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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교수의 ‘중소기업 강국으로 가는 길’(4)] 재벌은 해체하고 대기업은 키우자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한몸... 중기, 하청(下請) 아닌 상청(上請) 시대 열어야

지난 5개월은 혼돈의 시간이었다. 처음엔 믿고 싶지 않았다. 믿지 않으면 보수가 됐다. 나돌던 추측과 추문이 하나둘씩 사실로 드러났다. 사실을 받아들이면 진보가 됐다. 가치 판단이 혼란스러웠다. 법은 정의로웠고, 명쾌했다. 자욱한 안개가 걷혔다. 그러나 누구의 승리도 아니다. 그저 아픈 사람과 더 아픈 사람만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바로 19대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교체는 의미가 없어졌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그동안 시대정신은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시대정신 앞에 이념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산업화를 했고, 민주화는 모두의 염원이었다. 그러나 산업화는 승자독식을, 민주화는 패권을 만들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지원)했다. 지원을 받은 자는 승자가 됐고, 우리는 승자독식을 용인했다. 민주화가 익숙해졌고, 우리는 감시와 견제를 소홀히 했다. 그사이에 경제와 정치의 패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승자독식과 패권은 불평등이라는 사회의 분절과 좌우라는 이념의 대립을 낳았다. 분절과 대립은 너무나 뚜렷해 타협이나 중용이 설 자리는 없었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보수와 진보는 50대50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했다. 경제에서 50대50은 균형을 달성한다. 그러나 정치는 균형보다 승리가 목적이다. 누가 51대49를 만드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다. 옆 진영에서 한 명을 빼앗아 와야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는 경제민주화로 진보를 공략했다. 그 결과 박근혜 후보는 51.6%로 48%의 문재인 후보에 승리했다. 딱 한 명을 데려왔다. 너무도 절묘한 결과다.

경제민주화, 균형적 시각에서 봐야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허상에 불과했다. 보수 정부의 진보 과제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부터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활성화를 택했다. 이마저도 백약이 무효였고, 경제 침체는 길어졌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를 모아놓고 노골적으로 돈을 요청·요구하며 승자의 몫을 토해내게 했다. 제왕적 패권의 구태는 여전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다시 등장했다. 19대 대통령 선거의 경제민주화는 18대 대통령 선거의 그것과 다르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에서 승리를 위한 것이라서 그 정도가 깊지 않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진보끼리 경쟁한다. 경제민주화가 더 거칠어졌다. 옆 진영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진영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 양상이다. 그래서 더 센 것, 더 강한 것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한 몸이다. 바꿔 말하면 경제민주화의 마지막 목표는 경제활성화 또는 경제성장이다. 경제민주화는 진보, 경제활성화는 보수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필요치 않다. 우리 경제의 저성장은 뚜렷하다. 여기에 높은 청년 실업, 심해진 소득 불균형, 빨라지는 고령화가 더해졌다. 저성장에서 벗어날 기운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민주화의 대상을 재벌과 대기업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재벌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군을 말한다. 재벌은 영어로도 ‘Chaebol’이라 쓴다. 한국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업의 승자독식을 용인하면서 대기업은 재벌이 돼갔다. 재벌은 시장뿐 아니라 부도 독점했다. 특히 창업세대의 은퇴 시점과 맞물려 부의 대물림은 시작됐고 불평등은 ‘금수저’와 ‘흙수저’ 논란으로 이어졌다. 재벌 총수의 자식은 지분이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는 계열사에 입사한다. 총수는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사를 먹여 살린다. 그 사이 자식은 초고속 승진을 하고, 지분을 늘리고, 다른 계열사와 합병을 주도하고, 지주회사의 최대 지분을 갖게 된다. 마침내 경영과 부의 세습을 완료한다.

결국, 내부거래는 효율을 빙자한 사익 편취의 수단인 것이다.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내부거래는 총수 일가(특수관계인 및 친족) 지분이 상장회사는 30%, 비상장회사는 20% 경우에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제재 수단은 과징금이나 증여세를 더 내는 정도다. 민간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금액은 드러난 게 159조원(2015년)이다. 재벌은 내부거래를 통한 이득이 더 많으므로 과징금이나 증여세는 기꺼이 부담한다. 총수 일가가 단 0.001%의 지분이 있다면 내부거래를 아예 금지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대기업의 순기능은 지켜줘야 한다. 모든 재벌은 대기업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대기업이 재벌은 아니다. 대기업 모두를 재벌로 인식한다면, 저성장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침체는 길어지고, 성장은 더딜 것이다. 먼저, 재벌이 대기업으로 돌아갈 시간을 줘야 한다. 계열사나 지분을 정리하는 시간 말이다. 그리고 재벌은 해체하되, (청년, 여성, 비정규직) 고용을 전제로 대기업의 역할을 도와야 한다. 특별 조치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수도권 공장 신설 허용, 법인세 특별 감면 등이다. 복지 부담 때문에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곤 한다. 오히려 법인세를 내려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고, 생산적 복지를 통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결국,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정부도, 근로자도 아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거는 기대

재벌 해체를 통한 경제민주화와 대기업 투자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실현한다면 그 다음은 중소기업 차례다. 재벌의 내부거래를 금지한다 해서 중소기업이 이를 고스란히 갖고 갈 수 없다. 거래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끊임없는 개발과 혁신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수직계열화가 아닌 수평계열화를 구축할 수 있다. 그동안 대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하고, 중소기업은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下請)’에 의한 수직계열화가 중심이었다. 짜인 틀에서 납품만 하면 됐기에 혁신이 필요치 않았다. 이제 중소기업의 혁신이 대기업의 신제품에 반영되는 ‘상청’(上請)에 위한 수평계열화가 이뤄져야 한다. 수평적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시대의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좌우의 균형이 깨진 지금 반성이 일방적인 질타가 돼선 안 된다. 그러다 자칫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지만, 정치인은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19대 대통령 선거는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을 논하고 결정하는 자리다. 이념의 균형이 깨졌다고 미래를 보는 시각도 균형을 잃어선 안 된다.

필자는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다.

1377호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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