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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 전경련의 간판 바꿔달기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3월 24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혁신안을 발표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기금 모금의 창구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난 지 6개월 만이다. 사과의 시기도 늦었을 뿐더러 혁신안도 영 미덥지 않다. 과거 몇 차례 들었던 익숙한 사과 발언과 혁신안에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아서다.

전경련은 첫째로 사회본부를 폐지하는 등 조직을 감축한다고 했다. 정경유착의 창구로 지적된 문제의 조직을 없앤다는 것이다. 전경련 회비의 77%를 담당해온 삼성·현대차·SK·LG 4대 그룹이 탈퇴한 마당에 조직 축소는 필연이다. 둘째, 사회협력 회계를 폐지하고 다른 활동 내역과 재무 현황을 연 2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관제데모 등 정치적 목적으로 자금이 지원되는 것을 막는 한편 전반적으로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셋째, 한국기업인연합회(한기련)로 이름을 바꾸고, 회장단 회의를 없애는 대신 회원사 전문경영인으로 경영이사회를 두기로 했다. 재벌 총수 개인이 아닌 기업이 중심인 모임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넷째,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기능을 강화해 경제 산업 분야 싱크탱크가 되겠다고 했다.

전경련이든, 한기련이든 간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 국민이 묻는 것은 ‘과연 전경련과 같은 대기업 단체가 계속 필요한가’다. 경제단체로는 전경련 외에도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견기업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많다.

전경련은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7월 부정축재자로 처벌받지 않는 대신 공장을 건립해 속죄하고, 단체를 만들어 정부에 협력하기로 약속하며 설립한 ‘경제재건촉진회’가 모태다. 태생적 배경이 이런 탓인지 역대 정권이 필요로 할 때 재벌들의 돈을 모아주는 수금원과 정치적 민원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다. 급기야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부른 미르·K스포츠 재단 기금 모금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해체 압력을 받자 간판 바꿔달기와 조직 축소를 선택한 것이다.

산업화가 시급해 대기업 중심 경제개발이 용인됐던 개발 연대와 달리 이제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업을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면 대기업들만 독주하지 않고 중소·벤처기업 등 산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손잡고 뛰어야 한다. 소수 재벌의 기득권과 정치권력 입장만 대변하는 이익집단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도, 지속 가능할 수도 없다.

전경련의 대국민 사과와 혁신안 발표는 처음이 아니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등 정경유착 비리가 터질 때마다 사과하고 쇄신을 다짐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여론이 비등할 땐 ‘기업경영헌장’을 제정해 투명경영, 준법경영, 동반성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선언에 그쳤을 뿐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대한 지지 홍보, 노골적 관제데모를 주도한 어버이연합을 편법 지원하는 정치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관이든 기업이든 거듭나려면 과오가 드러난 직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혁신해야 한다. 전경련은 이미 사과의 시기를 놓쳤다. 남은 것은 약속대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다. 또다시 어물쩍 넘기려다간 강제 해체당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1379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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