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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로가 만난 사람 (3) |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 “기수문화·순혈주의가 은행발전에 독(毒)” 

 

대담=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정리=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14년간 CEO 지낸 국내 최장수 은행장... “인터넷 은행 등장으로 금융권 큰 변화 올 것”

19살 청년은 전 세계를 무대로 뛰는 사업가가 되고 싶어 서울대 무역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 노스웨스턴대로 유학길에 올랐다.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금융시장에 눈을 떴다. 한국으로 돌아와 씨티은행 서울본사에 입행해 33년 은행원의 길을 걸었다.

하영구(64) 전국은행연합회장 얘기다. 그는 입행 후 뱅커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조직에서 인정받았다. 2001년 한미은행장을 거쳐, 2004년에는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한미은행이 통합한 한국씨티은행의 첫 행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14년간 CEO로 지내며 국내 최장수 은행장이라는 기록을 썼다.

외국계 은행은 국내 은행들과 경쟁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역꾸역 일했다”고 자평했다. 하 회장을 만나본 사람들은 “반듯한 헤어스타일에서 풍겨나오는 모범생 스타일이지만 친화력이 좋다”는 평을 한다.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들과의 친분도 두텁다. 지난 2014년에는 33년간 은행원 생활을 끝내고 전국은행연합회장으로 취임했다. 외국계 은행장으로는 처음이다.

그가 챙겨야 하는 은행 업황은 녹록지 않다. 국내 은행의 수익구조는 여전히 예대마진 위주로 편중돼 있다. 정보기술(IT)과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의 발전, 인터넷 전문은행의 등장 등 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은 중학교(중앙중) 2년 선배인 하 회장에게 금융권의 갈 길과 해법에 대해 물었다. 대담은 지난 4월 5일 서울 명동에 있는 은행연합회 하 회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애초 대담 날짜는 전날이었다. 그러나 질문지를 늦게 받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하 회장의 요청으로 하루 늦게 진행됐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하 윤용로): 30여 년간 은행권에 계셨는데 인터뷰 준비가 필요하십니까? (웃음)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이하 하영구): 질문지 주고 몇 시간 만에 하면 너무 성의없어 보이니까 시간을 좀 끌었죠(웃음).

윤용로: 은행장들은 한 달에 한번 한국은행 총재와 만나 금융현안에 얘기하는 금융협의회를 열잖아요. 저도 은행장 두 번 하면서 총재가 3명 바뀌었는데 총 몇 명의 한은 총재를 만나셨나요?

하영구: 고(故) 전철환 총재부터 박승, 이성태, 김중수, 이주열 총재까지 5번 바뀌었어요. 은행장을 오래 하다 보니 너무 많은 분들을 만난 것 같네요.

윤용로: 은행에 오래 몸담으시고 CEO도 오래 하셔서 하실 말씀을 많으실 것 같아요. 궁금했던 게 씨티은행은 국내 은행들과 사업구조가 달라서 한국에서 영업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떠셨어요?

하영구: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국내 은행과 비교 당하는 거였어요. 얼마 전 씨티은행이 계좌유지 수수료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그거 가지고도 말 많았잖아요. 외국계 은행은 국내 은행과 운영시스템이 다른데도 한국에선 인정을 하지 않아요. 계좌유지 수수료로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라 전략을 바꾸겠다는 얘기에요. 근데 그걸 못하더라고요. 한국 은행장들은 취임하면 ‘자산 몇 조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내걸어요. 자산경쟁, 시장점유율에 의존하다 보니까 결국 가격 희생을 해야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이러니까 글로벌 금융사들이 한국에서 장사할 이유가 없는 거죠. 수익이 더 날 수 있는 홍콩이나 베트남 같은 곳으로 자본금 옮겨 영업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스페인 BBVA은행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잖아요. 과거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은행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특화된 은행만이 들어와요. 최근 미국 신탁은행인 노던트러스트가 들어온 것처럼요. 주주가치 향상이라는 경영 목표를 가진 글로벌 은행은 견디기가 힘든 구조입니다.

윤용로: 과거나 지금이나 은행들은 여전히 예대마진 위주의 편중된 구조로 되어 있어요. 수익구조가 변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하영구: 두 가지로 봐요. 첫 번째는 국민정서에요. 고객들은 여전히 내가 그 은행의 고객이니까 수수료 면제 같은 금융서비스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 은행들을 국내 은행과 업무시스템이 비슷해요. 그런데 일본의 수수료 수익은 30%, 한국은 10%에요. 미국이나 유럽 금융기관들의 수수료 수익은 40%에 달해요. 여기에 은행들도 상품개발이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해야하는데 규제 환경도 문제에요. 규제가 너무 많으니까 환경이 바뀔 수가 없겠죠.

하 회장은 대담을 하면서 수수료를 부과해야 하는 필요성을 몇 차례나 강조했다. 수수료를 내지 않는 것은 은행에 많은 돈을 예금한 고객 입장에선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예금액이 적은 고객의 수수료 비용까지 보전하고 있다는 게 하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런 문제를 없애려면 은행 고유의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전업주의가 아닌 은행, 증권 등 모든 업무가 가능한 겸업주의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제공할 수 있고 낮은 비용으로 고객의 편의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용로: 지난해 미국 금융주가 많이 오르면서 국내 은행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죠. 앞으로는 어떻게 보세요?

하영구: 최근 은행 실적이 좋아지면서 주가도 오름세에요.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게 일드커브(장단기 국채 금리차이)가 기준점이 되요. 금리차이에 따라 주가가 영향을 받거든요. 미국은 제로금리에서 0.75%까지 올랐어요. 여기에 법인세를 인하하고 금융기관의 위험자산 투자를 제한하는 볼커룰 완화에, 미국 경제도 호전되면서 금융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죠. 국내 은행주들의 주가는 1년 전보다 평균 35%가 올랐어요. 가끔 외국계 친한 애널리스트와 얘기를 나누면 한국의 은행들은 건전성도 좋고 자본충실도도 좋다고 말해요. 근데 수익성이 낮다고 지적하죠. 그래도 국내 은행주식을 사야겠다고 말해요. 물어보면 더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거에요. 국내 은행들의 배당정책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그러나 앞으로 주가가 작년만큼 오르지는 못할 것 같아요. 지난해 은행 수익이 좋아진 게 아니라 충당금이 줄어든 영향이 컸고,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이나 가계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거든요. 더 중요한 것은 회사 순자산은 낮은데 기업가치가 높아요.

윤용로: 정부 얘기를 들어보면 금융회사에서 사고가 터지면 화살이 규제를 풀어준 정부한테 돌아와서 참 곤혹스럽다고 말해요. 일 생기면 고객들이 금융위원회로 쫓아오니까요.

하영구: 보신주의로 몰고가는 거에요. 2014년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이나 금융위원장도 피해자라는 보도가 나오니까 당국도 틀어막아야 하는 거에요. 사실 그들도 피해자거든요. 그런데 사고가 나면 담당자만 문책을 당하게 되니까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생기는 거죠. 미국도 지난 2013년에 유통업체 타겟의 신용·직불카드 개인 정보 4000만 건이 유출됐어요. 근데 정부는 기업들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만 했어요. 그게 미국과 한국의 차이에요. 4차 산업혁명 근간을 이루는 첨단기술 시대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나아갈 수가 없어요.

윤용로: 한국 은행들의 해외진출이 예전보다는 활발해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하영구: 해외진출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국내 자산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지는 반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의 수익성은 좋아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글로벌 은행이 해외네트워크를 확장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거꾸로 가고 있거든요. 예컨대 과거에 씨티은행이 진출한 100여 개국 중 리테일 비즈니스(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소매금융)를 하는 나라는 50곳이 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25개국으로 줄었고, 앞으로 더 줄일 거에요. 글로벌 은행이 사이즈를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기회가 되죠. 단 상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해요. 씨티은행은 1902년에 이머징마켓 5개국 진출했는데 아직까지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미미해요. 해외시장 진출이 더 활발해지려면 인재가 필요해요. 해외에 나가서 3년 있다가 국내 들어오는 게 아니라 5년 이상은 있어야 해요. 또 인수·합병(M&A)도 필요해요. 안타까운 것은 국내 은행들이 해외은행의 M&A 성공사례를 만들지 못한 거죠.

윤용로: 2000년 초 신한금융지주와 규모가 비슷한 싱가포르 개발은행(DBS)이나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들의 성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뭘까요?

하영구: 10년 전 DBS 규모가 1이었다면 지금은 2.5로 커졌어요. 신한금융은 1에서 2.3이 됐어요. 외형으로만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어요. 그런데 국내 은행들이 규모 경쟁을 할 때 외국계 은행들은 해외 시장을 늘렸어요. 해외로 가기 위해 해외시장을 잘 아는 CEO와 임원을 뽑았고요. 피유시 굽타 DBS 행장이랑 친한데 씨티은행 출신이에요. 국내 은행들도 해외진출을 지향하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일해 본 사외이사가 없어요. 그나마 발전적인 게 최근 KB금융이 스튜어트 솔로몬 전 메트라이프 생명보험 회장을 신임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이죠. 이런 영입이 많아져야 돼요. 또 미국 금융지주사는 영역은 나뉘어있지만 하나로 봐요. 그런데 우리는 지주사, 은행, 보험 등 모든 업무가 다 따로 움직이고 있어요. 연합사 수준인 거죠.

윤용로: 국내 은행은 낙하산이나 순혈주의가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신입사원을 뽑으면 퇴직 때까지 일하고, 외부인재 영입도 어렵고요. 외국계 은행들은 채용은 어떻게 하나요?

하영구: 외국계 은행은 공채가 없어요. 그니까 기수 문화도 없고 당연히 순혈주의도 없죠. 국내 은행처럼 상공계, 법학 전공 뽑아서 훈련하는 건 군대식이에요. 전문적으로 일할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초임을 똑같이 주는 것도 잘못된 거에요. 능력에 맞게 줘야죠. 초임이 같으니 시간 지나서 차이가 나면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죠. 한국은 공채에 따른 기수 문화, 순혈주의, 연공서열이 사라져야 은행업이 발전할 수 있어요. 이런 인재 채용에서 탈피하려면 이사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봐요. 이사회가 은행 발전을 위해 견제하고 서포트해야 하니까요.

윤용로: 얼마 전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했죠. 이들도 은행연합회 회원인가요?

하영구: 그럼요. 가입비 냈어요(웃음).

지난 4월 3일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 등 21개사가 참여한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출범했다. 출범 후 나흘 만에 신규계좌 가입건 수 10만 건을 돌파하며 고객들의 관심이 높다.


윤용로: 업계에선 큰 관심을 보이는데 앞으로 어떻게 보세요?

하영구: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이 왜 이슈가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당연히 생길 수 있는 건데 그만큼 환경이 조성 안 됐으니 아쉽죠. 케이뱅크가 출범하면서 기존 금융권에 숙제가 생겼어요. 몸집을 줄여 비용 효율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가 온 거죠. 지점이 많은 은행들의 고민은 깊어졌고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거에요. 인터넷 전문 은행만의 특화된 비즈니스가 많아질 거에요. 은행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에요.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인터넷 전문은행이 자칫 핀테크 기업에 밀릴 수도 있다는 거에요. 은행업무는 예금, 대출, 자금중개 기능인데 여기서 중개 기능 역할을 잘해야 자본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 P2P(Peer to Peer·개인 간 거래) 핀테크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은행들을 위협하고 있어요. 자본효율성이 낮아진다면 은행에는 아주 치명적이에요.

최근 하 회장은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과 업계 영업환경을 놓고 의견 충돌이 있었다. 황영기 회장은 지난 2월 6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증권사에 기업 지급결제와 외화환전이 허용되지 않는 것을 대표적인 불합리한 대접으로 꼽으면서 불을 지폈다. 국내 은행권의 비효율성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하 회장은 증권사의 기업 지급결제를 허용해달라는 주장에 대해 “농구를 해야 하는 팀이 농구장에서 축구도 하겠다, 우리는 손을 잘 쓰니까 축구를 하면서 손발을 다 쓰겠다고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윤용로: 지급결제 허용과 관련해 논란이 있던데 무엇이 잘못된 건가요?

하영구: 또 싸움 붙이시려고요?(웃음) 다 끝난 얘기가 왜 다시 거론되는지 잘 이해가 안 가요. 잘 들어보세요. 지난 2007년 7월에 금융투자회사에 개인고객의 지급결제를 허용했어요. 그 후 2009년 2월 법 효력이 시작됐죠. 그해 7월 지급결제망을 사용하기 위해 비용을 냈어요. 근데 그때 낸 돈이 법인 지급결제 비용까지 포함됐다는 거에요.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를 이미 국회에서 불허했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법인 지급결제 기능을 증권사에 준 적이 없어요. 그 당시 개인 지급결제로 왜 한정했느냐면 금산분리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대기업들이 증권사들을 가지고 있으니 재벌의 사금고화가 우려 된다고 해서 법인 지급결제를 막은 거에요.

하 회장은 이와 관련해 “더 이상 할말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황 회장과 만나 얘기를 나눠볼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되면 재밌는 소설밖에 되지 않는다”며 답을 회피했다.


▎윤용로(사진 왼쪽) 전 외환은행장이 하영구 회장과 지난 4월 5일 서울 은행연합회 하 회장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 1977년 행정고시 21회에 합격해 관직을 시작했다. 그 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은행제도과장과 금융감독위원회(현금융위원회) 공보관·감독정책2국장·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까지 지낸 후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장(2007~10년)을 거쳐 시중은행인 외환은행장(2012~14년)을 지냈다.

1380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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