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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마르크스주의자’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마르크스는 영원하다, 2500년 전 플라톤처럼”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자본론]은 자본주의 모순·문제 해결에 사용돼야... AI 시대·파생상품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칼 마르스크의 사상과 철학은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이문혁 비디오데스크
“2500년 전 세상을 떠난 플라톤처럼 칼 마르크스의 철학도 ‘영원성’을 가졌다.”

자본이 현시대에서 보여주는 성격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로 해석한 마르크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가 이상 신호를 보낼 때마다 150년 전 마르크스가 불려 나오는 이유다.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하는 한 자본과의 관계에서 질문하고 답을 찾는 마르크스적 사고방식은 계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학원에 다니던 1987년, 25세의 나이에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을 써 변혁논쟁의 중심에 섰던 이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자 중 하나다. 그는 “관계를 통한 사고방식과 문제설정은 강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라며 자신을 “2017년의 마르크시스트”라고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신촌의 인문지식·예술공동체 ‘수유너머 104’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이진경과 박태호, 어느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편한가.

“본명(박태호)보다는 가명이 더 잘 알려졌다. 이진경이 더 편하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 번역서 중 가장 처음 접한 것은.

“전석담 박사의 번역본을 처음 읽었다. 이후에 출판사 '이론과 실천'의 출간판과 작고한 김수행 교수님 번역본을 읽었다.”


▎사진·이문혁 비디오데스크
[자본]은 어떤 책인가.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에서 자본의 운동법칙과 경향에 대한 고전적인 틀을 제시했다. 지금은 21세기이지만 여전히 자본의 원리를 이해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질 인공지능(AI) 시대나 거대한 파생상품 시장을 이해할 기본 개념을 제공한다.”

냉전 체제경쟁에서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한 이유가 뭘까.

“러시아의 공산혁명은 스탈린 식으로 진행돼 마치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패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자본]은 비록 19세기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는 지난 2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발전했는데, 마르크스주의 역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나

“자본주의가 케인스주의 등을 거치며 변화했듯 마르크스주의 역시 과거의 것을 고수하지 않고 발전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조절학파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파생상품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자본] 3권에는 ‘허구적 자본’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파생상품처럼 허구적인 상품이라도 유통·교환되기 시작하면 자본의 기능을 하며 실물생산에 지배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주식시장의 등장 초기에 이런 위험성을 감지했는데, 현재는 전면으로 확대됐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기업마저도 증권화시켜 인수·합병(M&A)을 벌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파생상품을 제한하려고 했지만 월가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자본이 정치권력을 좌우하고 있는 상황인가.

“초국적 자본이 정치를 좌우하면 민주주의는 와해한다. 2008년 미국 정치권은 막대한 공적자금을 들여 AIG의 파산을 막았다. 국민 세금으로 월가를 먹여 살린 꼴이다. 자본의 부도는 금융의 부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융에 공급된 자금이 실물로 퍼지지 않고 금융 회사들의 빚잔치에만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허구적 자본이 고삐 풀린 악마가 된 셈이다. 케인스주의적으로 얘기하면 공적자금이 실물로 유입되면 기업이 살고 고용이 늘어나지만, 현재는 금융이라는 거대한 먹구름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일자리 문제가 화두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은 혁명적 요구며, 자본경쟁이 국제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다만 인건비를 낮추기 위한 비정규직 채용의 개념은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생산 유연화를 위해 고용을 유연화한다. 기업은 고용 안정의 부담을 더는 대가를 비정규직에게 지급해야 한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노조 차별도 문제 아닌가.

“노조 결성으로 임금과 노동강도가 개선되면서 노조는 자본가들과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됐다. 신입직원 선발에서 정규직 사원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문제는 자본가가 아니라 정규직 노조가 만들었다. 정규직 노조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음에도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를 위해 같이 싸우는 데에는 미온적이다. 노동자도 계급 분화가 된 셈이다. 이에 비해 비정규직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점점 무산자처럼 돼 가고 있다. 정규직 노조가 얻은 여러 혜택은 결국 누군가에게 전가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기본소득과 같은 기본적인 보호막을 둘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정작 약자층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

“재원이 부족하니 약자들의 것을 빼앗아 역분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려운 층에 대한 복지는 그대로 두고 기본 소득을 추가로 줘야 한다. 우선 실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에 일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전면 도입이 어렵다면 일본의 아동 수당이나 한국의 노인수당처럼 연령별로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밀턴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처럼 기본소득의 종류는 하나가 아니다.”

경제활동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나.

“지금은 의지가 있어도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일을 할 수 없다면 관점을 바꾸고, 생존조건부터 마련해줘야 한다. 또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게으름의 찬양]이란 책을 썼듯, 창작은 물적 바탕 토대 위에서 나온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창의성을 부른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마당에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한국의 자본주의도 끝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자본가보다 임대사업자의 영향력이 더욱 커 보이기도 한다.

“많은 어린이가 임대사업자를 꿈꾸고, 서울 아파트 한 채에 10 억원이 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마르크스는 지주보자본가의 편을 드는 것이 낫다고 했다. 기업 경영보다 땅 장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면 자본주의 발전에도 좋지 않다.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토지공개념’을 주장하기도 했다. 땅은 인간이 만든 상품이 아니며, 교통편의에 의한 높은 지대는 지하철 정거장 등 공공투자의 결과물이다. 임대 소득에 세율을 대폭 인상해 이 재원을 기본소득 재원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주장해 온 ‘코뮨주의’는 무엇인가.

“구성원이 함께 개개인을 먹이는 공동체를 말한다. 동네 아낙네들이 심청이를 동냥젖으로 키운 것도 코뮨주의의 한 모습이다.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시작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영국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빵나무를 베어버리고 공유지를 국유화했다. 다만 공동체 사회는 외부에 배타적이라 자칫 파시즘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에 낯선 사람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변화하는 열린 공동체를 현대적 의미의 코뮨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독일의 이론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비판한 적이 있다.

“레닌 시대에는 다른 생각을 적대시했다. 스탈린과 레온 트로츠키가 대립했듯 공산진영은 분열하고 싸우기 바빴다. 차이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차이의 철학에서 배운 점이다. 곧기만 한 견해는 독단으로 빠지기 쉽다. 굽은 것들끼리 만나면 새로운 길이 생긴다.”

본인도 곧기만 한 때가 있었지 않나.

“사회주의 붕괴는 나를 허무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남의 생각을 재단하고 싸우며 살았을 것이다. 논쟁을 해서 좋아지는 일은 별로 없으며, 생산적인 토론도 되지 않는다.”

과거 운동권 출신의 86세대 정치인들을 비판한 이유는

“학생운동의 경력을 자원 삼아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은 좋아하기 힘든 삶의 태도다. 과거를 경력증명서 삼아 미래에 밀고 들어가는 것이다. 연공과 경력·학벌주의를 없애야 하며 대학은 평준화해야 한다. 대학이 서열화돼 있으면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꿔봐야 소용이 없다. 출신 대학이나 경력을 팔아 사는 세상이 돼 안타깝다.”

이진경 교수 - 본명은 박태호.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초창기 PD 운동권 계열 인물로 분류된다. 대학시절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 [왜곡으로 빚어진 PD파의 오류와 무지가 연출한 NDR론의 복권] 등의 글이 이적표현물로 지목돼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철학·사회학·경제학 관련 연구를 했으며, 마르크스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저술 활동을 했다. 경험론과 관념론을 비판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 해설서 [노마디즘]과 불교의 개념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불교를 철학하다] 등을 썼다. 이밖에도 [철학과 굴뚝청소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자본을 넘어선 자본] 등 30여 편의 저서를 썼다.

1388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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