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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기부왕’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나눔 철학] 나눔은 또 다른 경영 ‘셰어드 라이프, 셰어드 경영(shared life, shared business)’ 

 

남승률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세계공동모금회 초대 ‘글로벌 필란트로피 어워드’ 수상...“나눔 DNA는 가풍으로 물려받은 것"

최신원 회장이 최근 세계공동모금회의 초대 ‘글로벌 필란트로피 어워드’를 수상했다. 나눔활동과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기업 경영도 나눔활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나눔과 기부 그리고 경영의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개인도 기업도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익명의 기부자에서 아시아의 기부 영웅으로 획을 그은 그는 사업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SK그룹의 모태이자 선친이 세운 SK네트웍스를 맡아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며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구조개편의 잣대는 성장성, 수익성, 핵심 역량이다.


최신원(65) SK네트웍스 회장은 5월 9∼12일(현지시간)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세계공동모금회(UWW) 주최 ‘유나이티드웨이 커뮤니티 리더스 콘퍼런스’에서 초대 ‘글로벌 필란트로피 어워드’를 수상했다. 세계공동모금회는 41개국 1800개 지부에 교육·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기금 모금·배분으로 지역사회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지금까지 총 모금액만 51억 달러가 넘는다. 필란트로피 어워드는 고액 기부 등으로 세계공동모금회의 활동에 크게 공헌한 개인 후원자에게 주는 공로상이다.

최신원 회장은 “서울에서 온 최신원”이라고 말문을 연 후 “인종과 국가, 문화가 다르지만 지구촌을 한가족처럼 생각한다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최 회장과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마이클 헤이드 전 세계공동모금회 리더십위원회 위원장은 “최신원 회장은 한국에서 나눔의 저변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훌륭한 리더이며 ‘우리는 받아서 삶을 꾸려 나가고, 주면서 인생을 꾸며 나간다’는 윈스턴 처칠의 명언에 걸맞은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축하했다.

개인 1000만 달러 기부 약속 지킨다


▎최신원 회장이 5월 9~12일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세계공동모금회(UWW)의 ‘유나이티드웨이 커뮤니티 리더스 콘퍼런스’에서 초대 ‘글로벌 필란트로피 어워드’를 수상했다. / 사진제공·SK네트웍스
최 회장은 이번에 아시아 최초로 세계공동모금회 최고액 기부 클럽인 ‘1000만 달러 라운드테이블’에도 올랐다. 1000만 달러 라운드테이블은 세계공동모금회나 관련 기관에 1000만 달러를 기부했거나 기부를 약정해야 멤버가 될 수 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재단, 마이클 헤이드 부부 등 32명의 개인과 단체가 1000만 달러 라운드테이블 멤버다. 최 회장은 지금까지 국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7억3000만원을 기부했다. 개인 기부자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그는 지난해 개인 회원으로 최고액인 6억3800만원을 기부했다. 최 회장은 “1000만 달러 기부 약속도 나눔정신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며 “앞으로 10년간 나머지 62억7000만원을 국내외 기관에 기부해 1000만 달러 라운드테이블 멤버로서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기부는 회사가 아닌 개인 돈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최의(Choi’s) 해피 펀드’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다문화가정이나 저소득 가정에 수십억원을 지원해왔다. 그를 국내 재계의 ‘기부왕’으로 부르고,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서도 ‘아시아의 기부 영웅’으로 선정한 배경이다.

5월 19일 귀국하자마자 다시 일본으로 출장을 떠난 최신원 회장은 자신의 수상 소식이 많이 알려지자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최 회장은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누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기는 가풍 속에 자랐기 때문에 나눔은 남에게 자랑할 일도, 내세울 일도 아닌 일”이라고 늘 말해왔다.

선대의 ‘나눔 DNA’ 자녀에게도 물려주려 노력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기 시작할 때도 처음에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200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을지로 최신원’이라고 적힌 편지봉투가 들어왔다. 봉투에는 거액의 기부금이 들어있었다. 을지로 최신원의 기부는 약 5년간 이어졌다. 그러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익명의 기부자를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찾은 편지봉투의 주인공이 최신원 회장이었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기부했는데 어느 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찾아와 기부 문화 확산에 앞장서 달라고 말하더군요. 고민 끝에 ‘아너소사이어티’ 창립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한국 최초의 개인 고액 기부 프로그램입니다. 미국의 토크빌 소사이어티를 모델로 만들었습니다.”

최 회장은 2008년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정식 가입했다. 국내 대기업 회장 중에는 첫 사례였다. 특히 2012년에는 아너소사이어티 대표로 뽑혀 ‘고액 기부’ 전도사로 팔을 걷고 나섰다.

“좋은 일은 조용히 하는 것”이라던 그가 나눔과 기부를 더 이상 숨기지 않는 이유가 있다. 누가 기부한다는 게 자꾸 소문이 나야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게 되고 그래야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확산된다는 생각에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활동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나를 믿고 기부에 동참해준 사람들이 있고, 또 그들을 보고 다른 사람이 참여하는 릴레이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2007년에 6명으로 시작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1200명에 이르렀고 누적 기부금액도 1000억원을 훌쩍 넘겼어요. 미국의 토크빌 소사이어티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입니다.”

이번에 ‘글로벌 필란트로피 어워드’를 수상할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국내외에서 나눔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나눔의 철학을 실천한 노력을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이 나눔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세계공동모금회에서 초대 글로벌 필란트로피 어워드 수상자로 최신원 회장을 선정한 것은 최 회장이 개인 나눔 활동의 불모지인 아시아 지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나눔문화를 전파한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자신의 ‘나눔 DNA’는 가풍으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선친은 손에 잡히는 대로 나눠주셨던 분이었습니다. 공장을 지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익이 나면 직원들의 보너스부터 챙겼죠. 조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사를 크게 지으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인색하지 않습니다.”

최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 책상 뒤에 큼지막한 선친의 사진을 걸어놨다. 사무실을 옮겨도 늘 뒤에 둔다. 그만큼 선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각별하다. 그런 최 회장은 2004년 선친의 타계 30주년을 기리기 위해 동생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과 ‘재단법인 선경 최종건 장학재단’을 세웠다. 선친의 인재양성 뜻을 기려 세운 공익재단이다. 최 회장의 모친인 노순애 여사가 이사장을 맡아왔지만 지난해 노 여사가 별세한 후 최 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재단은 그룹의 발상지인 수원에서 장학사업을 시작했지만 점차 활동 지역을 전국적으로 넓혀 지난해까지 2288명에게 34억원가량을 지원했다. 최 회장은 “선친은 생전에 수원에 기술학교를 짓는 게 꿈이었을 정도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며 “앞으로 더 많은 학생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장학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선대로부터 배운 것을 자녀(2녀1남)에게도 전하고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흘려 보내야 한다’는 교육관을 지닌 그는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조금씩이라도 기부하라‘고 말한다. 특히 둘째딸 결혼식에서 받은 축의금을 모두 경기사회복지모금회와 기아대책에 기부했다.

회사 이해관계자가 행복해야 회사도 행복

최 회장은 경영에서도 나눔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조직 안에서는 구성원과 비전을 나누고, 조직 밖으로는 고객과 가치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만 잘 제공한다고 성장하던 시대는 저물었다는 생각에서다. 제품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고객들이 기업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를 ‘셰어드 라이프, 셰어드 경영(shared life, shared business)’이라고 부른다. 기업 경영도 결국은 나눔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측면에서다. 나눔과 기부 그리고 경영의 선순환 구조라고 볼 수 있다.

그가 SKC를 이끌 때 공장 곳곳에 모금함이 있었다. 직원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했다. SK네트웍스·워커힐호텔 등에도 모금함을 뒀다. 최 회장은 SK텔레시스 시절 회사가 경영난으로 임금을 동결했을 때도 급여 우수리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시 임직원 90%가 참여했다. 직원들과 봉사와 나눔을 공유하면서 건전한 노사문화를 덤으로 얻었다. 회장과 노조위원장이 함께 김장을 담그고 연탄을 나르며 호흡을 맞추면서 10년 가까이 노사 분규가 없었다.

최 회장의 이런 경영철학은 SK그룹의 경영관리 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와도 맞닿아 있다. SK의 핵심 경영철학은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에 있는데, 기업과 관계된 사람 모두가 행복해야 기업이 더욱 오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스기사] 나눔경영 관련 최신원 회장 말말말

“언제까지 나눔 펼칠 거냐고? 언제까지 밥 먹을지 물어달라.”

“장기 경기 침체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안팎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나눔의 온정이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사회공헌 활동이 보여주기 식 이벤트여서는 안 된다. 나눔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 지원이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또한 우리 역시 나눔으로 인해 행복해 지는 것을 저절로 깨치게 된다.”

“아버지는 내게 나눔의 의무를 특권이자 행복한 책임으로 인식하도록 가르쳤다. 돈에 대한 가치와 기부에 대한 내 철학은 모두 선친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기업은 사회와의 깊은 교감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경영자들이 많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의 기업인들이나 부유층이 기부에 인색한 측면이 있는데 이것은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비약적인 산업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성과주의에 편향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다. 내 이웃들과 나누는 행동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아가야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평소 임직원들에게 ‘나눔은 모두가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모두를 행복하게끔 해주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정반대로 개인 기부와 기업 기부의 비율이 2대8 정도로 기업 기부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또한 기업들의 기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보이기 위한 단발성 기부 등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만 잘 제공한다고 해서 발전하는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들은 제품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결국에는 기업의 가치가 더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은 적극적인 기업 경영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386호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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