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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9) 생애 주기별 자산배분] 노후자금 투자 알아서 척척 ‘TDF(Target Date Fund)’ 뜬다 

 

서명수 경제 칼럼니스트 seo.myongsoo@joongang.co.kr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채권 혼합 비율 자동 조절하는 초장기 상품... 국내 증권사들 ‘한국형 TDF’ 출시

노후자산은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모으면 오래 쓸 수 있도록 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노후자산에 대한 투자는 원금을 지키면서 수익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안정성과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둘은 이율배반적이다. 안정성을 위해선 수익성을 희생해야 하고 수익성만 따지면 안정성은 물 건너간다. 이 골치 아픈 작업을 투자에 관한 지식과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개인은 해내기 쉽지 않다. 특히 어렵사리 축적한 노후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출구전략이 시장의 변동성으로 실패하면 노후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어디 마음 편하게 노후자산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이 없을까.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타깃 데이트 펀드(TDF : Target Date Fund)’는 이런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만든 상품이다. 타깃 데이트 펀드라는 이름은 ‘날짜를 겨냥한 펀드’라는 뜻인데, 여기서 날짜는 은퇴 시점이다. TDF는 한마디로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한 생애주기별 자산배분 방식이다. 미국은 이미 1000조원 규모로 시장이 커지는 등 해외에선 주요 노후자금 투자 수단 중 하나가 됐다.

자산배분 쉽게 해결하는 자동 기어변속기


TDF는 가입 당시 정한 은퇴 시점이 가까울수록 포트폴리오의 편입 자산이 보수적으로 변하게 설계해 놓은 초장기 혼합형 펀드다. 목표 날짜에 납입이 끝나는 ‘퇴직 목표형’과 목표 날짜 이후에도 자산이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퇴직 후 소득추구형’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고령화의 빠른 진전으로 기대수명이 연장되면서 퇴직 후 소득 창출과 소비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퇴직 후 소득추구형은 퇴직 목표형보다 주식비중이 크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구매력 감소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는 TDF를 자동차 기어변속기에 비유했다. 수동 기어변속기는 운전자의 운전습관이 좋으면 에너지가 절감되는 장점이 있지만 도로 지형이나 운전 숙련도에 따라 운전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자동 기어변속기는 누구나 손쉽게 운전할 수 있지만 연비가 나쁘다. 투자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수시로 투자 패턴을 변경하거나 펀드 교체를 할 수 있다면 TDF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TDF는 값은 좀 비싸지만 자산배분의 어려움을 쉽게 해결해주는 자동 기어 변속기다.

TDF에서 자동 기어변속기에 해당하는 것이 자산배분 프로그램인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라는 것이다. 이는 원래 항공용어로 비행기가 착륙할 때 내려오는 속도와 경로를 의미한다. 젊을 때 공격적인 투자 패턴이 은퇴 시점에 접근할수록 보수적으로 바뀌므로 이에 걸맞은 자산배분을 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은퇴 시점을 2020년에 맞춘 TDF2020펀드는 TDF2040펀드에 비해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 더 높은 비율로 투자한다. TDF2040펀드는 가입자들의 은퇴 시점이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높은 주식투자 비중으로 공격적인 운용을 한다.

TDF가 가입 초기 자산 구성에서 주식 비중을 크게 가져가는 이유는 가입자의 소득 구성 요소가 변하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퇴직 전 소득은 보유 금융자산과 미래 근로소득의 합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미래 근로소득의 현재가치는 일종의 인적자산으로 일정한 수입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채권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 연령이 낮은 가입자는 금융자산보다 채권 성격의 인적자산이 크게 마련인데, 생애소득 관점에선 지나치게 보수적인 자산 운용이다. 그래서 주식 비중을 높여 수익성을 보강하는 것이다. 연령이 높아지면 인적자산은 한계 체감하게 되므로 금융자산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금융자산의 규모가 증가할수록 시장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가 커지므로 주식을 줄이고 채권 같은 안전자산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다.

TDF는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출시됐다. 초반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그 유용성을 인정받아 인기를 끌고 있다.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 및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제도 도입 이후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디폴트 옵션이란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펀드 회사가 자체 투자전략에 따라 자산을 운용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고객의 운용 지시 없이 자동으로 자산배분을 하는 TDF는 디폴트 옵션 도입이 필수적이다. 보수적 운용전략을 취하는 상품이 90% 이상이던 미국의 퇴직연금도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TDF 비중이 78%까지 높아지는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한국에도 TDF 시대가 곧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미국의 TDF가 한국에 상륙, 몇몇 증권사가 ‘한국형 TDF’란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형 TDF를 판매하기 시작한 삼성증권은 1년 만에 100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앞으로 한국형 TDF는 국내 은퇴 시장의 판도를 흔들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퇴직연금에 허용되지 않던 디폴트 옵션 제도가 조만간 도입되고 자산배분펀드에 대한 규제도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증권사들도 TDF를 직접 개발할 수 있게 돼 연금시장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박스기사] TDF Q&A - 수익률보다 안정적 운용여부 확인해야

Q. TDF의 종류가 많은데, 선택하는 방법은.

A. 상품마다 은퇴시점을 알려주므로 자기에게 해당하는 걸 고르면 된다. 이를 테면 TDF2020는 2015~20년 은퇴자를, TDF2030는 2025~30년 은퇴자를, TDF2035는 2030~35년 은퇴자를 위한 펀드를 각각 말한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2020펀드의 경우 주식 비중이 48%, 현금비중이 11%지만, 2050펀드는 현금비중이 2%, 주식비중이 70%로 대조적이다.

Q. 수익률은 어느 정도인가.

A. 가입자들은 수익률을 가장 눈여겨 본다. 하지만 TDF는 은퇴 후 20~30년이 중요하다. 그래서 수익률만큼 중요한 것이 오랫동안 큰 손실 없이 안정적으로 운용이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최근 출시된 TDF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5% 안팎, 최근 5년간은 연평균 7% 정도다. 삼성증권의 TDF2045는 8%, TDF2020은 4% 수준이다.

Q. 한국형 TDF라는 말이 있던데 어떤 뜻인가.

A. TDF는 투자자의 취업이나 은퇴 등 삶의 흐름을 반영하는 상품이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삶의 방식은 차이가 있어 투자 전략도 달라야 한다. 예컨대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높고, 남성의 경우 군입대 등으로 첫 직장을 얻는 시점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늦다. 이런 점을 조정하는 것을 ‘한국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Q. 투자시 주의사항은.

A. TDF는 어디까지나 투자상품이다. 은퇴날짜에 맞춰 마법처럼 자산 배분을 한다고 자산의 손실위험까지 보호해준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기껏해야 재산상의 손실을 끼치는 선에서 그치는 다른 펀드와 달리 TDF는 노후가 걸린 상품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엔 TDF의 수익률도 급락해 다른 펀드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가입자들의 원성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TDF는 비용부담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불입금의 0.2~1.5%를 보수로 떼는데, 당장은 얼마 안 되는 것 같아도 초장기 상품인 만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 있다.

1383호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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