경부는 수협을 은행사업과 경제사업으로 나눠야만 은행사업에 공적자금을 넣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해수부는 “분리는 절대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었다. 윤 전 행장은 당시 재정경제부 은행과장이었다. 노 장관은 윤 과장을 장관 집무실로 불러 재경부의 입장을 들었고, 윤 과장은 차분히 공적자금 투입 원칙을 설명했다. 결국 은행부문과 경제사업부문 간에 방화벽을 쌓는 등 보완책이 마련돼 수협은 1조2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고, 해수부는 최대 현안을 풀 수 있었다. 노 장관은 당시 윤 과장의 합리적인 업무 추진과 논리 정연한 설명에 반해 나중에 윤 과장 등에 저녁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윤 전 행장이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성품임에도 관료나 뱅커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간적인 매력을 유지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윤 전 행장은 은행장 시절 최고의 성과를 냈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리더로 꼽혔다. 그는 현재 법무법인 세종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인생 강의도 한다. 중앙일보가 만드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윤 전 행장이 경제분야의 명사(名士)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윤용로가 만난 사람’ 연재를 시작한다. 인터뷰어로 직접 나설 예정인 윤 전 행장을 지난 3월 7일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세종 집무실에서 만났다.

“좋든 싫든 여러 경험이 인생 밑거름”

그는 “지난 30여 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누리며 살았다”며 “내가 받았던 것들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 경제는 저출산·고령화로 잠재 성장률은 하락하고,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갈 후배들이 살기가 녹록지 않다. 때문에 후배들이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건 지금 상황에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윤 전 행장의 얘기다. 그는 “우리 시대에 성공한 리더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과 경험들을 공유함으로써 현 세대를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1년 미국 연방정부 차관 자리에 올랐던 고(故) 전신애 노동부 차관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몇 년 전 고 전 차관이 한 강의에서 앞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15~20개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한 가지 직업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윤 전 행장도 이 말에 동의한다. “윗사람들은 후배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왜곡된 것”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를 알려면 일단 해봐야 하는데 정작 그런 기회는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기업들의 조직문화에 달렸다고 했다. 지금처럼 성별·지역·출신학교로 쪼개지고, 여전히 윗사람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경직된 조직에서는 기회는 물론, 능력있는 리더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은행들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조직문화가 보수적이라 A은행에 다니는 은행원은 B은행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한다”며 “세계 무대에서 뛰어야 하는 플레이어들이 순혈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풀어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보상까지 더해진다면 개인도, 조직도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는 두 번의 은행장을 지내는 동안 무수한 회의에서도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윤 전 행장은 “행장이 웃고 있어도 직원들은 어려워하는데, 혹시 화라도 낸다면 직원과의 소통은 아예 단절된다”며 “회의에서도 직원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지막에 짤막하게 하는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CEO는 임기에 연연하지 말아야”

CEO가 임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쓴소리도 보탰다. 그는 “임기가 1년이라도 1년을 3년처럼 하면 되지 않느냐”며 “임기에 연연하다 보니 상황이 안 좋을 땐 숨죽여 지내고, 반대일 경우에는 보여주기 위한 일들을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그가 공직에서 기업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 2007년 말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한파가 불어닥치기 직전이었다. 당시 다른 시중은행들은 위험을 줄이겠다며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거나 회수하며 문을 걸어 잠그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돈줄이 말라가는 중소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를 때 그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윤 전 행장은 기업 지원을 위해 정부를 설득해 1조원이 넘는 돈을 증자받았다. 자본금 1억원을 늘리면 12억원 가량을 기업들에 대출해 줄 수 있다.

2007년 12월부터 퇴임한 2010년 말까지 은행권 전체 중소기업대출 순증액의 90%를 기업은행이 담당했다. 그는 “중소기업 지원은 기업은행이 해야할 본연의 역할이지만 자칫 무리하게 늘린 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며 “그러나 2008년 연체율은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자산건전성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다”고 말했다. 현직을 떠났어도 금융산업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선·후배들을 만나면 국내외 금융시장 얘기를 많이 나눈다. 후배들이 그를 찾아와 경영 전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윤 전 행장은 “저성장·저금리에 이어 지금 시작된 4차 산업혁명도 금융권에 위기”라며 “지금이야말로 이런 변화에 도전할 수 있는 뚝심 있는 리더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1376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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