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멤버십

Focus

[사라지는 학교 앞 문방구] 대형마트·온라인에 밀려 매년 1000곳 사라져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학령인구 감소,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직격탄 맞아... 판매 용품 다양화로 자생력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어릴 적 추억이 담긴 학교 앞 문방구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들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장난감을 사던 곳. 오락기 앞에 쪼그려 앉아 게임을 하다가 엄마한테 붙잡혀 가던 그곳…. 누구에게나 학교 앞 문방구(문구용품 소매점)는 추억의 장소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지배하는 소중한 문화공간이었다. 하지만 추억의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과 대형마트에 밀리고 교육 환경이 변화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학교 앞 문방구 살리기에 나섰지만 이후에도 문을 닫는 문방구는 계속 늘고 있다. 학교 앞 문방구는 머지않아 가슴 속 추억으로만 남을지 모르겠다.

올해 처음으로 1만 곳 이하로 줄어


1990년대만 해도 학교 앞 문방구는 아이들의 인기 장소였다. 아이들은 등교시간에 준비물을 사기 위해, 하굣길에는 장난감을 사고 군것질을 하기 위해 문방구를 찾았다. 아이들이 참새였다면 문방구는 방앗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해 이제는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전국의 문방구는 9918곳으로 사상 처음으로 1만 곳 이하로 줄었다. 1990년대 3만여 곳에 달했던 문방구는 2007년 1만9617곳에서 2014년 1만2364곳으로 급감해왔다. 매년 1000여 곳씩 사라진 셈이다. 문방구의 불황은 대형마트와 전문 문구점,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과 함께 주력 상품을 빼앗기면서 시작됐다.

대표적인 게 장난감이다. 한때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좋은’ 장난감은 이제 대형마트나 온라인에서 주로 팔린다. 문방구에 있는 장난감은 먼지가 낀 값싼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연필·노트·스케치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온라인으로 거래된 사무·문구류의 총액은 3334억1600만원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문구류 거래가 해가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오프라인 문구류 시장의 거래액은 1600억9400만원으로 온라인 문구시장 거래액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온라인 시장의 사무·문구류 거래액이 오프라인 시장의 거래액을 넘어선 것은 이미 2007년부터다. 10년 전부터 오프라인 문구시장은 위협을 받고 있었던 셈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심지혜(39)씨는 “노트나 연필 등 아이들 학용품 대부분을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구매한다”며 “가격도 오프라인 매장보다 싼 데다 핸드폰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학교 앞 문방구가 쇠퇴하는 건 비단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교육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1980~90년대 최고의 놀이터는 문방구였지만 요즘 아이들은 문방구보다 인터넷·스마트폰이 더 익숙하다. 과거에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하교하면서 문방구에 들리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엄마 손에 이끌려 자가용을 타거나 학원 버스에 오른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30년째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69)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학원 버스가 와서 아이들을 데려가고 또 데려다 주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출산율과 학생 수가 줄고 있는 것도 문방구엔 악재가 되고 있다. 통계청 출생통계에 의하면 1970년 100만 명을 웃돌던 출생아 수가 지난해에는 40만6000명으로 줄었다. 출산율이 하락함과 동시에 문구류를 소비하는 학령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전체적인 문구류 시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의 ‘각급학교 개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의 유치원·초·중·고교 학생 수는 107만 7020명으로 2015년(112만4463명)보다 4만7443명 줄었다. 2014년에 비하면 9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2011년부터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가 시행되면서 학교 앞 문방구를 찾는 학생들의 발길은 더욱 뜸해졌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란 소득에 관계없이 전국 73만 명에 이르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학습 준비물 비용을 교육청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학습준비물 미비로 인한 학생 간 위화감 조성을 막고자 마련된 제도다. 일선 학교가 예산을 지원받아 9개 종 125개 품목의 학습 준비물을 최저가 입찰 제도를 통해 일괄 구매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학교 앞 문방구엔 직격탄이 됐다. 서울 종로구의 한 문방구 사장은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시행 이후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근방에 있던 문방구도 수입이 안 나오니 월세를 못 내고 있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원 현실화해야

2015년 동반성장위원회는 문구소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이 중소상인의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했을 때 대기업에 사업을 축소하거나 자제하라고 권고하는 제도다. 이 제도로 대형마트는 2015년 학용문구 매장규모 축소, 학용문구 묶음 단위로 판매, 신학기 학용문구 할인행사 자제 등을 권고 받았다. 하지만 학교 앞 문방구는 이후에도 사정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권고일 뿐이지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대형마트가 여전히 초등학생용 스케치북이나 색연필 등을 5∼10개 단위로 판매하고 있다. 일반용 스케치북과 연필, 사인펜 등도 낱개로 팔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 측은 “권고 내용을 지키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권고 자체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직접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문구 업계는 학교 준비물 예산의 일부를 상품권 형태로 돌려서 문방구와 상생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품권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전체 학교로 시행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어 결국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기존 사업 영역만을 지키기보다는 용품 다각화를 통해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통적인 문구류 판매만으로는 학령인구 감소 등 시장 변화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구류에 한정하지 않고 가방이나 슬리퍼 등 잡화로 판매 용품을 다양화해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문구유통협동조합 관계자는 “동네 문방구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이들이 추억을 쌓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뜻”이라며 “소규모 입찰은 학교 인근 문구점에 우선권을 주는 등 정부 차원에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mages/sph164x220.jpg
1388호 (2017.06.1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