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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여러 경험이 인생 밑거름”그는 “지난 30여 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누리며 살았다”며 “내가 받았던 것들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 경제는 저출산·고령화로 잠재 성장률은 하락하고,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갈 후배들이 살기가 녹록지 않다. 때문에 후배들이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건 지금 상황에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윤 전 행장의 얘기다. 그는 “우리 시대에 성공한 리더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과 경험들을 공유함으로써 현 세대를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1년 미국 연방정부 차관 자리에 올랐던 고(故) 전신애 노동부 차관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몇 년 전 고 전 차관이 한 강의에서 앞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15~20개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한 가지 직업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윤 전 행장도 이 말에 동의한다. “윗사람들은 후배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왜곡된 것”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를 알려면 일단 해봐야 하는데 정작 그런 기회는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청년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기업들의 조직문화에 달렸다고 했다. 지금처럼 성별·지역·출신학교로 쪼개지고, 여전히 윗사람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경직된 조직에서는 기회는 물론, 능력있는 리더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은행들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조직문화가 보수적이라 A은행에 다니는 은행원은 B은행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한다”며 “세계 무대에서 뛰어야 하는 플레이어들이 순혈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풀어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보상까지 더해진다면 개인도, 조직도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는 두 번의 은행장을 지내는 동안 무수한 회의에서도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윤 전 행장은 “행장이 웃고 있어도 직원들은 어려워하는데, 혹시 화라도 낸다면 직원과의 소통은 아예 단절된다”며 “회의에서도 직원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지막에 짤막하게 하는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CEO는 임기에 연연하지 말아야”CEO가 임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쓴소리도 보탰다. 그는 “임기가 1년이라도 1년을 3년처럼 하면 되지 않느냐”며 “임기에 연연하다 보니 상황이 안 좋을 땐 숨죽여 지내고, 반대일 경우에는 보여주기 위한 일들을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그가 공직에서 기업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 2007년 말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한파가 불어닥치기 직전이었다. 당시 다른 시중은행들은 위험을 줄이겠다며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거나 회수하며 문을 걸어 잠그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돈줄이 말라가는 중소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를 때 그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윤 전 행장은 기업 지원을 위해 정부를 설득해 1조원이 넘는 돈을 증자받았다. 자본금 1억원을 늘리면 12억원 가량을 기업들에 대출해 줄 수 있다.2007년 12월부터 퇴임한 2010년 말까지 은행권 전체 중소기업대출 순증액의 90%를 기업은행이 담당했다. 그는 “중소기업 지원은 기업은행이 해야할 본연의 역할이지만 자칫 무리하게 늘린 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며 “그러나 2008년 연체율은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자산건전성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다”고 말했다. 현직을 떠났어도 금융산업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선·후배들을 만나면 국내외 금융시장 얘기를 많이 나눈다. 후배들이 그를 찾아와 경영 전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윤 전 행장은 “저성장·저금리에 이어 지금 시작된 4차 산업혁명도 금융권에 위기”라며 “지금이야말로 이런 변화에 도전할 수 있는 뚝심 있는 리더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