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투자 몰리는 美 지방채권, 왜?] 높은 금리에 지방채가 국채보다 인기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미 운용사, 韓·日 등 아시아 겨냥 전용상품 개발... 기준금리 인상, 적은 유통량, 채권 투자자금 확대는 경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계획으로 미국의 지방채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다. 미 알래스카에 건설된 송유관.
“지난 41년 동안 단 한 번도 아시아에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새 서울·도쿄·베이징·홍콩 4개 아시아 도시를 다녀오게 됐다.”

스탠디시멜론애셋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제프리 버거의 최근 일상은 달라졌다. 보스턴에만 머물던 그가 미국의 지방채권(Municipal bond)를 사려는 아시아 투자자들을 만나려 한 달 반에 한 번 꼴로 태평양을 건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미국 지방채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외국인의 미국 지방채 투자는 지난해 4분기에만 210억 달러 증가했다. 전례 없는 증가 폭이다.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의 미 지방채 투자 규모는 1060억 달러로 2009년 이후 2배 불어났다. 미 지방채 시장 규모가 3조800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하며 비중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상승폭은 가파르다.

해외 투자자들이 미 지방채에 느끼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높은 금리다. 10년 만기 AA등급 지방채 수익률은 2%대 후반으로 미 국채보다 0.3%포인트가량 높다. 특히 미 국채금리가 추락하면서 지방채 수익률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세계적인 저금리 여파로 0.1%포인트의 이윤도 아쉬운 상황이라 투자심리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2009~10년 미국 우량 회사채에 돈이 몰리던 것과도 비슷한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채권의 상대적인 안전성과 긴 투자 기간 때문에 포트폴리오의 다양화를 모색 중인 투자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며 “미 지방채 투자 시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비과세 혜택이 없음에도 투자금은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채보다 금리 높고 주식보다 안전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는 채권 시장이 지옥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일본·홍콩 등지에서 투자가 이어지면서 미국 현지의 자산운용사들도 펀드 등 관련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티그룹의 자회사인 누빈자산운용은 지방채 수요 증가에 발맞춰 한국·일본의 은행·보험사를 겨냥한 뮤추얼펀드 형태의 지방채 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멜론은행의 자회사인 스탠디시멜론애셋매니지먼트는 한국 보험사의 지방채 자산을 별도의 계정으로 관리하고 있다. 웨스턴에셋은 일본의 신세이은행과 함께 사모펀드를 만들어 일본 금융회사들의 미 지방채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금리 정책으로 갈 길 잃은 투자금이 미 지방채로 대거 몰리고 있다. 자산운용사 반 애크 어소시에이츠가 운용하는 18억 달러 규모의 시채(市債) 상장지수펀드(ETF)에 대만계 자금이 유입돼 외국인 투자 비중은 지난해 5%에서 8%로 늘었다. 캐나다·스위스·영국 기관투자자도 500만 달러 이상을 보유 중이다.

이시하라 테츠오 미즈호증권 투자전략가는 “미 지방채의 채무불이행률은 회사채보다 훨씬 낮다”며 “미 지방채를 사려는 일본 투자자들의 문의 전화가 최근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일본계 자산운용사들은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일본 국채를 자산에서 제외하고, 미 지방채 등 수익률이 높은 자산을 채우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채권이나 리츠(REITs) 등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인 미 지방채가 당분간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과열 양상인 주식시장에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펀드운용사인 미 컬럼비아트레드니들의 제임스 디어본 비과세증권부문 대표는 “저금리와 저물가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될 수 있어 당분간 지방채 수요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모건스탠리 등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확대와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글로벌 자금을 미국 채권으로 끌어 모을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지방정부들이 기준금리 인상 전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방채 발행을 늘리고 있는 점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채권시장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는 않다. 비관론은 장기 전망에 근거한다. 요지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기업들의 실적과 미국 경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8일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부터 비관론을 내고 있는 ‘채권왕’ 빌 그로스도 “채권시장에 지옥문이 열릴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근에는 “호황은 가짜다. 현금을 손에 쥐라”고도 했다.

불안전성 대비, 만기조정 등 적극적인 운용 필요

그로스의 말마따나 장기적 관점에서 지방채를 비롯한 미국의 채권 시장에 겨울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미 연준은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올린 데 이어 3월에도 0.50~0.75%에서 0.75~1.0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미 연준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적어도 두 차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계획을 내비쳤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달러가치가 올라 외국 투자자들은 환차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유 중인 채권의 가격이 떨어져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또 지방채는 국채에 비해 발행량이 적다는 점도 신경 쓰인다. 유통되는 양이 적어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거래절벽에 맞닥뜨릴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규제완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최근 미국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트럼프가 당선된 뒤인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1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정크본드에 투자하는 펀드에 유입됐다. 심지어 ‘CCC’ 등급의 회사채도 신규 발행과 차환 발행을 통해 1년 전과 비교해 70% 많은 자금을 끌어 모았다. 돈이 몰리면서 회사채 평균 금리도 지난해 초 20%대에서 올해는 10%대로 내려왔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앞으로 5년간 1조 달러 규모의 회사채가 만기를 맞는다. 무디스는 4000억 달러의 회사채와 대출채권 만기가 몰린 2021년을 고비로 보고 있다. 회사채가 쓰러지면 지방채 등으로 여파가 번질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비관론에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채권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채권에 많은 돈이 몰려 채권가격이 상승했다는 의미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 개혁안이 6년이 걸렸듯, 트럼프의 감세정책이 이제 시동을 걸었다는 점도 지방채 투자를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이유다. 트럼프 경제정책의 성패 여부와 미국 기업들의 성과가 채권시장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며, 당분간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문사 에이비글로벌은 “지방채 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어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운용 전략이 필요하다”며 “장기채 보유량을 줄여 이자율 변화에 대한 위험 노출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382호 (2017.05.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