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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7) | 거목(巨木)의 두 얼굴] 큰 나무가 쓰러져야 숲이 산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숲 생태계는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 … 거목만 우거진 숲은 성장할 수 없어

여름 숲은 푸름으로 무성하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숲 속은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작은 천국 같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숲 생태계 관점에서 보면 여름 숲은 보기와 달리 극단적인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명과 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곳이다.

하늘로 높다랗게 솟은 나무들이 만드는 우거진 숲은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은 햇빛 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햇빛이 있어야 광합성을 할 수 있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위에 있는 나무들이 햇빛을 다 받아버리니 하루 종일 하늘을 쳐다 본들 소득이 없다. 참나무 숲은 그 많은 햇빛 중 25% 정도만 숲 속에 들이고, 가늘지만 촘촘한 잎을 가진 소나무 숲은 20% 정도의 빛만 통과시킨다. 성장의 계절은 높다란 나무들에게만 해당할 뿐 약자에겐 심각한 불평등의 계절이다.

작은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


▎죽은 소나무에서 자란 어린 소나무.
열대 우림의 정글은 더하다. 말 그대로 온갖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밀림에서는 겨우 2% 정도의 햇빛만이 땅바닥에 도달한다. 낮에도 캄캄하다. 낮은 곳에 사는 식물들에겐 암담한 나날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명력이란 바로 이런 곳에서도 살아남는 능력을 만드는 것. 숲 속 땅바닥에 사는 몇몇 식물들은 갖은 수를 짜내 이 ‘푸른 황무지’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나름의 생존전략을 개발해냈다. 이런 곳에 사는 식물들을 보면 대체로 넓게 펼친 잎들을 나선형으로 배치하고 있다. 빛을 받는 면적을 최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기본일 뿐, 근근이 먹고 사는 것 이상을 할 수 없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전략 중의 하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는 것이다. 우람하게 솟아있는 나무 줄기를 지지대 삼아 이걸 빙글빙글 감고 올라가는 것, 등나무나 칡 같은 덩굴식물들이 그들이다. 이런 덩굴식물은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줄기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 여기에 들어갈 막대한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대신 오로지 잎에 투자하면서 저 높은 꼭대기 층으로 빠르게 올라간다. 하지만 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가느다란 줄기를 통해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어떻게 저 높은 곳까지 공급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연구에 의하면 열대 우림에 사는 리아나라고 하는 덩굴식물은 최대 900m나 되는 곳까지 양분을 보급할 수 있는 수송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독보적인 기술 덕분에 전세계 열대림에서 번성하고 있는데 현재 밝혀진 것만 2500종이 넘는다(이 기술을 우리가 습득할 수 있다면 엄청난 혁신을 이룰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꼭대기로 올라가 햇빛을 듬뿍 받으면 그때야 줄기에 투자한다. 소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칡 덩굴이 해가 갈수록 굵어지는 이유다.

완전히 다른 역량을 개발한 식물도 있다. 멕시코 남부 숲에 사는 얼룩자주달개비는 숲 속으로 들어오는 얼마 안 되는 빛을 알뜰살뜰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이 있다. 쉽게 말해 흡수한 빛을 내부에서 거울처럼 반사시켜 빛을 최대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요즘 집에서 많이 키우는 넓은 잎을 가진 알로카시아 중 보르네오가 원산인 한 종도 이런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캄캄한 숲 속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미국 뉴욕식물원의 양치식물 전문가 로빈 모란이 낮에도 캄캄한 중앙아메리카 열대림을 탐사하기 위해 고감도 필름에 측광 기능까지 갖춘 카메라를 갖고 갔는데도 워낙 어두운 탓에 결국 사진을 찍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에 고사리가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주 약한 빛으로도 살 수 있는 채광성 고사리였다. 서로 기술 교류를 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같은 원리의 기술을 만들어냈을까.

여름 숲은 이렇듯 명과 암에 따라 생과 사가 엇갈리는, 키 작은 약자들에게는 ‘앞이 캄캄한’ 곳이다. 특별한 역량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면 조성된 지 오래되어 아름답고 울창한 숲은 어떨까.

거대한 삼나무 숲엔 미래가 없다


이곳의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한국 같은 온대 낙엽수림에서는 200년 정도 되면 오래된 숲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숲은 나무 종류는 줄어드는 반면 개개의 나무는 굵어지고 커진다. 오랜 시간 살다 보니 일정 수준 이상 자란 큰 나무들이 다들 자기 영역에 확실하게 터를 잡고 있어 매우 안정된 생태계를 이룬다. 그런데 이 높은 안정성이 문제가 된다. 다들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잡고 있어 안정성이 높긴 하지만 이 때문에 새로운 나무들이 자랄 수 없다. 햇빛이 있어야 씨앗이 싹 트고 자랄 수 있는데 울창하기에 더 짙은 그늘이 지고, 땅에는 낙엽이 두텁게 쌓여 씨앗들이 싹을 틔울 수 없다. 어찌어찌 싹을 틔웠다고 해도 자라날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쓰고 몸부림을 쳐도 캄캄한 어둠을 뚫을 수 없다. 성장이 없는 이런 숲은 아무리 좋을지라도 정체되다가 사라지는 수순을 밟는다. 자기만의 터를 확실히 잡고 쏟아지는 햇빛을 마음껏 받는 큰 나무들에겐 너무나 좋은 환경이겠지만 숲 전체로 보면 대체할 후손이 없어 천천히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숲이지만 미래의 황무지라고 할 수 있다.

북아메리카 서부에 있는 거대한 삼나무 숲이 바로 그런 곳이다. 무려 80m까지 자란 거대한 삼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지만 이 숲에는 어린 나무가 거의 없다. 성장이 멈춰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숲이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너무 안정적인 현재가 미래를 자랄 수 없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숲은 빈 곳이 생기자마자 금방 채워진다. 이제나저제나 때를 기다리는 많은 후보자가 목마르게 자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빈 자리가 생기면 앞다투어 달리는 덕분이다. 언제든 기회가 온다는 걸 알기에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기라성 같은 나무들로 가득 찬 숲은 회복이 늦다. 어떤 일로 한꺼번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황무지로 변해간다. 이런 곳은 마치 부장과 임원들만 있고 젊은 직원이 없는 회사와 같다. 이런 회사에 미래가 있을까. 있는 사람들(기득권자)만 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가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가 그랬듯이 어느 한 순간 주저앉고 말 것이다.

물론 크고 굵은 나무라고 마냥 편하고 좋은 건 아니다. 임관(林冠, canopy)이라고 하는 숲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거목들은 좋은 햇빛만 받는 게 아니라 타는 듯한 열기와 땅에서 멀어질수록 심해지는 건조함을 견뎌야 한다. 이뿐인가. 태풍 같은 위기가 올 때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노출된다. 가장 먼저 흔들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부대낌을 당한다. 그럴 때마다 몇몇 거목들이 쓰러지기도 한다.

거목이 쓰러진 곳에 새 생명이 자라


▎캐나다 우림에서 작은 나무들과 섞여 자라는 시다나무.
숲을 받치고 있던 거목이 쓰러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숲의 안정이 파괴될까. 성장력이 살아있는 숲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동안 그늘에 가려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런 움직임은 곧 치열한 경쟁으로 번진다. 쓰러진 나무 위로 텅 빈 하늘이 나타나면서 엄청난 햇빛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바닥에서 기회를 기다리던 각종 씨앗들이 일제히 싹을 틔우며 하늘을 향한 레이스를 시작한다. 온대 낙엽 활엽수림은 보통 1헥타르당 50여 종이 경쟁하고, 밀림 같은 곳에선 250여 종의 식물이 자랄 정도니 그야말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특성상 일단 먼저 위로 올라가 넓은 잎을 펼쳐 햇빛을 독차지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한 번 뒤처지면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 생사를 건 레이스가 되는 것이다.

열대 우림의 경우 레이스는 보통 4년 정도 지속된다. 이 동안 보통 초반과 종반의 주자가 바뀐다. 초반에는 마카랑가 같은 나무가 1년에 8m씩 쑥쑥 자라면서 앞서가는 듯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대개 뒷심을 발휘하는 무화과나무들이다. 무화과나무는 대개 누구보다 일찍 싹을 틔운 다음 천천히 꾸준하게 자라는 성장 전략을 전개한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의 표현대로 하자면 토끼처럼 빠르게 싹을 틔우고, 거북이처럼 천천히 자라면서 기반을 다진다. 그렇게 착실히 기반을 다지다 어느 시점이 되면 막판 스퍼트를 시작해 선두를 앞질러 승자가 된다. 수십미터로 자라는 승자는 모든 걸 가지는 관례에 따라 거대한 수관을 펼쳐 주변을 압도한다. 그렇게 200여 년을 간다. 숲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며 다른 식물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대신 많은 동물을 먹여 살린다. 한 연구에 의하면 44종의 새와 원숭이가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를 터전 삼아 살아간다고 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이 불거나 노화되면 쓰러진다.

성장하는 숲에서 거목은 죽어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수많은 어린 나무에게 솟아오를 공간을 터줄 뿐만 아니라 썩어서 그들에게 필요한 밑거름을 제공한다. 또 살아있을 때와는 또 다른 수많은 동물을 먹여 살리는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장수하늘소들은 이런 고목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녀석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알을 낳는데 그러면 곧이어 딱따구리들이 날아든다. 애벌레들을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동물의 삶을 떠받친다. 그래서 [신갈나무 투쟁기]를 쓴 생태전문가 차윤정 박사는 거목이 쓰러지는 순간 죽은 나무가 ‘탄생’한다고 했다. 숲에 사는 생명체들 중 30% 이상이 죽은 나무에 의존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태풍 덕분에 새로운 숲이 탄생

이렇듯 숲에서 거목의 쓰러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새로운 숲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힘이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숲을 뒤흔들며 거목을 쓰러뜨리는 태풍도 꼭 위기라고 할 수 없다. 태풍 덕분에 새로운 숲이 탄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1978년 영국 생태학자 조셉 코넬은 이런 숲에 특별한 삶의 원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열대림과 산호초를 대상으로 연구를 해보니 너무 센 교란(강력한 허리케인)이나 너무 약한 교란(충격을 주지 않는 허리케인)이 아닌 중간 수준의 교란이 있을 경우 종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위기로만 알고 있던 허리케인이 사실은 성장촉진제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에 중간 규모 교란 이론(intermediate disturbance hypothesi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그래프 참조).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동해에도 이 원리가 살아있다. 동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물고기들과 어부들은 ‘어느 정도’ 태풍이 불어주어야 잘 살 수 있다. 태풍이 불어 바다 속을 어느 정도 뒤집어주어야 해저에 깔린 영양분들이 위로 올라올 수 있고 그래야 물고기들이 잘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과는 달리 태풍이 풍요로운 바다를 만드는 것이다. 이 원리는 유기체적인 특성을 가진 조직이나 국가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박스 참조).

숲 생태계는 조직 생태계와 닮은 점이 많다. 사람이든 관례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든 조직에 너무 많은 거목이 들어서 있으면 역동성은 떨어지고 성장은 정체된다. ‘기득권의 숲’은 조직 내부를 어둡게 하고 미래마저 암울하게 한다. 현재에 치중하느라 미래를 희생시킨다. 당장은, 그리고 소수에겐 힘들더라도 적절한 뒤바꿈을 통해 새로워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어느 정도’ 거목이 쓰러져야 숲이 산다. 죽은 나무가 숲을 살린다.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박스기사] 핀란드 경제가 주는 교훈 - 노키아가 쓰러지고 앵그리버드가 날았다


▎핀란드 노키아 본사 내부 모습.
꼭 10년 전인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소개한 후 세상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700조 원이 넘는 시장이 생겨나면서 산업지형 또한 천변만화했다. 애플과 삼성은 승승장구한 반면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장악했던 노키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노키아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던 핀란드 경제 또한 폭삭 주저앉았다. 핀란드 경제성장의 4분의 1을 주도하면서 국가 전체 법인세 수입의 23%를 차지할 정도(2007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핀란드 경제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국가 경제를 받치고 있던 거목이 쓰러졌을 때 핀란드는 쓰러진 거목을 일으켜 세우는 대신 씨앗을 싹 틔우는 선택을 했다. 건강한 숲에서 일어날 법한 작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수많은 스타트업을 육성한 것이다. 앵그리버드 게임으로 세계적 히트를 친 로비오도 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생겨났다. 실업자가 된 노키아 출신들 또한 ‘씨앗’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노키아 출신들이 세운 신생 기업만 300개가 넘는다. 유명한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슈퍼셀도 그 중 하나다(2016년 중국 텐센트가 인수했다). 단정하긴 이르지만 “노키아의 침몰이 오히려 핀란드에서 가장 잘된 일”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거목이 쓰러진 자리에 새로운 숲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는 이를 위해 교육 시스템까지 혁신, 창의성을 키우는 쪽으로 전환했다. 좋은 숲을 만드는 데는 좋은 씨앗이 필요한 까닭이다.

1384호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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