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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한국경제 | 복지 위해 세제 고치자] 포퓰리즘 비과세·감면제도 폐지하라 

 

지난해 세금 감면액만 35조원 넘어... 소득세 누진세율 강화하고 복지 누수현상 해소해야

“증세가 필요하지만 불투명한 세금 사용처부터 없애주세요. 내가 부담하는 세금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복지가 커지진 않는 것 같으니까.”

“장기적으로 중(中)부담, 중(中)복지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앞서 과세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유리지갑인 봉급생활자만 뜯어갈 게 아니라 자영업자의 세원을 철저히 발굴해야 한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가 운영하는 시민마이크(peoplemic.com)에 쏟아진 목소리다. 시민들은 공평한 조세제도가 자리 잡는다면 증세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복지 확대도 마찬가지다. 위장 이혼이나 재산을 숨겨 부당하게 혜택을 받는 일이 없고, 모든 복지 수혜자가 실제 경제 능력에 맞게 부담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쇄도했다. 서유럽 수준의 조세·복지체계를 한국도 받아들일 때가 됐지만 조세체계가 공정하고 복지체계도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마이크에서는 “복지 확대를 위해 증세해야 한다”는 증세 찬성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증세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조세 부담의 형평성과 복지체계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증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이유에서다.

9명으로 구성된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의 의견도 일치했다. 경제분과 위원들은 “증세에 앞서 과세 형평성을 제고하고 복지예산 집행체계를 투명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원칙 아래 경제분과는 증세와 복지 확대에 앞서 지켜져야 할 9가지 세제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평 과세다.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제 개혁을 통해 공평 과세를 실현하고,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철저히 하고 세금 감면제도를 줄여 세제의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정정책 전담 독립기구 신설 필요


이를 위해서는 세금 감면제도의 정비가 불가피하다. 조성욱 서울대 교수는 “세금 감면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되거나, 우리 국민의 고용을 낮출 수 있는 해외 투자를 포함해 대규모 설비 투자에 많은 감면 혜택이 가고 있다”며 “개인은 물론 기업에 대한 세금을 소득에 비례해 부과함으로써 조세 형평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과세·감면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정비를 약속했지만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밀려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지난해 세금 감면 액은 35조3000억원에 달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것만 정비돼도 공평 과세와 재정 효율화를 확보해 재정 압박이 크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 혁신과 일자리 창출 지원 외에는 모든 비과세·감면을 폐지하라”고 제안했다.

조세제도 자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거둬 어떻게 사용하는지 계획을 밝히고 제대로 실행되는지 감시해 재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라는 주문이다. 지금 상태로는 “내 주머니에서 세금이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조세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소득 불평등 개선이 필요하다. 김진영 고려대 교수는 “최근 어느 나라든 정치가 요동치고 복지정책이 핵심적인 이슈가 되는 것은 소득 불평등 심화에 기인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복지를 늘리는 것이 정책 목표가 돼서는 안 되고 직접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경제분과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득세 누진세율을 강화하고 복지 지출의 누수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은 올해부터 40%로 상향되지만 과표 기준 5억원 초과분을 대상으로 한다. 그 아래 38%가 적용되는 과표 기준은 1억5000만원 초과분부터여서 구간이 촘촘하지 않다. 과표 기준을 세분화해 45% 안팎인 유럽 수준의 최고세율을 도입해야 실질적인 누진제가 된다는 것이다.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세무조사를 빌미로 기업을 협박하거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확인된 것처럼 기업의 재단 출연을 비롯한 준조세 수집 관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 같은 세제개혁·복지체계 개선은 기본 전제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으로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므로 중장기 재정계획을 세워야 한다.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는 “세금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무조건 법인세를 올리는 것보다는 경제를 살려 세수를 늘리고 부가가치세나 소득세를 고루 인상해 복지 지출과 연계하는 등 다양한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증세와 예산 지출을 비롯해 재정정책을 전담하는 독립기구의 설치도 필요하다. 김우철 교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재정정책 협의기구를 통해 새로운 재정운영시스템을 만들어야 비과세·감면의 남발을 막고 복지 증세나 연금제도 개편과 같은 장기적인 재정과제에 대처해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스기사] 세금지도(Tax Mix)로 본 한국의 조세 형평성 - 소득세 실효세율 지나치게 낮아

우리는 왜 조세가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는 걸까. 이는 세금 부담의 높낮이를 비롯해 조세의 수입구조를 나타내는 ‘세금지도(Tax Mix)’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우선 한국의 경제 규모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40%에 불과하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OECD 평균은 국내총생산(GDP)의 8.6%에 달하는데 한국은 3.7%에 그친다. 각종 비과세와 감면 등으로 개인소득세 실효세율이 명목세율보다 한참 낮은 것이 그 원인이다. 소득 재분배 효과가 가장 크다는 소득세 비중이 이렇게 작은 상태에서 세금이 공평하다고 느껴질 리 만무하다.

전체 세목 중 가장 큰 세원을 차지하는 부가가치세는 어떤가. 명목세율이 낮은 탓에 부가세 비중은 OECD 평균의 60%에 불과하다. 세금의 경제적 부작용이 가장 큰 법인세가 경제적 왜곡효과가 가장 작은 부가가치세보다 더 발달돼 있는 한국의 세입구조는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의 세금구조가 형평성·효율성 모두를 놓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이같이 단순하다. 문제는 저성장이 본격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지금은 기존의 비효율적이고 불공평한 세제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낡은 조세체계를 더욱 기형적으로 만들어 기업이 우리의 복지비용을 모두 부담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은 시대 역행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한계를 드러낸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드라마 시즌2가 될 수밖에 없다. 복지를 위한 항구적 비용은 수혜자 스스로 부담해야 지속 가능하다. 보편적 복지는 오직 보편적 증세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1383호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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