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멤버십

Focus

[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11) 유보금 몽상(夢想)] ‘유보’되지도 않고 ‘현금’도 아닌 사내유보금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com
새 정부 들어 사내유보금 논란 재심화... 선진국과 비교해도 대기업 현금 보유 많다고 볼 수 없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추경예산 관련 기자회견에서 “대기업이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사내유보금으로 잉여금을 쌓아놓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오랜 지론이다.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에 있지도 않으며 ‘제국’도 아닌 어떤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1694~1778)가 한 말이다. 신성로마제국은 962년 오토 1세가 황제로 즉위한 이후 1806년 프란츠 2세가 제위에서 물러난 때까지 이어진 독일제국의 정식 명칭이다. 이 명칭은 15세기부터 쓰였으나, 신성로마제국은 17세기 이후에는 유명무실해졌다. 그 형해화 실태를 볼테르는 이름을 들어 드러낸 것이다.

사내유보금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사내유보금은 ‘유보’된 대상도 아니요, ‘현금’도 아니다. 사내유보금은 공식 회계용어도 아니다. 사내유보금은 회계기준에도 없고 상법에도 나오지 않는다. 주식발행초과금이라고도 불리는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합한 금액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와 논란이 새 정부 들어 다시 불거졌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추경예산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이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사내유보금으로 잉여금을 쌓아놓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요금 인하 논란의 핵심에도 사내유보금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통신 기본료 폐지를 내걸었다. 통신망 설치가 끝난 상태이어서 기본료의 명분이 없고, 통신사의 영업이익과 사내유보금이 수조원에 이르기 때문에 유지·보수할 비용은 충분하다는 게 이 공약의 논리였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6월 1일 미래창조과학부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통신비용 절감을 위한 기본료 폐지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며 ‘더욱 치열한 고민’을 당부했다. 통신사들은 사내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라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소모적인 사내유보금 논의가 끝날 줄 모른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 사내유보금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알려졌다. 한국에서 이 이슈는 2013년 무렵 대두됐다. 시민단체, 정치인, 학자들은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대기업의 행태가 한국 경제의 큰 문제라며 목청을 높였다. 2014년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에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과도한 규모라며 대기업이 이를 투자와 배당과 고용의 원천으로 돌리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주장을 반영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소득환류세제는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예상한 대로 배당만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치지 않는 논란


사내유보금 논의와 그에 따른 제도 시행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내유보금 논의의 성과는 앞으로도 예상하기가 어렵다.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인식은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유보금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기본 개념부터 살펴보자.

기업은 자본금을 마련하고 타인자본(부채)을 조달해 사업을 벌인다. 이 금액을 총자본이라고 부른다. 총자본은 자본과 부채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 초기 상태에서 이익을 내거나(이익잉여금) 주식을 액면가액 이상으로 매각해 증자하면(자본잉여금) 자본이 증가하는데, 그 증가한 금액을 사내유보금이라고 부르게 됐다. 자본잉여금에 대해서는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사내유보금은 부채가 아니고 자본금도 아니라는 의미에 한정해서 이해해야 한다. 재무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개념일 뿐이지, 사내에 ‘현금’으로 ‘유보’된 금액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재무상태표를 통해 실제를 살펴보자. 이 재무상태표는 삼성전자가 공시한 자료를 재구성한 것으로, 자산을 왼쪽에 놓고 그 오른편에 부채와 자본을 표시했다. 이렇게 좌우로 자산과 부채·자본을 배치한 재무상태표의 방식은 ‘계정식’이라고 부른다.

삼성전자의 2017년 3월 말 현재 이익잉여금은 141조7710억 원이고 주식발행초과금은 4조4039억원이다. 두 항목을 합한 이른바 사내유보금은 146조1749억원이다. 재무상태표를 보면 유동자산 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조8746억원이다. 사내유보금과 현금이라고 할 수 있는 유동자산의 차이는 141조 원이 넘는다.

사내유보금이 현금이라면, 그 많은 사내유보금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삼성전자가 현금 이외의 형태로 숨겨놓았을까. 단기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단기금융상품은 21조2776억원인데 그게 그런 금액 중 일부일까. 물론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먼저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를 간단히 설명한다. 일정 기간 기업활동은 손익계산서에 표시되고 그 성과는 재무상태표로 넘어간다. 회사가 올린 순이익은 손익계산서에 올려지는 동시에 재무상태표의 이익잉여금 증가로 반영된다. 이익잉여금은 회사가 설립된 이래 기록한 순이익을 더하고 순손실을 뺀 누적 금액이다. 기업활동은 매듭이 없이 진행된다. 현금흐름은 끊임없이 원자재 대금과 임금으로 치러지고,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을 매입하는 데 배분된다. 일부는 투자자산으로 보유된다. 그래서 결산에서 순이익으로 계산돼 이익잉여금과 사내유보금에 더해지는 금액은 일부만 현금이고, 나머지는 재고자산, 투자자산, 유형자산, 무형자산 등의 형태로 분산돼 존재한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보유한 ‘현금’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이를 삼성전자의 재무상태표에서 살펴보면 현금은 얼마 되지 않고, 투자자산과 유형자산이 큰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사내유보금과 현금은 거의 무관한 것이다. 대기업들이 투자하는 대신 막대한 현금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놓고 있다는 비판은 삼성전자의 현실에서 크게 벗어난 헛발질이다. 다른 회사에서도 사내유보금과 현금의 괴리는 크게 벌어진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들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4월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간단한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만약 어떤 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갑자기 2조원 증가했다고 하자. 이는 사내유보금이 증가한 결과일까. 답은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이다. 그 회사가 회사채 발행을 통해 2조원을 조달해 그 자금이 유입된 결과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설비에 투자하면 사내유보금이 줄어들까. ‘변화가 없다’는 게 정답이다. 투자를 늘려도 사내유보금은 변하지 않는다. 이를 사례로 살펴보자. 순이익이 100억원 증가한 회사가 100억원을 들여 장비를 들여왔다고 하자. 재무상태표의 이익잉여금이 100억원 늘고 사내 유보금도 그만큼 증가한다. 설비 취득은 재무상태표의 왼쪽에 유형자산에 반영된다. 이처럼 투자를 하면 사내유보금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투자도 늘고 사내유보금도 증가할 수 있다. 사내유보금은 투자되지 않고 ‘유보’된 현금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사내유보금이 많은 상태를 해당 회사가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일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

사내유보금 개념의 이해를 위해 극단적인 사례도 생각해보자. 회사가 순이익을 전액 주주에게 배당하면 이익잉여금이 늘지 않고 그대로이게 되고 사내유보금에도 변화가 없다. 또 회사가 임금을 많이 지급해 순이익이 전혀 나지 않게 맞췄다고 하자. 이 경우 순이익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이익잉여금과 사내유보금이 증감하지 않는다. 앞에서 미뤄둔, 자본잉여금에 대한 설명을 여기서 한다. 회사가 자본을 늘리기 위해 액면가 5000원인 신주를 1만5000원에 1만 주 발행한다고 하자. 재무상태표에서 자본이 1억5000만원 증가한다. 이 금액 1억5000만원은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으로 나뉜다. 1만 주의 액면가에 해당하는 금액인 5000만원은 자본금으로, 액면가를 초과한 금액인 1억원은 자본잉여금으로 계상된다.

한편 사내유보금은 이익잉여금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자본잉여금은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김윤경 부연구위원은 “자본잉여금은 기업의 영업활동과 관계 없이 자본거래를 통해 발생하며 특정한 사유가 없으면 상법상 배당의 대상이 되지 않는 데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서 납입자본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사내유보금이 현금이 아니라는 설명은 이해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 대기업은 현금이 많고 자산 중 현금의 비중이 큰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경연의 김 부연구위원은 “500대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미국이 1조3106억 달러이고 일본은 6606억 달러이며 중국은 5353억 달러인 데 우리나라는 2472억 달러 규모”라고 비교했다. 금액이 아닌 비중은 어떨까. 김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낸 ‘사내유보금의 의미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익잉여금과 비교한 현금의 비율은 한국이 41%로 미국의 32%보다 높지만, 일본의 44%에 비해서는 낮으며 중국은 이 비율이 68%에 이른다”고 밝혔다. 김 부연구위원은 총자산과 비교한 현금의 비중(중앙값)에서도 “중국 16%, 일본 15%, 한국 12%, 미국 7% 순으로 나타나 한국 기업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자산에 비해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업이익환류세제 효과 미미해


▎국내에서 사내유보금 논란은 2013년 무렵 대두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14년 9월 국가재정연구포럼 주최로 열린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세법개정안에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의 하나로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마련했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기업이 한 해 이익의 80% 이상을 배당이나 투자, 임금 인상에 지출하지 않을 경우 80% 기준에 미달하는 금액의 10%를 법인세로 추가 징수하는 제도다. 이 세제는 2014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대상은 자기자본 500억원 이상이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소속 기업이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임금을 더 주기보다는 주로 배당을 늘리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됐다. 또 정부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는 대신, 즉 배당과 투자와 임금의 80% 기준을 충족하지 않고 세금을 내기로 한 기업이 3분의 1이나 됐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6월 낸 ‘2017 조세의 이해와 쟁점, 법인세 편’ 자료에 따르면 기업소득환류세제의 대상인 3029개 업체 중 33%인 1007개 업체가 과세 대상이 됐다. 이들 업체에 매겨진 기업소득환류세액은 5755억원으로 평균 5억7000만원이었다.

이에 대응해 정부와 국회는 2017년부터는 배당은 50%만 인정하기로 제도를 개정했다. 또 임금증가액은 가중치를 150%로 높였다. 그러나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이렇게 땜질을 하더라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기업 경영은 현실이다. 잘나가는 때일수록 반드시 경영난에 대비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대비는 현금을 비축해두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따르기 위해 현금 비중을 낮추는 것은 회사 생명을 담보로 거는 위험한 결정이다.

한편 대기업이 배당을 늘리고 특히 임금을 크게 올림으로써 기업소득환류세제에 대응할 경우 대기업과 다른 부문의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결과가 빚어진다. 제도가 취지와 정반대로 소득 불평등을 심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아이디어에서는 적절한 해법이 나올 수 없다. ‘우문현답’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사내유보금 논의는 그런 반면교사의 사례를 하나 더 제공한다.

[박스기사] 사내유보금 용어 바꾸면 오해 사라질까? - 상업과 회계 기초 교육이 더 중요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오해와 논란은 용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렇다면 오해를 씻어내 논란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용어를 바꾸는 게 아닐까. 사내유보금이 ‘유보’된 것도 아니요, ‘현금’도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면 어떨까. 새 용어는 사내 유보금의 반대말로 지으면 어떨까.

한국회계기준원은 지난해 6월부터 한국회계학회 소속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사내유보금 대신 쓸 용어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를 통해 ‘세후재투자자본’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사내유보금은 세금을 이미 납부한 금액이며 여러 형태로 재투자됐음을 나타내는 데 이 용어가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한국회계학회와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7월 ‘사내유보금의 올바른 의미와 새로운 의미 모색’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권성수 한국회계기준원 상임위원은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는 회계기준상의 용어가 아니며 미국이나 일본의 회계기준에서도 사용되지 않는다”며 “사내유보금은 금고 속에 쌓여 있는 현금이며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아 사내유보금이 증가했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선은 사내유보금이라는 모호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용어가 쓰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쓰이기 시작해 자리를 잡은 현 상태에서는 정확한 용어로 고치는 일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사내유보금을 세후재투자자본이라고 부르면 논란이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 사내유보금은 사라져도 공식 회계용어인 ‘이익잉여금’은 남기 때문이다. 사내유보금 대신 이익잉여금이 타깃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익잉여금이라는 용어도 바꿀 것인가?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새로 사회에 진출할 세대에게 상업과 회계의 기초와 원리만이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대학입시에는 반영하지 않아도 좋다). 이 교육은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가 구성원으로서 경제 이슈를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images/sph164x220.jpg
1390호 (2017.07.0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