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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45)] 장수시대 덮치는 의료파산 쓰나미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dongho@joongang.co.kr
건강수명 이후 10여 년간 노후 의료비 폭탄 … 한국 노인 빈곤율·자살률 OECD 1위

서울에 사는 회사원 윤모(59)씨는 주말마다 지방에 있는 요양시설을 찾아간다. 거동하지 못하는 아버지(92)의 건강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평소 정정하던 아버지는 일흔을 넘겨서도 청년처럼 건강했다. 그런데 여든 줄로 접어들자 뇌졸중이 찾아오더니 아예 몸을 쓰지 못하게 됐다. 침상에만 누워 있는 와상환자가 된 지도 벌써 3년째다.

아버지 간병 비용은 고스란히 외아들인 윤씨 몫이다. 노인성 질환을 인정받아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식대와 기저귀 값을 포함하면 본인 부담금은 50만원이 넘는다. 이제 곧 퇴직하는 윤씨로선 아버지 병간호에 자신의 노후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윤씨는 “노후 대비를 못 한 아버지는 가진 돈이 없어 내가 모든 부담을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80~90대와 이들의 자녀인 베이비부머들이 ‘노후파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1955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부모들이 90세를 넘어서면서 노후자금이 바닥나고 간병까지 받게 되면서 의료파산에 직면해 있다. 장수를 예상하지 못했던 세대였으니 연금은 물론 의료비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결과다.

80세 넘기며 의료파산 단계 진입

최근 고령화가 계속 진전되면서 노후파산이라는 장수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70세 초반까지는 괜찮았지만 80세를 전후해 치매·뇌졸중에 발목이 잡혀 드러눕는 고령자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이미 2015년 90세 이상이 15만 명, 100세 이상이 3000명을 넘어서면서 의료파산의 폭탄이 본격적으로 터지고 있다.

자영업자 최모(70)씨는 자신이 이런 처지에 빠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강원도 영월에 사는 97세 노모의 치매 증세가 악화하면서다. 5년 전 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재택 간병을 시도했다. 하지만 증세가 심해지자 낮에만 요양시설에 모시고 저녁에 다시 귀가시켜오다 최근에는 아예 요양원에 입원시켰다. 최 씨를 비롯해 형제들도 사실상 현업에서 은퇴한 상태여서 노모를 병간호하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노후파산은 일본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이미 예견된 일이다. 일본은 1990년대까지 세계적 장수국가로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20%를 돌파한 초고령사회로 급진전하면서다. 노후 준비가 부족한 고령자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생활비 보전을 위해 일자리를 전전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75세 이후 후기 고령자는 건강수명을 다하면서 의료비 폭탄에 직면한다. 일본에서는 65세 이상 인구가 3300만 명을 돌파해 인구의 26.7%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건강수명을 소진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기대 수명은 남자 81세, 여자 87세에 달하지만 건강수명은 각각 71세, 74세에 그치고 있다. 오래 살기는 해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13년간 병원 신세를 진다는 뜻이다. 그 사이 노후자금은 바닥을 드러나게 된다.

노후파산은 이같이 10여 년의 여생을 의료와 요양에 쏟아붓는 사이 의료파산을 거치면서 현실화한다. 기력이 떨어지고 노인성 질환에 걸리면 전문 의료인력의 돌봄을 받는 요양시설에 들어간다. 2000년 시행된 개호(돌봄)제도를 이용해 재택 돌봄을 시간제로 받을 수 있지만 최소한의 지원에 그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식사와 기본 의료 서비스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노인홈 같은 요양시설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곳도 노후자금 없이는 문턱을 넘기 어렵다. 개인 화장실이 딸려 있고 침대가 놓여 있는 비좁은 원룸도 한 달 입주 비용이 15만 엔이다. 20년을 생존한다면 3360만 엔(약 3억3000만 원)이 필요하다. 시설이 좋은 곳은 월 30만 엔을 훌쩍 넘어간다. 더구나 입주 희망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노인홈 입주 대기자만 52만 명에 달하고 있다.

삶의 여유 없는 ‘하류노인’ 급증

일본이 이 정도라면 한국은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65세 이상 고령자 둘 중 한 명은 심각한 상대적 빈곤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밥 굶는 사람은 없지만 삶의 여유는 전혀 즐길 수 없는 ‘하류노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상가상으로 건강수명이 끝나고 몸 여기저기에 고장이 나기 시작하면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누구나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만 65세를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병원 출입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많다. 노후 생활비가 빠듯한 마당에 노후 의료비까지 준비한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노후 의료비는 막연하게 생각하는 수준의 3배 이상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6년 진료비통계지표’와 통계청의 ‘2015년 생명표’를 토대로 65세 이후 총 진료비를 추산한 결과 고령자 1인당 평균 810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남성 1인당 진료비는 7030만원, 여성은 9090만원이다. 여성은 장수하는 만큼 진료비가 2060만원 더 많이 든다. 노후 의료비 추산치는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2016년 20대 이상 경제활동인구 1552명을 대상으로 한 ‘행복수명지표’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3배 이상 많았다. 당시 응답자들이 밝힌 노후 의료비 지출 예상액의 평균치는 2538만원이었다. 응답자의 63.3%는 의료비 지출이 500만원 미만으로 들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은 필요한 노후 의료비가 2269만원으로 남성의 2710만원보다 적게 예상해 추산치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연금을 통해 노후 생활비를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노후 의료비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독거노인은 2013년에 120만 명에서 2015년 138만 명으로 증가하고, 2025년에는 2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 암울한 것은 독거노인 가운데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노인이 전체의 42%에 달하고, 이 중 30만 명은 ‘고독사’ 우려가 심각하다. 노인 자살률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5년 기준 한국 전체 자살률은 10만 명 당 26.5명인데 노인 자살률은 58.6명으로 OECD 1위를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독거노인 지난해 140만 명 돌파

아예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 20만 명에 이르지만, 요양 서비스를 받는 노인은 3분의 1인 6만3000명에 불과하다. 독거노인들은 빈곤과 질병, 외로움과 고독,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인구는 2015년 662만 명에서 2035년 1475만 명으로 총인구 비율은 13.1%에서 28.4%가 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하류노인’에 합류할 전망이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1382호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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