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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출간의 역사] “잡아가려면 잡아가라고 출판해 버리니…”(故 김수행 교수)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1947년 국내 첫 출간 … 금서(禁書)에도 강신준·김수행 등 6가지 [자본론] 판본 출간

▎고 김수행 교수가 생전 자본론을 강의하는 모습.
국내에서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 정식으로 5개 출판사에서 6가지 [자본론] 판본을 출간했다. 1970~80년대 운동권의 교본이면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자본론]이 국내 처음으로 정식 출간된 것은 1947년 6월이다. 당시 서울출판사는 최영철, 전석담, 허동 공동번역으로 [자본론]을 출간했다. [자본론]은 3권으로 이뤄져 있지만, 서울출판사 판본은 1947년 6월부터 1948년 10월까지 1, 2권만 번역·출간했다.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경상대 김공회 교수(경제학)는 “역자들이 월북하는 바람에 완역은 안됐다”며 “자본론에는 엥겔스가 넣은 주석이 꽤 있다. 서울출판사판은 일본어 저본에 있는 각 주와 옮긴이들이 쓴 해제도 있고, 레닌이 쓴 글은 물론 자본론에 관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고 받은 편지도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이후 국가보안법에 의해 금서가 됐다. 세로 쓰기로 출판된 이 책은 2015년 부산 보수동 헌책방 블로그에 4만원에 매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김태경 이론과 실천 대표, 국보법 위반으로 투옥


▎국내에서 출간된 <자본론> 판본들.
이후 1987년 출판사 이론과 실천은 [자본]을 출간한다. 독재체제라는 현실 때문에 번역자는 ‘김영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이 책의 1권은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번역한 것을 동아대 강신준 교수(경제학)의 감수와 보완을 거친 뒤 세상에 나왔다. 2권과 3권은 강신준 교수의 이름으로 출간되어 1990년 7월에 완간됐다. 강신준 교수는 2012년 4월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구이자 출판사 대표인 김태경(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남편)씨가 (운동권 학생들이 번역한) 원고 뭉치를 건네주기에 제가 보완하고 감수했죠. 김 대표는 한동안 도망다니는 신세가 됐는데, 결국 검사가 포기했어요. 기소를 하려면 이적표현물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검사가 아무리 읽어봐도 이적성을 찾을 수 없었던가 봐요.” 하지만 출판사 대표 김태경씨는 [자본] 출판을 이유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됐고 몇 년 뒤 이론과 실천 판본은 절판됐다. 김공회 교수는 “책임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독일어판을 최초로 완역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1989년에는 북한에서 번역한 [자본론]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소개됐다. 백의출판사는 1989년 8월 [자본론] 1권을 출간하고, 이듬해 5월에 3권을 완간한다. 북한 조선노동당이 번역하고 일본 조총련계 등이 출판한 책을 백의출판사가 일부만 수정·발행했다. 김공회 교수는 “최초의 완역이 어떤 것이냐 논란이 있지만, 백의출판사 판본은 국내 최초의 자본론 완역본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1989년 비봉출판사는 고(故) 김수행 당시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자본론]을 출간한다. 비봉출판사 판은 [자본론] I(상)·(하), II, III(상)·(하) 총 5권으로 이뤄졌다. 김 교수는 ‘나의 대학생활과 유학생활 및 교수생활’이란 글에서 “서울 상대 5년 후배인 비봉출판사의 박기봉 사장이 1984년 어느 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자본론]도 멀지 않아 금서 목록에서 빠질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번역을 준비하자고 제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본론의 영어판(펭귄판과 소련의 프레그레스판)은 내가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읽었기 때문에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한글로 번역하는 것에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근무를 마치고 오는 친구에게 일본판과 북한판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며 “사실상 그 당시에도 자본론이 금서 목록에서 해제되지 않았지만 서울대 교수가 ‘잡아가려면 잡아가라’고 번역·출판해버리니까 경찰과 검찰도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회상했다. 김공회 교수는 [자본론] 비봉출판사 판을 두고 “중역(重譯, 한번 번역한 것을 원본으로 삼아 다른 언어로 번역)했지만 번역자가 명시적으로 들어간 최초의 판본으로 책임성이 높고 자본론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2008년 강신준 교수는 도서출판 길을 통해 독일어 직역 완역본 [자본]을 출간한다. 2008년에 원서 1권에 해당하는 국역본 두 권이 나왔고, 2010년에 완간됐다. 출판사는 리뷰를 통해 “자본의 번역본이 그동안 2개뿐(이론과실천, 비봉출판사)이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김수행 교수의 판본도 영어본을 대본으로 한 중역본”이라는 점에서 독일어 직역 완역본 출판의 의의를 강조했다.

시간 흐를수록 벼려진 [자본]

[자본] 번역이 거듭되고 ‘실력’이 쌓이면서 번역이 계속 수정됐다. 해외 원전에 대한 문제의식도 벼려졌다. 2015년 비봉출판사는 [자본론] 전면 개역판을 내놓는다. 출판사 측은 “그동안 김수행 교수가 자신의 마지막 자본론 개역으로 계획하고 2013년부터 개정에 착수해 준비했다”며 “이전판본의 어색한 표현과 오역을 수정하고 여러 표현을 이해하기 쉽도록 고쳤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개역판 서문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쓴 [우리글 바로쓰기]를 읽으면서 크게 반성했다”며 “한자나 영어를 쓰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책을 읽을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이전의 번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보자고 결심한 것”이라고 전했다. 번역자인 김수행 교수는 2015년 여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각기 상·하로 나뉜 1·3권에 2권, 참고 문헌과 인명해설 등을 따로 모아놓은 부록까지 모두 6권으로, 전체 분량이 3000쪽이 넘는 이 책은 김 교수의 유작이 됐다.

국내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번역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원전도 둘로 나뉜다. 메가(MEGA, Marx-Engels-Gesamtausgabe)판과 메프(MEW, Marx-Engels-Werke)판이다. 현재 출간된 국내 판본은 모두 메프(MEW) 판을 저본으로 삼아 출간됐다. 강신준 교수는 지난 2012년 4월 국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제가 번역한 자본론은 이른바 메프(MEW)본으로 불리는 스탈린 시대 독일어본”이라며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정치적 목적으로 마르크스의 원고를 모아 출판했기 때문에 자의적 해석이 가미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독일 정부는 독일·네덜란드 등 전세계에 흩어진 마르크스의 수필 원고를 모아 검증을 거쳐 ‘마르크스 전집’을 간행중인데 이것이 메가(MEGA)판에 해당된다. 현재 동아대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장으로 있는 강신준 교수가 『자본』이 포함된 메가(MEGA)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번역 중이다.

김공회 교수는 메프(MEW)판에 대해 “1권을 놓고 볼 때 독일어 4판을 기준으로 과거 동독 편집자들이 작업한 것”이라며 “프랑스어판에 수록된 부분이 제외된 부분도 있다. 2차 대전 이후 정본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한 사람으로 보고 동독 당국자들이 자본론의 성격을 규정하고, 편집자 서문, 색인 등으로 주관을 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자본론의 특수성 때문에 1권과 2권을 따로 봐야한다”며 “2, 3권은 마르크스의 노트를 엥겔스가 편집·출판했고 영어판의 경우 당시 영국에 거주하던 엥겔스가 개입을 많이 했다. 독일어판마다 의미가 있고, 프랑스어판, 영어판도 고유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1388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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