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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6) 노후자금 인출작전] 안정성만 고집하다간 무전장수(無錢長壽) 신세 

 

서명수 경제 칼럼니스트 seo.myongsoo@joongang.co.kr
긴 인출시기, 저축서 투자로 기어 바꿔야... 노후자금이 나보다 오래 살게 해야

▎사진:중앙포토
은퇴 전에는 대개 노후에 쓸 돈을 모으는 데 힘을 쏟는다. 은퇴 후는 이렇게 모은 돈을 쓰면서 살아간다. 전 생애를 놓고 볼 때 은퇴 전을 적립의 시기라고 한다면 은퇴 후는 인출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노후생활의 질은 적립 못지 않게 인출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마치 등산을 할 때 오르는 것만큼 내려오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단기 노후 준비의 가장 큰 딜레마는 적립 시기는 짧고 인출 시기는 길다는 데 있다. 30년 동안 쓸 돈을 5년 만에 모아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현역 시절 내내 돈을 모으는 데만 익숙해, 이를 일찍 소진하지 않고 오래 쓰는 데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퇴직이 임박해서야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장구한 세월을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고개를 떨군다. 만약 자산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나머지 생은 빈털터리로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단기 노후 준비에서 적립보다는 인출이 중요한 이유다. 노후자금이 적어도 나보다 오래 살게 하는 인출 작전은 단기 노후 준비의 성패를 가늠하는 변수다.

인출 작전은 평균 수명 연장에다 고령화 추세로 자산운용이 녹록지 않은 요즘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역 때라면 돈을 버는 시기라 적립을 잘못해도 만회할 기회가 그런대로 주어진다. 하지만 은퇴 시기엔 수입은 쥐꼬리만하고 돈 소비 기간은 길어지니 노후자금이 빨리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졌다. 과도하게 빼다 쓰거나 너무 보수적으로 운용하면 소진 시기는 더 앞당겨진다.

5년 모아 30년 써

인출 전략은 연령·인출기간·운용수익률·물가상승률·은퇴자금·생활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인출률을 얼마로 할 것인지가 관건이 된다. 이들 변수를 고려하면 은퇴자금이 언제쯤 고갈될 것인지 답을 구할 수 있다. 올해 61세인 A씨가 퇴직금 2억원을 연 2.5%의 수익률로 운용한다고 할 때 고갈 시점을 예측해 보자. 변수를 따져보는데, 먼저 노후생활비다. 보통 노후생활비는 은퇴 전 생활비의 70%가 소요된다. A씨는 은퇴 전 생활비로 300만원을 썼으므로 노후생활비는 210만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올해부터는 국민연금이 매달 100만원씩 나온다. 노후 자금은 퇴직금 2억원이 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생활비는 국민연금으로 마련하고 부족한 110만원은 노후자금에서 빼다 쓴다고 하자. 연간으로 보면 인출률은 6% 정도다. 생활비와 국민연금 수령액은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늘어나고 생활비로 쓰고 남은 노후자금은 연 2.5%의 수익률로 재투자되는 것으로 가정한다. 이 경우 A씨의 노후자금은 11년 만에 몽땅 사라진다. 73세부터는 국민연금만 가지고 생계를 꾸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자금 고갈을 막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비를 줄이든가, 운용수익률을 높이든가, 아니면 인출률을 낮추든가 해서 인출 금액을 조절하는 것이다.

물론 노후자금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출되고 남는 노후자금은 계속 재투자할 수 있어서다. 재투자 수익률, 기간에 따라 인출에도 불구하고 자금의 생명은 얼마든지 연장 가능하다. 유입량이 유출량보다 많으면 저수지에 언제나 물이 찰랑 찰랑 넘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후에도 내 돈이 계속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얼만큼 인출해야 할지 결정하는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자산설계 전문가들은 노후자금의 적정 인출률을 연 4% 내 외로 본다. 이 비율을 웃돌면 자금의 조기 고갈 가능성이 커지고 밑돌면 그 반대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를 무턱대고 따를 수 없다. 시장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퇴직 시점에 시장이 내리막길인데도 4% 룰을 적용하면 노후자금의 조기 고갈은 시간 문제다.

위험자산 투자로 승부

단기 노후 준비에서 노후자금을 만들기 위한 적립은 그 기간이 짧아 투자보다는 저축으로 해결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인출 시기는 다르다. 30년이란 세월은 주식이나 펀드 같은 위험자산 투자로 성과를 내기에 충분하다. 설사 원금이 깨진다 해도 회복을 기다려 볼만한 시간이다.

노후자금 관리는 무조건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이 많다. 투자는 위험하다며 외면하고 은행 예금을 중심으로 하는 자금운용이 주축을 이루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안정성 위주의 자금운용도 물가 상승을 감안할 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의 A씨 예는 노후자금도 다소 공격적으로 운용해야 조기 소진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과거 은퇴 후 짧은 여생을 보냈을 때 투자는 사실 위험했다. 위험을 녹일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다. 그러나 지금은 퇴직하고도 30년 가까이 살아야 한다. 위험은 시간 앞에서 나약해 진다. 게다가 지금은 저금리 시대가 아닌가. ‘안전빵’만 좋아하다간 노후자금이 일찍 사라져 ‘무전장수’를 각오해야 한다. 모자라는 노후 생활비는 투자로 기어를 변환해 마련하는 것이 옳다. 물론 투자상품에 올인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투자 비율은 어느 정도 가져가는 게 좋을까?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박스기사] 노후자금 인출 ‘4% 룰’ - 기계적 적용은 무리 ... 자산배분 병행해야

20여년 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재무관리사로 일하던 윌리엄 벤젠은 금융시장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한 끝에 ‘4% 룰’을 내놓았다. 4% 룰은 퇴직 첫해 노후 자산의 4%를 인출액으로 삼고 이듬해부터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인출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면 노후 자산을 30년 이상 유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후 4% 룰은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고 지금까지 널리 활용되는 노후 자산 관리 법칙이 됐다.

벤젠은 4% 룰을 고안할 때 미국 주식과 국채에 절반씩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기준으로 인출률을 분석했다. 1926년부터 연도별로 인출을 시작할 때 노후 자산이 소진되기까지 기간이 분석 대상이었다. 그랬더니 최악의 경우 33년 만에 노후 자산이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대부분은 노후 자산 소진 시점이 50년을 넘겼다. 반면 주식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면 노후 자산의 소진 시점이 30년 이내로 단축됐다.

4% 룰은 20여년 간 활용되면서 중도에 여러 도전을 받았다. 예를 들어 투자시장의 호시절에는 인출률이 낮다고, 그 반대일 때에는 너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4% 룰을 고안한 벤젠도 나중에 주식과 채권 이외에 부동산이나 대체투자 등에도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활용하면 인출률을 4%보다 더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4%라는 일정률 대신 개인별로 3~5.5% 사이에서 인출률을 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럼에도 4% 룰은 여전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칭송받는다. 상당수 사람이 4%를 처음 인출률로 삼아도 그리 나쁜 결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자산 배분 방식을 보완해 사용한다면 노후 자산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380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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