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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 한·미 FTA의 운명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협정도 없었다. 협상과 국회 비준 과정에서 노조와 시민단체, 일부 여당 의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광우병이 번진다’ ‘맹장수술비가 900만원까지 오른다’ 등 FTA 괴담이 퍼지면서 사회적 갈등 비용도 컸다.

안착하나 했는데 발효 5주년(3월 15일) 시점에 복병을 만났다. 협정 상대방인 미국이 불공정하다며 재협상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정부의 로버트 라이시저 무역대표부(USTR) 내정자는 한국과 멕시코를 대표적인 대미(對美) 흑자국으로 지목했다. USTR도 의회에 제출한 무역정책 보고서에서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 적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이는 미국인이 기대한 결과가 아니다’고 한·미 FTA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맞서라. 한·미 FTA로 양국이 ‘윈-윈’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근거로 제시하며 설득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체결한 20개 FTA 중 양국 모두 상대국에서 시장점유율이 뚜렷하게 높아진 경우는 한·미 FTA가 유일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지난 5년은 세계 교역규모가 10% 감소한 교역침체기였다. 이 와중에도 양국 간 교역은 연평균 1.7%씩 증가했다. 상대국 수입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높아졌다. 미국 내 한국 상품 점유율이 2011년 2.6%에서 지난해 3.2%로 높아졌고, 미국 상품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8.5%에서 10.6%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이 상품수지 흑자를 116억 달러에서 233억 달러로 키운 사이 미국은 서비스수지 흑자를 109억 달러에서 141억 달러로 늘렸다.

단순 비교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더 큰 이익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서비스수지의 외화가득률이 상품수지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각종 원·부자재와 기계, 노동력을 투입해 물건을 만들어 팔아 이익을 내는 것과 특허나 저작권 등 서비스로 이문을 보는 것은 비교가 안 된다.

직접투자에서도 미국이 거둔 이익이 더 크다. 한국의 대미 투자규모는 한·미 FTA 발효 이전 4년간 연평균 22억 달러에서 이후 4년간 57억 달러로 증가율이 159%다. 지난해 투자액만 129억 달러에 이르며, 올 들어선 트럼프 정부의 압박에 따라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공장을 짓기로 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투자는 대부분 지분을 인수하는 ‘M&A(인수합병)형’이 아니라 공장이나 사업장을 짓고 현지 인력을 고용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그린필드(Green Field)형’이다. 이를 통한 미국 내 직접 고용 인력이 이미 5만 명에 이른다.

재협상이 이뤄져도 미국에 꿀릴 게 없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에서 협상을 시작해 타결 짓고,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에서 효과를 본 특별한 정책 사례다. 의미가 큰 국가간 협상의 자유무역 기조를 정권교체기에 퇴보시켜선 안 된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로 인수위원회가 구성되지 않고 정권이 바뀌는 상황에서 빈틈을 노출해선 곤란하다. 5월 9일 대선까지 현 경제팀은 차분하게 대응 논리를 준비하고, 차기 정부는 미국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재협상 자체를 차단하거나 범위를 최소화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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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7호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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