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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도는 쌀 어떻게] 사료·수출·가공·원조·복지 뭐 하나 쉽지 않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가공업체 규모 작아 쌀 소비 한계... 수출 경쟁력 떨어지고 해외 원조는 부담

▎지난해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킨텍스에서 주최한 2016 쌀가공식품산업대전 현장에는 47개 업체가 참여했다. / 사진:중앙포토
국내 쌀 소비량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대규모 가족단위가 줄고 식생활 역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득 증가로 먹거리는 다양해졌다. 육류와 과일 섭취가 증가했고, 건강을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잡곡이 ‘쌀밥’ 대신 밥상에 오른다. 증가하는 1인·맞벌이 가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조리 시간이 긴 밥을 차려 먹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통계청이 공개한 ‘2016년 양곡소비량조사(가구·사업체 부문)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구에서 국민의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69.6g이다. 1963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풍년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량 조절과 함께 소비증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되는 대안은 쌀 가공식품 육성, 수출 활성화, 대북지원 등 해외원조, 국내 복지 용도로 활용, 사료용 이용 등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빠르게 급감하는 쌀 소비량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외원조


남아도는 쌀을 흡수할 곳으로 먼저 꼽히는 건 쌀 가공품 시장이다. 쌀 소비 감소의 주요 원인인 1인·맞벌이 가구의 증가는 쌀 가공식품 시장엔 기회일 수 있다. 즉석밥·가정간편식(HMR) 시장이 성장하면서 가공용 쌀 소비가 늘기 때문이다. 소형·효율·안전을 중심으로 한 식품소비 트렌드나 온·오프라인 유통망 확충, 다양한 품목으로의 개발가능성 등도 쌀 가공산업 성장 가능성을 높인다.

정부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쌀 가공산업 육성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를 통해 2014년 4조1000억 원대의 쌀 가공식품산업 시장규모가 2020년까지 7조원대로 확대되고 가공용 쌀 소비량은 같은 기간 42만t에서 70만t으로 늘 것으로 봤다. 그러나 아직은 한계도 분명하다. 쌀 가공업체가 2014년 기준 1만7380개로 증가했지만 대부분은 영세 자영업자다. 연간 쌀 소비능력 1000t 이상인 업체는 210개(1.2%), 실제 사용량 기준으로는 59개(0.3%)에 불과하다. 신제품 개발이나 설비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가공업체들의 생산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더 이상 쌀을 소비할 여력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높은 원료 가격은 쌀 가공제품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쌀가루 제분비용이 밀가루보다 2배 이상 높다. 유통기한도 비교적 짧다. 또 가공식품의 상당 부분은 정부의 재고미를 싸게 공급받아 유지된다. 정부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정부의 가공용 쌀 공급량은 재고 처분시기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정책에 따라 성장과 후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쌀 과잉생산을 해소하는 또 다른 방안은 쌀을 수출하는 것이다. 한국도 미미하기는 하지만 쌀 수출국이다. 2007년부터 약 50여 개 나라에 쌀을 수출하고 있다. 대부분 해외 교포를 대상으로 하는 소량 수출이다. 쌀 수출량은 2009년 4000t을 초과하기도 했지만, 이후 약 2000t 규모로 줄었다. 쌀 수출이 부진한 이유는 한국 쌀과 같은 중단립종을 대규모로 소비할만한 곳이 일본, 중국의 동북지역 등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비싸 경쟁력까지 떨어진다. 한국 쌀과 같은 중단립종 경쟁자는 중국 동북 3성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주 등이다. 미국과 호주 쌀 수출가격은 1t에 800~900달러 수준이지만 한국 쌀 수출가격은 2200~2300달러다. 부실한 유통망과 부족한 마케팅도 이유다. 그나마 기대할만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2010년 이후 쌀 순수입국으로 돌아섰다. 한 해 기준 330만t 규모의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다. 중국 소비자의 한국산 농산물에 대한 신뢰나 짧은 운송기간은 한국에 유리한 요소다. 그간 막혀 있던 수출길도 열려 지난해 1월 29일부터 한국산 쌀이 중국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아무리 중국이 쌀 수입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일단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이 수입하는 쌀은 대부분 장립종이고 중단립종은 60만~70만t 규모다. 이마저도 대부분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들여오는 싼 가공용 쌀이다. 고급화 전략을 내세울 수도 있지만 소비량이 적어 기대만큼 실리가 크지 않다. 고가정책을 펴는 일본 쌀도 중국에서 연간 200t가량 팔리는 데 그치고 있다.

국내 복지용 쌀을 확대하거나 대북지원, 해외원조로 국내 쌀 재고를 해소하는 방안도 있다. 대표적인 복지용 쌀이 ‘나라미’다. 기초생활자금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기초생활 보장 시설, 무료 급식단체 등에 일반 쌀보다 50~90% 싸게 공급하는 쌀이다. 최근 정부는 쌀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나라미 확대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서는 무상급식 확대를 통해 정부의 쌀 재고량을 줄이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재고 감소를 장담할 수 없다. 나라미 판매량은 지난 2013년 9만7000t에서 지난해 7만9000t으로 줄었다. 홍보 부족도 원인이지만 복지 대상자 역시 식생활 자체가 바뀌어 쌀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또 세금이 쓰이는 일인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데다, 대량의 쌀이 이렇게 시장에 개방될 경우 시장교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대북지원이나 해외원조도 여의치 않다. 한국은 2002~05년 40만t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면서 당시에도 심각했던 재고 문제를 해소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제재를 결의하면서 사실상 대북지원은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원조는 대북 지원처럼 정치적인 문제는 없지만 비용이 꽤 많이 들고 다른 나라 눈치도 봐야 한다. 원조는 무료 지원인 만큼 돈을 벌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지출해야 할 돈이 상당하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 10만t을 국제기구를 통해 해외원조를 할 경우 쌀값과는 별도로 무상공급과 국내 작업비 132억원, 국외운송비 43억원, 국제기구 간접비 56억원 등 총 2432억원의 신규 정부 지출이 발생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또 무역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수혜국에 식량을 수출하고 있는 제3국에 통지하고 양자 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일본은 사료용 쌀 집중 지원


현재 가장 현실적인 쌀 소비 대안으로 꼽히는 건 쌀을 동물 사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쌀은 생산 과잉이지만 사료용 쌀은 수요가 남아 있어서다. 국내 여론도 많이 변했다. 과거 쌀 사료화는 ‘쌀을 가축에게 먹일 수 없다’는 국민 정서와 ‘빈곤층과 북한동포를 외면하느냐’는 반대에 시달렸다. 그러나 쌀 공급과잉 심화와 인식 변화로 이런 반감은 많이 비교적 줄었다. 그러나 현재 사료용 공급 역시 정부 재고미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가공용 쌀과 마찬가지로 공급 변동성이 크다는 게 단점이다. 이를 보완하려면 농가에서 생산 단계에서부터 저렴한 사료·가공용 쌀을 재배해 정부 외의 공급처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굳이 품종을 전환할 이유가 없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은 사람이 먹는 고급 쌀은 시장에 맡기고 사료용 쌀 재배에만 보조금을 지원해 생산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며 “국내 도입이 필요하지만, 생산조정제 등 관련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여의치가 않다”고 지적했다.

1379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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