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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일 기자의 ‘K-뷰티 히어로’(6) 정도현 라파스 대표] 바이오와 반도체 기술의 결합 화장품의 새 장르 열었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초미세 바늘 장착한 신개념 패치 화장품 개발... 16개국에 수출, 해외 유력 학술지·언론에서도 주목

▎서울 상암동 라파스 본사에서 만난 정도현 대표는 첨단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이 결합된 화장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 사진제공·김상선 기자
첨단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이 결합해 새로운 카테고리의 화장품을 탄생시켰다. 바이오 벤처기업 라파스가 2012년 개발한 ‘아크로패스(Acropass)’는 기존 제품과는 출발부터가 다른 신개념 화장품이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일반적인 패치 형태의 화장품이지만, 이 제품 속에는 ‘용해성 마이크로구조체(Dissolving Microstructures)’라는 획기적인 신기술이 숨겨져 있다.

출발부터 남다른 신개념 화장품


라파스의 독자적인 제조 기술로 만들어낸 용해성 마이크로구조체는 한마디로 고통 없이 피부 장벽을 통과해 몸속에 유효 성분을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마이크로니들(Microneedle)이라는 초미세 바늘로 유효 성분을 체내에 흡수시켜 최대의 전달 효과를 낼 수 있다. 패치를 얼굴에 붙이면 머리카락 3분의 1 굵기의 미세한 돌기가 바늘처럼 피부 각질층을 뚫고 표피 안쪽까지 들어가 유효 성분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대표 성분인 EGF(Epidermal Growth Factor, 상피세포 성장인자)와 히알루론산은 눈가나 입가 주름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특히 아크로패스 패치 한 장에는 일반 화장품 한 병에 해당되는 유효 성분이 들어 있어 피부 개선 효과가 뛰어나다. 또 방부제나 화학 성분을 넣지 않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지난 5월 12일, 서울 상암동 라파스 본사에서 정도현(48) 대표를 만났다. 정 대표는 2004년 연세대 생명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방제약 연구원과 오산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낸 연구원 출신의 사업가다. 그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약물을 피부에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2006년 라파스(Raphas)를 설립했다. 기업명 라파스는 히브리어로 치유를 뜻하는 ‘라파(Rapha)’와 전달을 의미하는 ‘패스(Path)’의 합성어다. ‘모든 사람에게 치유의 통로가 되자’는 기업 이념을 담고 있다. 정 대표는 “라파스의 시작은 오랫동안 생명공학을 연구해온 학자들의 소박한 꿈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용해성 마이크로구조체는 원래 연세대 생명공학과에서 개발한 기술이에요. 2009년 우리 회사에서 이 기술을 이전받아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누구나 주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에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에서 마이크로구조체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거죠. 여기에 다시 반도체 기술, 즉 마이크로니들 기술이 접목돼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겁니다. 4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세계 최초로 새로운 약물 전달 시스템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고, 이전에 없던 신개념의 화장품을 세상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라파스의 모든 제품은 ‘송풍인장(DAB, Droplet-born Air Blowing)’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다. 반도체 제조 기술에서 유래한 이 기술은 두 개의 패치 사이에 정량의 유효 성분을 물방울 형태로 자리 잡게 하고, 인장 방식(위·아래로 늘이는 기법)을 통해 형성된 마이크로니들을 바람으로 건조시키는 방법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냈으며, 독일의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같은 세계적인 학술지에 소개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장품 넘어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


▎아크로패스 트러블 큐어는 나이아신아마이드, 올리고펩타이드-76 등 피부 트러블 개선에 효과적인 성분을 담은 제품이다. / 사진제공·라파스
라파스만의 탁월한 기술력이 적용된 패치 제품들은 해외에서 먼저 그 진가를 알아봤다. 2012년 일본에서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첫 제품을 선보였고, 2014년에는 미국의 로던 앤드 필드(Rodan and Fields)와 독점 계약을 맺고 제품을 출시했다. 특히 미국에서 선보인 ‘어큐트 케어(Acute Care)’는 2015년 미국 포브스에서 발표한 ‘가장 혁신적인 뷰티 제품(Most Innovative Beauty Products)’에 선정된 이후 수많은 외신에서 주목할 만한 제품으로 소개된 바 있다.

성공적인 해외 시장 진출에 힘입어 라파스는 현재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2014년부터 일본과 중국, 미국에 잇달아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러시아·브라질·파라과이·스페인·영국·독일·우크라이나·호주 등 16개 국가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또 향후 일본과 중국에 생산 공장 건립을 위해 현지 업체와 협의 중이며, 유럽 시장 확대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안티에이징 패치 이외에 여드름용 패치와 미백용 패치로 제품을 확대하고 본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또 화장품뿐만 아니라 관절염·치매 치료 패치, 인슐린·백신 패치 등 의료 분야까지 제품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정 대표는 지난해 보령제약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미용제품과 의료기기, 의약품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올해 말까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임상 시설을 갖춘 사옥을 짓고 신규 인력을 보강하는 등 연구·개발과 생산 설비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정 대표는 “지난 5년간 마이크로니들 기술을 화장품 분야에 먼저 적용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냈다고 자부한다”며 “올해부터는 화장품은 물론 의료기기나 의약품 개발에도 더욱 속도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크로패스를 단순히 화장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새로운 영역의 제품이 나왔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새로운 효용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봐주시고 아껴주신다면 나중에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라파스의 최종 목표는 패치형 백신을 개발해 아프리카나 제3세계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1386호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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