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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풍년의 패러독스] 농민 “벼 농사 지어 뭐해?”, 정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소비자 “쌀값 왜 이리 비싸?”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쌀 소비 감소→쌀 공급 과잉→농가 소득 감소→정부 지원’ 악순환... 직불금 등 퍼주기 정책 지양하면서 생산량 조절 나서야

“농사 지어봤자 뭐하나…”(농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이젠…”(정부) “쌀로 만든 건 비싸서…”(소비자). 남아도는 쌀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공급 과잉으로 쌀 농가 소득은 갈수록 줄어들고, 정부는 이런 농가를 지원하느라 허리가 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쌀 가격이 싸지도 않다. 결국 ‘쌀 소비 감소→쌀 공급 과잉→농가 소득 감소→정부 지원’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해결책은 공급을 줄이거나 소비를 늘리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쌀에 대한 인식, 산업구조,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맞물린 탓이다. 쌀을 소비할 대안 마련도 쉽지 않은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까.


▎사진:아이클릭
쌀 농가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쌀값 하락으로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쌀 생산에 따른 순수익은 3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3월 29일 통계청이 내놓은 ‘2016년산 논벼(쌀) 생산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a(1000㎡)당 총수입에서 생산비를 뺀 순수익은 18만1825원을 기록했다. 1987년 16만379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순수익률은 21.2%로 전년(30.4%) 대비 9.2%포인트나 감소했다. 쌀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줄었지만, 판매단가가 더 많이 떨어진 결과다. 지난해 10a당 쌀 생산비는 67만 4340원으로 전년(69만1869원) 대비 2.5% 감소했다. 2013년(72만5666원) 정점을 찍은 이후 줄곧 감소 추세다. 농가 입장에서 비용 감소는 반가운 일이지만 같은 기간 들어오는 돈의 감소폭이 더 컸다. 2013년 80㎏(1가마니)당 17만4707원 하던 수확기 쌀값은 지난해 12만9711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쌀 총수입은 2013년 10a당 107만4799원에서 지난해 85만6165원으로 줄었다.

농가 쌀 생산 순수익 30년 만에 최저치


쌀 농사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정부의 재정부담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쌀 산업 관련 예산만 5조6956억원이다. 농림부 전체 예산의 39.3%에 달한다. 특히 쌀 직불금 규모가 크게 늘었다. 쌀 직불금은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를 정부가 보전해 주는 제도다. 논 면적에 따라 지급하는 고정직불금과 매년 달라지는 변동직불금으로 나뉜다. 고정직불금으로 ha당 100만원을 주고, 목표가격(현재 기준 80㎏당 18만8000원)과 실제 쌀값 간 차액의 85%까지를 변동직불금으로 준다. 쌀값이 떨어질수록 보조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지난해 수확한 쌀의 직불금 지급총액은 2조3283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2012년(6101억원) 이후 증가 추세다. 쌀값 하락에 따른 변동직불금 급증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수확한 쌀의 변동직불금 지급단가는 80㎏당 3만3499원이다. 2015년산(1만5867원)의 2배가 넘는 수준이고, 2014년산(4226원)의 8배 달하는 금액이다. 2005년 제도 시행 이후 가장 많다. 농가 전체에 지급되는 변동직불금 총액도 사상 최대인 1조4900억원이다. 그나마 애초 계획보다 줄어든 규모다. 정부는 원래 단가를 3만3672원으로 정했다. 하지만 이 경우 총액이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농업보조총액(AMS) 1조4900억원을 초과한다. AMS 상한선을 넘으면 WTO 제소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결국 변동직불금 지급액을 173원 깎아야 했다.

쌀 직불금은 사상 최대 규모


이 밖에 쌀 산업 관련 예산은 모내기부터 사료용으로 팔려나가기까지 과정마다 배정된다. 모내기 시기에는 종자 수매, 기르는 동안에는 비료 등을 지원한다. 또한 2005년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이후 정부는 쌀값이 떨어지면 수급 안정을 위해 시가로 쌀을 사들여 보관하는데, 여기에 책정된 예산만 올해 1조3746억원이다. 쌀 재고가 쌓여가면서 보관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 재고 10만t을 관리하는 데 연간 316억원의 비용이 든다.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재고 쌀은 200만t 정도다. 한 해 쌀 생산량의 절반, 식량농업기구(FAO)가 권유하는 공공비축 권고 기준(연 생산의 17%)인 70만t의 세 배 수준이다.

농가는 소득 감소에, 정부는 재정 부담에 시달리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려가지 않는 쌀값이 야속하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명자(59)씨는 “쌀값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실제 싸졌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며 “농민의 어려움도 이해하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나라가 꼭 쌀값을 떠받쳐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소비자가 구입하는 쌀값은 농가의 판매 가격에 비해 하락폭이 작다. 통계청에 따르면 미곡 농가판매가격지수는 2013년 124.5에서 지난해 100.1로 24% 감소했지만, 쌀 소비자물가지수는 2013년 104.2에서 89.7로 13% 하락하는 데 그쳤다. 여러 단계에 걸친 유통 과정과 정부의 쌀값 부양 정책의 영향이다.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 수입 감소와 정부 부담의 증가는 풍년이 만든 역설이다. 수요는 빠르게 감소하는데, 생산량은 그에 비해 더디게 줄면서 2000년 이후부터 초과 공급이 지속됐다. 특히 최근 4년간 풍작이 이어지면서 쌀 생산량이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쌀 생산량은 419만7000t으로 432만 7000t이었던 전년 생산량보다는 소폭 감소했지만 401만t이었던 2012년보다는 오히려 늘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쌀 생산량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소비 감소에 비해 감소세가 더디다. 2006년 쌀 생산량이 468만t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사이 쌀 생산량은 10.3% 줄었다.

“직불금제가 생산 과잉 불러”


이와 달리 쌀 소비량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06년 78.8㎏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61.9㎏으로 10년 사이 21.4%나 급감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130.1㎏에 달했던 1984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 사이 쌀 생산량과 재배면적은 각각 1.3%, 2% 감소했고, 같은 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연평균 2.5% 줄었다.

쌀 소비 감소는 인구 구조와 생활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하고 건강식을 선호하면서 다른 곡물이나 채소류 식사가 늘었다. 최근에는 탄수화물을 최소한으로 섭취하는 ‘저탄수(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유행하기도 했다. 또 1인·맞벌이 가구 증가에 따른 간편식 확대도 쌀 소비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단발성 원인이 아닌 만큼 쌀 소비량은 앞으로 계속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1인당 쌀 소비량이 사상 처음으로 6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쌀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국내 생산이 이런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공급 과잉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잉 생산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일단 쌀 재배면적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지만, 같은 면적에서 생산되는 쌀의 단위 생산량이 늘었다. 벼 재배 면적은 1990년대 중반 정부의 쌀 증산정책에 따라 2000년대 초반까지 소폭 증가했지만 이후 조금씩 감소하는 중이다. 2002년 105만ha였던 벼 재배 면적은 2016년 기준 77만9000ha로 줄었다. 이와 달리 논벼 10a당 쌀 생산량은 2012년 473㎏에서 지난해 538㎏으로 증가했다. 품종 개량과 생산기술 발달 등의 영향이다.

전문가들은 보조금 정책에서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농가가 쌀 생산에 치중해 과잉 공급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았다는 것이다. 쌀을 제외한 농산물은 가격 하락에 대한 제도화된 정책이 없는 반면, 쌀은 값이 목표가격 이하로 하락하더라도 가격 하락분의 일부를 직불금으로 메워준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장기적으로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농가가 다른 작물로 전환하지 않고 쌀 농사를 고수한다는 분석이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앙정부와 별개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쌀 농가를 위한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쌀 생산 농가를 줄이려는 중앙정부의 정책 효과가 반감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쌀 소득보전직불제의 효과와 개선방안’ 보고서는 “수급 균형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목표가격을 설정함으로써 재배면적 감소가 둔화되어 공급 과잉을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농가 수입 떠받쳐주는 정책 한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변동직불금 등의 보조금으로 쌀 농가의 수입을 떠받쳐주는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는 차액 자체가 크지 않지만 앞으로도 쌀값이 계속 하락하면 농민들이 보조금을 받지 못해 보게 되는 손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또 국회예산정책처는 “쌀 소득보전직불제 도입 이후 산지 쌀값은 변동성이 커졌고, 소득 불안정성이 심화돼 사업목적인 농업인 소득 안정은 달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소득 불안정성은 재배면적이 커질수록 심화되었고, 제도 시행 초기보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제시되는 대안 중 대표적인 것은 생산 비연계 방식 직불금제다. 생산하는 쌀의 양과 상관없이 농지 면적에 따라 변동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이 경우 농가가 벼를 대신해 다른 작물을 재배하거나 아예 휴경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쌀 생산 과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도 연내에 생산 비연계 방식 도입을 목표로 법령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 고품질 식용 쌀 가격은 시장에 맡기고, 가공·사료용 쌀에만 직불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작물 심으면 돈 주는 ‘생산조정제’ 검토


정부는 농지에 벼가 아닌 대체작물을 심으면 ㏊당 일정액의 보상금을 주는 ‘쌀 생산조정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는 농가에 ㏊당 300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2년간 2700억원을 들여 논 9만㏊를 감축하면 쌀 생산량 46만t을 줄일 수 있다. 쌀 46만t을 공공매입 등의 방법으로 시장에서 격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3800억원에 이른다. 쌀 공급이 감소해 쌀값이 상승하면 정부가 농민에게 지급하는 변동직불금도 2700억원가량 줄어든다. 1600억원이 넘는 재고관리비용도 아낄 수 있다. 2700억원의 예산으로 81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쌀 농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상황에서 다른 작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작아 생산 비연계 방식으로의 전환 효과가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 휴경 농가에도 직불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2003~05년, 2011~13년 두 차례에 걸쳐 생산조정제를 실시했다. 그런데 벼 대신 대체 작물로 콩을 많이 심다 보니 콩값이 급락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다. 서세욱 국회예산정책처 산업예산분석과장은 “많은 비용을 수반하는 생산조정제를 실시하기보다는 쌀 목표가격을 낮추는 게 현실적”이라며 “다만 정치적인 부담과 농가경제의 타격을 감안해 목표가격을 단계적으로 인하한다는 시그널을 주면서 소득감소분에 대해 직접지불제를 실시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처럼 특정 품목과 재배면적에 연계해 직불금을 지급하면 대규모 농가에 지원이 집중된다”며 “농가의 수입·소득에 맞춰 직불금을 주는 방식으로 바꾸는 걸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한 농협 창고에 가득히 쌓여 있는 정부 양곡 포대.
김 연구위원은 생산조정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구조적인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시적 생산조정제 도입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조정제를 도입해도 당장 재정부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후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농가가 급격히 늘어나 재정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눈 앞에 있는 쌀 재고는 해소해야 하는 만큼 한시적으로 생산조정제를 실시한 다음에 생산 비연계 방식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또 “생산 과잉의 부담을 중앙정부만 지는 게 아니라 지자체와 생산자가 시장 개입 비용을 일부 부담하도록 해 생산 억제를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런 대안에 손도 못 대는 상황이다. 농가의 반발을 의식해서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역구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단순 보조금을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해 입법 실적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본은 내년 쌀 직불금 전면 폐지


▎지난해 11월 25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이 경부고속도로 안성IC 입구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과 쌀값 인상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생활 서구화에 따른 쌀 소비 감소와 공급 과잉 사태에 직면한 일본은 ‘수요에 맞춘 생산’을 목표로 농업개혁에 나섰다. 2013년부터 아베 신조 총리 주도로 쌀 정책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총리실 산하에 '농림수산업·지역의 활력 창조본부'를 설치, 쌀 정책 개혁 추진과 관련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했고 아베 총리가 직접 본부장을 맡아 개혁을 주도한다.

가장 큰 변화는 직불금을 폐지하는 대신 생산조정제를 개편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쌀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했고, 고정직불금도 단가를 절반 수준으로 인하한 후 2018년 폐지할 예정이다. 정부가 생산목표량을 설정하고 이를 지역별로 할당하던 관행이 폐지되는 것이다. 대신 콩이나 밀, 보리 등 전략 작물에 주는 보조금을 확대한다. 쌀 재배를 금지한 농지에 지급해오던 보조금 정책도 뜯어고친다. 쌀을 오래 생산하지 않은 논두렁과 수로가 사라진 논은 다른 농산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방침을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했으며, 각 지자체는 올해부터 농지 정리에 나설 계획이다. 김 연구위원은 “직불금은 폐지했지만 농가 보조금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라며 “쌀 편중 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작물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기사] 쌀 넘치자 ‘식량안보’ 찬반 논란도 - 과도한 공포 vs 쌀 산업 보호


쌀 생산 과잉이 ‘식량안보’ 인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식량안보에 대한 과장과 미신이 쌀 산업의 비합리적 보호와 생산 과잉을 불렀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농업정책 전문가는 “농업의 기계화와 영농기술의 발전으로 쌀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식량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과도한 공포를 조장해 식량안보 명목으로 비효율적인 직접 생산을 지원하는 것보다 해외 농지를 개척하거나 다양하고 안정적인 수입처와 재원을 확보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며 “현실을 인정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포기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반대 논리도 물론 있긴 하다. 식량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소비를 늦출 수 없는 특수성이 있어 최대한 안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주식인 단립종 쌀은 교역량이 많지 않아 수급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크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한국의 식량 수입은 특정 국가나 일부 곡물 메이저에 편중돼 있다. 또한 장기 공급계약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최저가 입찰방식에 따라 구매하는 방식인 만큼 가격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자국 내 쌀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식량안보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쌀 수요가 감소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며 “쌀이 아니라 전체 곡물을 식량안보의 대상으로 보고, 벼 재배가 아니라 전체 작물의 균형을 맞춰 식량 자급률을 올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 경제정보 분석업체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2015년 세계식량안보지수(GFSI)’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74.8점으로 조사대상인 109개 국가 중 26위다.

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곡물자급률은 23.8%다. 쌀 자급률은 101%로 높은 편이지만 밀이 0.7%, 옥수수는 0.8%에 그쳐 쌀을 뺀 곡물의 자급률이 3%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추곡수매제와 공공비축제: 추곡수매제는 쌀값 안정과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정기적으로 시장 가격을 웃도는 정책 가격으로 쌀을 매입하는 제도다. 이에 비해 공공비축제도는 정부 자율로 식량안보 차원에서 시장 가격으로 적정량만 사서 비축한다. 쌀 수급을 시장 기능에 맡기면서도 적정한 쌀 재고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시장 가격에 영향을 많이 주는 추곡수매제는 WTO가 금지하고 있는 반면, 공공비축제는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2005년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하고 공공비축 제도를 도입했다.

1379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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