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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로 보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정책관] “한국은 초갈등 사회, 원인은 기울어진 사회 구조”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사회보상체계·거버넌스 재구축이 ‘킹 핀’”... 사외이사제·주주소송제 개선 언급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연 아주대 전 총장이 새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그가 지난달 출간한 에세이 [있는 자리 흩트리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현직 관료들의 관심이 많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 책의 1.6%가 중앙정부기관이 밀집한 세종시에서 팔렸다. 올해 1~5월 세종시의 평균 서적 판매 비중(0.2%)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저서 내용을 통해 김 부총리의 경제철학과 정책운용 방향을 엿볼 수 있어서다.

김 부총리는 저서 전반에서 높은 계층이동 장벽과 신뢰 부족으로 인한 사회 고비용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킹 핀’이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의 개편이라고 봤다. 킹 핀은 볼링핀 중 1번 핀 뒤에 숨어있는 5번 핀을 말한다. 맨 앞의 1번 핀이 아니라 숨어 있는 5번 핀을 쳐야 10개의 핀을 모두 쓰러뜨릴 수 있는 점을 빗댄 표현이다. 현상 속에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뜻한다. 그는 저서에서 “우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모두 신속하게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킹 핀’을 찾아 쓰러뜨리기보다는 밖으로 나타난 현상과 증세의 치료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고 썼다.

관료·법조인 직역 이기주의 비판


▎김동연 부총리가 지난달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있는 자리 흩트리기].
그는 현재 우리 사회의 계층 간 사다리가 없어진 이유는 왜곡된 사회보장체계 때문이라고 봤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사회의 특정 영역으로만 보상이 쏠렸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과 ‘자본’이 비효율적이거나 공공의 이익과 거리가 먼 곳으로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는 “공공부문, 규제나 면허사업, 독과점 대기업의 성(城)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큰 보상이 간다”며 “반면 그런 성 밖에서는 피 튀기는 경쟁과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린다”고 비판했다. 또 이런 계층화가 고착되면 지속적인 경쟁 생태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과도한 입시 교육, 비정규직 문제,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등 현안도 이런 구조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 이론상 초과이윤이 발생하면 공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떨어져 다시 정상이윤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이 구조는 그렇지 않다. 공급을 늘리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일자리 확충이나 인재 육성 같은 노동의 수요·공급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노동의 초과이윤이 발생하는 곳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상이 적정한지, 격차가 합리적인지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 규제나 기득권이 만든 진입 장벽을 없애 특정 분야의 과도한 보상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고시제도와 정부 임용제도를 손 보고, 법조인 등 자격증 소지 직업의 직역(職域) 이기주의에 빠지기 쉬운 분야의 인력 공급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 열린 경제부총리 인사 청문회에서는 공직자를 ‘철밥통’이라고 비판한 부분이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정책과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공무원 숫자를 무조건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고 정말로 필요한 곳에 국민 수요에 맞게끔 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성과 보상체계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던 공공기관들이 도로 원상회복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김 부총리는 “성과에 상응하는 공정 보상체계로 가야 한다. (성과연봉제는) 제대로 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김 부총리가 저서에서 강조한 거버넌스는 이 보상체계를 누가, 어떤 절차와 규칙에 따라 결정할 것인지의 문제다. 그는 “우리 사회는 ‘다수 대중의 분노와 초갈등 사회’”라며 “이는 승자가 독식하는 경쟁판, 가진 자들만의 리그, 넘볼 수 없는 기득권 카르텔, 부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같은 기울어진 사회구조에 있다. 이같이 불평등의 정도가 점점 커져 불공정의 문제로까지 확산되면 많은 사람들이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사회갈등과 불만이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까지 거버넌스에서 빠져 있던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 농민, 학부모 등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적으로는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 도입과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사외이사제도, 제대로 된 주주소송제 마련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대해선 소신 발언

기존 산업의 구조조정 방향과 대책도 관심사다. 그는 책에서 “개혁을 하다 보면 중간에 움푹 파인 싱크홀을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으로 일시적으로 경기가 어려워지거나 실업자가 늘어나는 등 단기적인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개혁이 좌초되지 않으려면 싱크홀을 메우기 위한 대책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총수요를 늘리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늘리는 것이다. 특히 “고비용을 초래하는 교육, 보육, 주거 등 부문에서 질 높은 공공재를 제공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싱크홀을 메우는 후보”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인사 청문회 사전 서면답변을 통해 “분명한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철저한 자구노력과 엄정한 손실분담이라는 기본원칙을 지속 견지하면서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한편, 인사 청문회의 정책 검증 과정에서 김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대해 현장의 부담을 언급하며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을 균형 있게 보면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의 목소리도 들어가며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공공부문에서 모범을 보이겠지만 획일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공공기관 내 직접전환도 있지만, 자회사 설립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법인세 인상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종교인 과세는 종교계 의견을 다시 듣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나타냈다. 부동산 과열과 관련해 투기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상향 조정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1388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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