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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와 도시바, 엇갈린 운명] 도시바, 낯선 사업에 성급하게 투자... GE, 게임 체인저로 시장 판도 바꿔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도시바, 日 제조업 역사상 최악의 손실 … GE, 제조+서비스로 탄탄한 수익구조

▎전자·전기 분야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던 도시바가 원전투자 실패와 분식회계로 1875년 창립 이후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 사진:중앙포토
‘에디슨에게 메이크 머니(make money)는 품위 있고 장려(壯麗)한 말이었다.’ 역사적인 인물과 저명 인사의 증언을 담은 일본 책 [인터뷰즈]는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토마스 에디슨이 기업의 수익 창출에 대해 품격과 화려함, 웅장함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였다고 기술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을 설립한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백열전구를 발판으로 GE를 세계에서 11번째(시가총액 기준)로 큰 회사로 키워냈다. 도시바의 창업자 중 한 명인 후지오카 이치스케는 그런 에디슨을 미국에서 직접 만나 백열전구 제작법을 배웠다. 후지오카는 천재 과학자인 다나카 히사시게와 함께 1875년 도시바의 전신인 다나카제작소를 차렸다. 창업은 GE보다도 3년 빨랐다.

백열전구와 증기기관이 미국과 일본 전역에 깔린 지 어느덧 10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두 회사 모두 더 이상 백열전구를 만들지 않으며 똑같이 가전사업을 매각했다. 차이가 있다면 GE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혁신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데 비해, 도시바는 회계부정과 원자력 사업의 손실로 창업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빠졌다.

비즈니스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라톤이다. GE는 150년 동안 끝까지 선두그룹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도시바는 스텝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메이크 머니’의 목표를 이루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두 회사의 명암이 엇갈렸다. 도시바는 3월 28일 미국 법원에 웨스팅하우스(WH)의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했다. WH는 지난해 원전 건설 지연 등으로 7000억 엔(약 7조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이 영향으로 WH의 모기업인 도시바는 심각한 재정난에 몰렸다. 도시바는 2016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에 1조 엔의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악의 손실이다.

두 차례의 실적발표 연기로 도시바는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 직전 단계인 ‘감리종목’으로 지정되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알토란 같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도 매각을 앞두고 있다. 1차 입찰에는 SK하이닉스 등 1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예상 매각가는 1조5000억~2조 엔 규모. 도시바가 기대했던 2조5000억 엔에는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실적 악화의 원흉인 웨스팅하우스도 매각한다. 도시바는 매각 대금을 부채 상환에 사용할 예정이지만, 손실 규모가 워낙 커 이를 완전히 메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도시바는 부채 상환 연장 등 채권단에 추가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살얼음판 위를 한 걸음씩 딛고 있는 셈이다.

한 때 글로벌 전자산업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칭송받던 도시바가 일순간에 추락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도시바가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었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전자산업이 한창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중반, 한 번의 판단 미스가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은 인건비가 낮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며,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없는 호황을 누렸다. 중국의 부상은 기존에 전자제품을 조립·생산하던 기업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당시 이런 현상을 두고 ‘스마일 커브’라는 제조업 부가가치 분포론이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스마일커브란 개발·제조·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제품의 생산 흐름 중 제조 부문은 저임금 국가들의 시장 참여 등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이 급락하는 현상을 뜻한다.

제조 부문 수익성이 뚝 떨어져 그래프 상으로는 웃을 때 입 모양 같은 U자형을 그린다는 것이다. 곡선의 X축 왼쪽 끝에 인텔·ARM 같은 회사가 있다면 오른쪽 끝은 애플과 같은 회사가 차지했다. 중간 제조사 입장이던 도시바로서는 한국·중국·대만 등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려면 신사업 추진이 불가피했다.

도시바는 원전 등 발전기기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원전의 산업 사이클은 20~40년으로 길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당시만 해도 한국·중국·대만 등의 기술력이 위협적이지 않았다. 마침 독보적인 원전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매물로 나왔고, 도시바는 6200억 엔의 압도적인 금액을 내고 낙찰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도시바의 웨스팅하우스 인수로 위기감을 느낀 기업 간에 합종연횡이 벌어졌다. 히타치와 미쓰비시중공업·아레바 등이 연합군을 구성해 수주 경쟁을 벌였고, 정부의 건설융자를 등에 업은 한국·중국·러시아 기업들도 턴키 방식으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치열해졌다. 여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직격탄을 날렸다. 세계적으로 원전 발주가 줄어들면서 주문이 멈췄다. 정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투자한 것이 도시바를 위기로 몰아넣은 셈이다.

GE, 부실 사업 과감히 털고 새 수익모델 창출


GE는 도시바보다는 겨울을 조금 일찍 겪었다. 소니·파나소닉·산요 등 일본 전자회사들이 승승장구하던 1980~90년대 경쟁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전자제품만 팔아 돈을 벌기 어렵다고 판단한 GE는 금융과 방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시바와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분야에 진출한 결과는 처참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며 대규모 부실이 자본잠식으로 이어지며 신용등급은 강등됐고, 정부 보증이 없으면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한 때 그룹 전체 매출의 30%를 책임진 금융업이 회사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GE의 대처방법은 도시바와 달랐다. 도시바는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며 원전사업을 이어간 데 비해 GE는 부실이 발생한 금융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GE는 또 ‘역스마일커브’에 무게를 둔 경영을 펼쳤다. 수익이 나지 않는 기존의 생활가전 사업을 과감하게 매각했다. 이어 스마트홈 서비스와 그와 관련된 디바이스 개발, 제품 리뉴얼, 빅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수익창출 기반 마련 등의 노력을 펼쳤다. 새로운 제조업 기반을 육성해 업계의 ‘게임 체인저’ 자리를 노렸다.

실제로 GE는 제조 부문의 경쟁력 극대화와 이를 통한 애프터서비스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예컨대 자사가 개발한 항공기 엔진에 센서를 장착해 소리와 진동 등 운항 데이터를 수집했다. 도쿄-뉴욕 편도 비행에 약 2테라바이트의 데이터가 쌓이는데, 이를 분석해 항공사에 운항 지연이나 사고발생을 낮출 수 있는 비행 방법을 가르친다. 일종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활용한 서비스를 통해 제조업 판매를 지지하는 한편 매출 규모를 키우고 있다. GM은 현재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제품의 품질과 개별 부품의 수명을 분석하고 있으며, 이를 품질보증과 유지·보수 계약 때 자신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압도적인 정보의 우위로 유리한 고지에서 경영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도시바와 GE의 가장 큰 차이는 품위와 화려함, 웅장함의 유무 여부다. 도시바는 돈을 벌었고 GE는 가치를 추구한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칼럼에서 “활자와 통신, 전화, 인터넷 등 인류의 역사는 정보 비대칭성의 강화와 해소의 반복이었다”며 “인터넷은 사람 간에 정보 격차를 줄였지만 AI 시대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거대한 비대칭성을 일으킨다. GE는 이 가치를 이용한 데 비해 도시바는 뒤처지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1379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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