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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47)] 임금피크제, 독 아닌 약 되려면…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근로 연장 아닌 인생 이모작 기회로 삼아야... 회사는 적극적으로 전직지원서비스 제공을

임금피크제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이다. 정년 연장에 따라 기업이 직원을 더 오래 고용하는 대신 장기 근속자의 임금을 낮추고 그 여력으로 신규 취업자를 고용하자는 취지의 고용연장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인건비로 정년 연장을 흡수하고 신규 채용도 해야 하는 기업에서 보면 임금피크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과도기적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국회가 2013년 5월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일명 정년연장법)’을 제정했는데 기업의 임금 부담 완화를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은 2016년 상시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에 이어 2017년부터 모든 사업장에서 정년 연장이 의무화 됨에 따라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56~59세부터는 최고 임금 대비 50∼80% 수준으로 임금을 낮추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노사의 입장 차이에 따라 순탄치 않는 과정을 거쳐오고 있다. 근로자들은 임금 삭감 없이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의 변화 소용돌이에서 기업의 생존조차 불투명해지면서다.

이러한 이유들이 복합 작용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년을 보장하되 일정 연령 이후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2016년 기준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46.8%로 나타났다. 이는 2015년 27.2%에 비해 20%포인트가량 높아졌지만 여전히 보편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현장에선 과도기적 마찰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경우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임금이 줄어들게 되면 업무와 역할도 조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임금피크제와 함께 ‘점진적 퇴직제도’를 병행하고 있다. 점진적 퇴직제도는 임금피크에 도달한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25~75% 수준으로 줄여나가면서 임금을 줄이는 것으로, 여기서 확보된 재원으로 청년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다. 독일·스웨덴·일본은 정년 연장과 함께 이 제도를 받아들여 장년의 노후 보장과 청년 일자리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앞으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생 이모작 과정에서도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회사원 정모(54)씨는 “정년 60세를 보장한다고 하는데, 주위에서 50대 중반까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정년 60세가 보장된다고 해도 막상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면 급여에 만족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씨는 임금이 줄더라도 정년을 채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젊고 의욕이 넘칠 때 이직이나 창업을 비롯해 인생 이모작에 나설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고용정체와 실업난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쉰을 넘겨 안정기에 들어가야 할 시기에 창업을 하는 것도 리스크가 커 엄두를 내기 어렵다.

정씨의 딜레마는 퇴직을 앞둔 장년 세대의 공통된 관심이다. 제도적으로는 60세 정년이 보장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베이비부머 박모(59)씨는 임금피크제를 믿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조기 퇴직 날벼락을 맞은 경우다. 박씨는 이름만 얘기하면 누구나 아는 굴지의 기업에 다녔다. 정년이 58세에서 60세로 연장됐을 때 그는 57세였다. 회사를 2년 더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맡았던 사업부가 실적 저하로 구조조정되면서 그도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박씨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게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벌써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 아무런 준비 없이 밖으로 나오게 되자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현직 프리미엄 살려 이모작 준비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일찌감치 2014년 11월 13일 ‘경총 명예퇴직제도 운영지침’을 발표했다. 경총은 기업이 명예퇴직 활용을 통해 추구해야 할 4대 원칙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인력운용 부담 해소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승진 정체 완화와 신규 채용 확대를 통해 인력관리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근로자에게 추가보상 확보와 새로운 직업 경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명예퇴직제도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설계·운영하고, 근로자의 자발적 선택을 존중하며, 명예퇴직 위로금은 기업의 경영상황과 정년 잔여 기간 같은 복합적인 변수를 고려해 설정돼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기업은 근로자의 새로운 직업 경로 모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재취업, 창업 같은 전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상당수 기업이 정년연장으로 늘어나는 고령자를 수용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경총이 회원 기업의 대표로서 방안을 제시했지만, 기업의 일반적인 고충과 속내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임금피크제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근로의 연장보다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금이 줄면 보직을 내려놓는 것을 비롯해 역할이 줄어들게 된다. 이 기간 중에는 현직 프리미엄을 활용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회사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아웃플레이스먼트 지원을 해 인생이모작을 도와야 한다.

60세 정년 채우기를 선택하지 않고 56세에 조기퇴직해 프리랜서 홍보업을 선택한 최모(61)씨는 요즘 일감이 넘치고 있다. 처음에는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그럴듯한 명함에 이끌려 재취업했다가 비전이 없어 그만둔 적도 있다. 그런 경험은 금세 최씨의 인생 자산이 되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찾는 원동력이 됐다. 최씨는 “적당한 때가 되면 빨리 현실에 부닥쳐야 빨리 적응한다”며 “그래야 현업에 있을 때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는 재무적으로 득실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에서는 보통 57~58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시작되고 정년이 원래 58세였던 공기업은 59세부터 적용된다. 민간기업은 임금피크제의 효용이 어차피 공기업보다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이 깎인 채로 3~4년 더 다녀도 공기업 임금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라면 임금이 높겠지만 임원이 아니고서는 55세를 넘는 직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금피크제는 자칫 마약처럼 임금이 깎였는데도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더 길게 내다봐야 하는 인생이모작을 방해할 수도 있다. 정년연장이 제도화됐다고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임금피크제가 도입됐다고 그 임금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새로운 기회마저 놓칠 수 있는 백세시대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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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4호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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