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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 좁아진 현대차 노조] 노조 체질 전환 없이는 일자리도 없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편집장
해외생산 증가, 보호무역 압박에 입지 흔들... 노사 머리 맞대 시간당 생산성 올리고 고비용 구조 깨야

▎지난해 12년 만에 전면파업을 한 현대차 노조원들이 울산 공장에서 조기 퇴근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공장은 울산·광주·광명·아산에 있다. 이곳에서 지난해 완성차를 322만 대 생산했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약 10만 명이 일을 한다. 부품공급업체는 1차부터 마지막까지 5000여 개에 달한다. 관련 근로자만 20만 명이다. 최근 이들에겐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다. 해외 공장이다. 울산 공장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미국 앨라배마, 체코 오스트라바 공장으로 가는 일감을 뺏기지 않아야 한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지 생산, 현지 판매’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181만 대의 자동차가 팔렸다. 이 가운데 수입차가 약 20만 대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연간 생산하는 완성차가 441만 대 규모인데 국내용 160만 대를 제외한 물량은 모두 해외로 수출한다. 주요 시장은 미국과 브라질, 유럽, 러시아, 인도다. 한국차가 해외에서 선전할수록 한국 사람들이 일을 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세금도 내며 생계를 이어간다. 국가 입장에서는 주요 세입원이자 국민의 일자리가 보전되는 형국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내 완성차 생산을 더욱 늘리고 싶어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울산 현대차 노동자의 경쟁자는 해외 공장 근로자


그런데 최근 해외 공장이 잇따라 지어지면서 생산 비중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은 465만 대였다. 2015년의 442만 대보다 20만 대 증가했다. 반면, 완성차의 국내 생산은 2015년보다 32만 대 줄어든 202만 대에 머물렀다. 물론 내수 물량이 있으니 국내 생산은 여전히 320만 대에 달한다. 전체 800만 대의 생산 가운데 30% 이상은 여전히 국내에서 만들어 해외 시장에 내다 파는 셈이다. 일본 자동차 조사업체 포인(FOURIN)에 따르면 2015년 현대·기아차의 자국 생산비율은 44.8%로 글로벌 톱5 업체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러나 문제는 해외 생산 증가율이 가파르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 2010년 해외 생산이 처음으로 국내를 앞질렀다. 2009년 체코 공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서 연간 140만 대를 해외에서 생산했고, 이듬해는 188만 대로 늘렸다. 물론 국내 생산도 2009년 161만 대에서 172만 대로 증가하며 양적 성장이 진행됐지만 내수 시장에 영향을 받는 국내 생산과 달리 해외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마다 공장을 지어 대응했다.

해외 생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중국의 경우 완성차 관세율이 높아 ‘국내 생산-해외 수출’로는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유럽은 국내 소비자와 취향이 달라 전략 차종이 필요했다. 그나마 미국이 국내 생산차의 주력 시장이었지만 자동차 분야에선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현지 대응 카드가 필요했다. 국내 생산의 증가가 정체를 보이는 다른 이유는 자동화다. 과거 생산 과정에선 숙련된 노동력이 중요했다. 지금은 이를 로봇 공정이 대체하는 중이다.

노사 관계도 해외 공장이 늘어난 이유다. 국내 자동차 회사는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임금 인상으로 위기를 모면해 왔다. 임금 인상 방식도 문제가 있다. 노사 양측 모두 부담이 큰 기본급은 최저로 하되, 수당 신설로 인상을 보전했다. 하지만 수당을 통한 임금 보전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정규 근로 시간보다 시간당 수당이 많은 특근을 선호하는 현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노-노’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지난 2010년 현대차 전주 공장 노사는 하루 생산 목표를 일찍 채울 경우 임금 축소 없이 조기 퇴근에 합의했다. 하지만 일부 노조원이 추가 특근 수당을 요구하자 없던 일이 됐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노조가 원한 사항임에도 결국 노조 스스로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당이라는 현실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시 스스로 상자에 갇히는 일이 반복되는 구조다. 노조로선 당장 이익을 얻었을지 몰라도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파업의 반복은 오히려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그만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인 양다리 공약도 문제

정치인도 나섰다. 정치인들은 국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업 달래기에 집중했다. 혜택도 주고, 규제도 풀어주겠다는 당근을 내놨다. 노조의 표를 위해서는 국내 생산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남발했다. 국내 생산은 이미 고비용 구조로 고착화돼 경쟁력이 더욱 떨어졌다. 이렇게 해외 생산이 늘었고, 국내 일자리가 줄었다.

일자리 투쟁에 나선 다른 나라의 노조 움직임도 지켜봐야 한다. 최근 미국 자동차노조(UAW)는 ‘미국인은 미국에서 만든 차만 사자’는 ‘바이 아메리칸’ 광고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실제로 UAW는 GM의 해외 공장 물량을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자 한국지엠 노조는 UAW의 행보에 대해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반박했다. 한국지엠 노조 관계자는 “노동 운동은 기본적으로 전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며 “UAW의 자국 우선주의적 발언은 노동운동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UAW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같은 회사 다른 공장의 물량도 빼앗아 와야 하고, 그 이유는 미국의 거대한 시장이라고 했다.

같은 논리를 현대차 노조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UAW에는 있고, 현대차 노조에는 없는 중요한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시장 규모다. 연간 2000만 대의 미국과 180만 대의 시장 차이는 물리적으로 극복이 불가능하다. 설령 생산물량을 더 이상 내주지 않는다 해도 미국이 30%의 국경세를 부과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한다. 이 경우 현대차 노조의 생존은 오로지 비용 낮추기밖에 없다. 그렇지 못하면 노조도 회사도 결코 지속 성장이 불가능하다.

보호 무역은 현대차 노조에 강력한 체질 전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임금이 오른 만큼 시간당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생산을 기업이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시장을 보유한 국가가 생산을 결정하는 보호무역 시대가 임박했다. 답은 현대차 노사가 함께 찾아야 한다.

1380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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