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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위헌(違憲)한 경제’(2)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 생전 재산분할은 가능, 사후 상속은 불가능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헌재 “사실혼은 법적 구속받지 않으려는 개인의 선택” … ‘법적 동반자 관계’ 대안으로 논의해야

‘경제정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원초적 기준은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법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아니, 단순히 합법적인 경제는 정의로운 경제일까. 또는 법에 어긋난 경제활동은 모두 불공정한 행위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모든 법률의 근간이자 잣대가 되는 헌법으로 경제를 짚어봤다. 실제 헌법소원 판례를 통해 개인과 국가가 경제와 법을 의심하고 행동하며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위헌(違憲)’한 한국경제의 민낯을 살펴본다.


#. 2011년 3월, 임상진(가명)씨의 아내 이미경(가명)씨가 세상을 떠났다. 결혼식을 올린 지 4년.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여가 지나 재산을 정리하던 임 씨는 아내 소유의 3층짜리 건물의 소유권이 이씨의 모친인 김자옥(가명)씨에게 이전된 것을 알게 됐다. 아내와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던 건물이다. 임씨는 장모에게 가서 따졌다. “같이 살면서 저도 적지 않은 생활비를 보태지 않았습니까? 그 건물에서 가게도 같이 꾸려나갔고요. 그럼 저도 미경씨 재산을 나눠가지거나, 건물 지분 일부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장모는 죽은 딸의 재산을 사위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 법원의 판단도 장모의 뜻과 같았다. 임씨와 아내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임씨는 헌법재판소로 향했다.(헌법재판소 판례 재구성)

우리 헌법은 국가가 개인의 혼인 및 가족생활을 보장하도록 규정한다(헌법 제36조 1항). 국가 구성의 기초가 되는 가족을 사회적 통념과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유지시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혼인관계’라는 개념을 법률적으로 정해놓고 양육, 재산권 행사, 부양, 동거, 상속, 채무 연대책임 같은 각종 권리와 의무를 지니도록 했다. 그렇다면, 과연 ‘혼인관계’는 어떤 기준으로 증명할 것인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달리 생물학적 근거도 없고, 노사관계처럼 계약 관계도 아닌데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우리는 결혼한 사이’라고, 또는 반대로 ‘부부가 아니다’라고 우길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한 방법이 ‘법률혼주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혼인’과는 상관없이 서류상으로 신고된 관계만 법률적인, 즉 국가가 보장하는 ‘혼인’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혼인관계는 ‘법률에 따라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812조 1항)’고 돼 있다.

사실혼 배우자 주택 임차권, 유족연금 받을 수 있어


그러나 현실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부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실질적으로는 혼인생활을 영위하여 사회적으로 혼인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다. 원칙적으로 보면 이 관계는 앞서 말한 혼인관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1928년 처음 관청 신고가 혼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적 혼란이 빚어졌다. 특히 혼례만으로 혼인이 완성된 것으로 여긴 여성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혼인신고는 안 했지만 실질적으로 혼인관계가 성립함을 증명하면 효력을 인정하는 ‘사실혼’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후 수많은 분쟁을 거쳐 경제 영역의 제도적 보완도 이뤄졌다. 지금에 이르러 사실혼 배우자는 사실혼 관계 해소(사실상 이혼)을 할 경우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배우자 사망시 일정 범위 내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권을 승계할 수 있고, 근로기준법·산업재해보상법과 여러 연금법에 근거해 유족연금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서류상 관계의 권한은 옅어지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29일 헌재에서 결정 내린 한유종(가명)씨의 위헌소송도 그런 맥락이다. 한씨는 1975년 박영순(가명)씨와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86년 박씨는 집을 나갔고 연락이 끊겼다. 혼자 살던 한씨는 2004년 이혼소송을 냈고 이혼이 성립됐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2014년, 한씨는 갑자기 자신이 받던 노령연금이 감액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전처인 박씨가 국민연금공단에 2004년까지를 기준으로 이혼 배우자의 분할연금 지급을 신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한씨는 위헌소송을 냈다. “이혼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나 가출 등으로 사실상 혼인관계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분할연금을 주도록 한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한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국민연금법 제64조 1항이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적으로 혼인관계가 유지된 기간보다 실제로 ‘부부’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헌재 “상속권 인정하면 혼인 여부 두고 다툼 생겨”

임씨는 어떻게 됐을까.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 보호 영역이 넓어지긴 했지만, 상속은 아직 예외다. 민법 1003조 1항은 고인의 ‘배우자’가 상속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혼 배우자는 이 조항의 배우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혼 배우자를 언급하는 다른 조항도 없다.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점을 입증하면 공유재산분할 등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입증이 쉽지 않다. 사망한 배우자의 재산을 물려받는 게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임씨는 민법 1003조 1항을 대상으로 위헌소송을 냈다. “결혼 기간 중 같이 일군 재산도 반환받을 수 없으니 재산권 침해고, 법률혼 배우자와 차별하는 것으로 평등권 침해다. 배우자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혼인관계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반된다”. 헌재의 의견은 달랐다. “상속권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인정하면 혼인 사실 여부에 관한 다툼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또 사실혼은 혼인관계로 인한 법적 구속을 받지 않으려고 개인이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전에 재산분할이 가능함을 감안하면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

OECD 회원국 사실혼 증가 추세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이혼율 증가에 따른 혼인에 대한 부담감, 가족관념의 변화와 경제적 문제 때문에 혼인신고를 거부하는 사례도 많다. 통계청이 내놓은 ‘2016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8%로 2010년(40.5%)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자체 보고서를 통해 회원국의 사실혼 관계 출산율이 1980년 11%에서 2007년 33%로 3배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젊은 부부뿐 아니라 노인층에서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이성과 장기간 함께 사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이 경우 상속에 대한 문제는 더 커진다. 동거관계를 유지하던 노령 부부 중 한쪽이 사망할 경우 남은 한 명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헌재 결정문의 보충의견에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당시 조용호 재판관은 이런 요지의 의견을 남겼다.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서 생전 재산분할은 인정하면서 상속만 부정하는 것은 불균형적이다. 주택 임차권 승계를 보장하고 연금 관련법을 고친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유족의 사후 부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실혼 배우자와 법률혼 배우자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상속제도의 존재 의의에 비추어 보아도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상속을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입법을 개선해 적정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상속인인지 여부를 대외적으로 명확히 하기 위해서 재판을 통하여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 경우에 상속권을 취득하도록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종 재판관은 “배우자가 사망한 후에도 생존 사실혼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또 다른 보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아예 동거 관계에 대하여 법적인 보호 장치를 마련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혼인 성립 전 예비부부가 재산관계에 대해 자유롭게 약정할 수 있도록 한 민법 제829조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또 성인이 당사자 간 합의에 따른 ‘동반자 관계’를 만들고 이를 담당 관청에 신고하면 정부가 소득세 공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의료기록 열람권 부여 등 법률상 부부관계에 준하는 법률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많은 의문이 따르게 된다. 의무는 적고 권리는 ‘혼인관계’ 수준인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면 ‘혼인관계’가 되려 역차별 받는 것 아닐까. 가령 다주택 보유 규제를 피하기 위해 혼인 신고를 하지 않는 부부가 신혼부부 대출 혜택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혼인을 보장한다’고 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내놓을 수 있을까.

1389호 (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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