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R&D 분야로 번지는 브렉시트 파장] R&D 허브 자처하던 英 연구 인력 이탈 우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연구 인력 중국으로 대거 이동할 수도... EU와 협력 강화하고 인재 적극 유인해야

영국은 3월 29일 유럽연합(EU)에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 지난해 6월 영국 국민 절반 이상이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면서 시작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현실로 다가왔다. 브렉시트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전 세계 지식 산업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과 함께 지식 산업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R&D) 분야에도 거친 바람이 불 것이다. 영국은 브렉시트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R&D 관련 정부 투자를 증가(0.6%포인트)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후폭풍은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영국은 글로벌 공용어 ‘영어’라는 무기를 앞세워 EU의 R&D 허브 역할을 맡으며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연구 역량과 인프라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젠 풍전등화 신세다.

R&D 대안으로 떠오르는 독일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의 조너선 포르테스 연구원은 “브렉시트 이후 2020년까지 R&D 등을 담당할 인적 자본이 최소 9만1000명에서 최대 15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에도 0.6~1.8%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정부는 R&D 자금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브렉시트 과정에서 실제 늘릴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영국이 EU와 경쟁을 의식해 R&D 투자를 더 늘릴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전망 수준에 불과하다. R&D 투자가 자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 판단에 따라 그 지원 규모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EU의 R&D 분야 재정지원 프로그램인 ‘호라이즌(Horizon) 2020’에 영국이 준회원국(터키·스위스 등)과 같은 지위를 유지할지 관건이다.

브렉시트 이후 EU의 영국에 대한 R&D 관련 투자는 줄거나 심할 경우 중단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영국의 대학과 연구소는 연구비 확보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된다. 만약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의 R&D 투자 감소가 확인되고, 이후에도 이어진다면 매칭 펀드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국가 간 R&D 협업 투자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과 독일의 R&D 협업이 주춤할 경우 가장 큰 파장이 예상된다.

영국에서 이탈하는 R&D 인력의 변화도 살펴봐야 한다. R&D 인력의 유입이 줄어든다면 영국의 R&D 위상은 약해지게 된다. 이럴 경우 영국의 연구 인력은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 협력이 이뤄지고, 향후 늘어날 독일이나 프랑스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강대국인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탈핵(탈원전-원전해체), 패시브 하우스(지열을 포함해 최소한의 난방으로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주택), 의료 분야에서 R&D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로 영국뿐만 아니라 EU 연구 인력 역시 대거 다른 곳으로 떠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브렉시트 이후 R&D 블랙홀처럼 연구 인력을 빨아들일 공산이 커진다. 중국이 R&D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면 한국의 R&D 경쟁력은 중국에 뒤처질 우려가 있다.

영국과 EU 현지 언론이 보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핵개발이나 바이오기술(BT) 분야에서 연구했던 R&D 인력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떠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 단체에 투항하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지 않더라고 R&D 분야에서 ‘사회적 덤핑(social dumping)’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브렉시트로 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 연구 인력과 산업의 ‘사회적 덤핑’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의 유럽 단일시장도 그 여건에 따라 사회적 덤핑을 통한 시장재편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런 우려가 커짐에 따라 한국 정부도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책연구관리시스템(프리즘)에 등록된 ‘브렉시트에 따른 과학기술분야 영향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에 제출한 보고서로 대응 방안이 잘 정리돼 있다.

우선 브렉시트라는 현실을 반영한 R&D 협력을 준비해야 한다. 브렉시트 이후까지 내다보고,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영국이 오히려 EU 외 국가와 전략적 R&D 협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참여 지분을 높일 수 있는 기초과학연구 분야에서 협력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U R&D 네트워크 참여 시급

인적 자원의 유동성 증가로 해외의 유능한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영국에서 거주중인 EU 회원국 소속의 인적 자원은 더 이상 유럽 시민권 차원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영국의 R&D 인력이 움직일 가능성이 큰 독일과 연구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등 에너지 분야가 유망하다. 패시브 하우스는 첨단 단열공법을 이용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로 유럽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2009년부터 패시브 하우스 형태의 건물을 설계해야만 건축 허가를 내주는 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가 그 거점이다.

중국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전략적 분야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중국은 해외 우수 인력을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이 R&D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면 한국의 R&D 는 중국과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이에 따라 BT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할 수 있는 기초·응용 과학 분야에서 인력 교류에 중점을 둬야 한다. 특히 유전자변형식품 없음(GMO Free) 정책, 동물 복지, 농식품원산지·식품영양 표시 등 분야는 한국이 여전히 중국보다 앞설 수 있는 R&D 영역이다.

영국의 산업 변화에서 R&D 기회를 찾아야 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동차 부문이다. 여러 기업이 영국에 진출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엔진을 비롯한 관련 부품을 생산하고 신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EU 탈퇴로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다. 덕분에 한국의 자동차 제품과 기술이 EU 시장에서 영국 제조사와 동등한 대접을 받게 됐다. 김덕형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원은 “브렉시트로 인한 정치·경제의 불확실성 증대는 한국 기업의 R&D 투자 축소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기술 경쟁력이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R&D 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EU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프로그램(COST) 같은 연구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1380호 (2017.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