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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의 경제에 비친 세상 읽기 | 압박 거세지는 새 정부의 대기업 규제] ‘솜방망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력한 ‘철퇴’로 변하나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공정거래법 개정되면 사익편취 지분율 기준 달라져... 한화·한진그룹 등 선제 대응 나서

▎재계 입장에서는 ‘저승사자’로 여겨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6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기자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재벌기업에게 ‘솜방망이’나 다름 없었다. 흔히 일감 몰아주기라고 표현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다. 편취는 남을 속여 재물 등을 빼앗는 행위다. 총수 일가가 일정 지분 이상 지배하는 기업에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계열사들이 거래해 주거나 사업 기회를 제공하면 사익 편취가 된다. 합리적 검토나 비교 없이 상당한 거래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지 말라는 이야기다.

공정거래법의 사익편취 금지 규정은 2015년 초 본격 시행됐다. 그러나 이후 법 집행 사례는 별로 없다. 과징금 등 일부 제재를 받은 기업들이 공정위와 소송에서 이기는 일도 발생했다. 마음만 먹으면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유지한 채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길도 적지 않았다. 기업들도 겉으로는 ‘무서워라’ 했다. 그렇지만 무서웠던 것은 법이 아니다. 기업이나 총수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 추락이었다.

지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피할 방법 적지 않아


이 솜방망이가 앞으로는 나무방망이 정도는 될 지도 모르겠다. 국회 계류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 여부에 따라 어쩌면 ‘철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필자는 한 기업 임원으로부터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회원용으로 만들었다는 자료를 한 부 받았다. 제목은 ‘경영권 승계제도의 현황과 활용 방안’이었다. 이 임원은 “우리나라 상속·증여세 부담이 세계적으로도 아주 높은 편”이라며 “기업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영승계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법에서 정한대로 사전증여할 경우 경영권 승계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상속·증여세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기업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경영승계를 추진할까. ▶공익법인 ▶일감 몰아주기 ▶지주회사 ▶특수주식 활용이다. 앞의 3가지는 기업들이 지금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차등의결권주(株)나 황금주 같은 특수주는 법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아 활용 불가능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는 ‘대표적이고 전통적이며 효율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중견 상장기업 대주주 갑(甲)이 장남 소유 회사를 만들고, 주력 회사를 시켜 일감을 몰아줘 기업 가치를 올리는 식이다. 장남은 가치가 올라간 이 회사 주식을 팔아 증여세 자금을 마련하거나 주력 회사 주식으로 교환해 경영권 승계나 강화에 도움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일감 몰아주기가 부의 대물림만을 주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데 규제 회피를 위해 불필요한 합병, 분할, 사업부 매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기본 시각은 부(富)의 부당한 이전 수단이자 편법 경영 수단이라는 것이다. 새 검객(김상조 위원장)은 언제든 칼을 뽑을 태세고, 날이 바짝 선 새 칼(개정안)이 대기 중이다.

5월 22일 한화그룹이 시스템 통합 및 네트워크 구축업체 한화S&C를 분할한다고 밝혔다. IT서비스 사업을 물적분할해 회사를 신설(가칭 한화S&C서비스)한다는 내용이다. IT서비스 사업 부문에 속하는 자산과 부채를 신설 회사 한화S&C서비스로 이전하고, 한화S&C서비스가 발행하는 신주를 모두 한화S&C에 배정(100% 자회사화)하는 분할방법이 ‘물적분할’이다. 한화S&C는 분할 이후 한화S&C서비스 지분 100% 가운데 49%를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왜 갑자기 분할하며, 신설 회사 지분 일부를 매각할까.

김상조 등장에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대기

한화S&C는 2001년 초 한화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한화와 김승연 회장이 출자해 만들었다. 계열사 일감이 기본적으로 깔리기 때문에 회사는 처음부터 이익을 냈다. 2003년에는 매출 1068억원, 영업이익 10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회사는 2004년 매출이 증가(1268억원)했음에도 오히려 영업손실(37억원)을 낸다. 이어 회사 지분은 모두 김승연 회장 아들 3형제에게 넘어간다. 일각에서는 3형제에게 지분이 증여되기 직전인 2004년에 의도된 적자를 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주식 가치를 낮춰 인수 대금과 증여세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는 이야기다. 비상장 주식은 대개 통용되는 시가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주식 가치를 매겨 거래하고 세금을 낸다. 상속·증여법에서는 회사 순자산 가치와 순손익 가치를 가중평균해 주식 가치를 평가한다. 최근 연도 가중치가 크기 때문에, 최근에 손실이 났다면 증여 주식의 가치는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화가 당시 이런 이유로 일부러 적자를 냈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아들 3형제가 지분 100%를 확보한 뒤 회사는 곧바로 흑자전환하며 탄탄한 실적을 이어갔다. 특히 한화그룹의 에너지사업 핵심 주력사인 한화에너지 지분을 100% 확보하는 등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이런 한화S&C의 전격 분할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한화 측도 그렇게 설명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관련 조항에 따르면 총수 일가가 지분 30% 이상 보유한 상장사(비상장사는 지분 20% 이상)가 계열사와 불공정 거래를 할 경우 과징금 부과 또는 총수 일가에 대한 사법처리(검찰고발)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이 때 총수 일가의 지분은 ‘직접’ 지분을 말한다. IT서비스 사업을 물적분할하면 한화S&C서비스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직접 지분은 없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회사를 인적 분할하든, 물적분할하든 분할 그 자체만으로는 주주의 지배력에는 변함이 없다. 물적분할을 하면 아들 3형제가 100% 지배하는 한화S&C가 다시 한화S&C서비스를 100%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간접 지분을 이용해 그 전과 다름없는 지배력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한화그룹은 한화S&C서비스 지분 가운데 49%를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배력 변화 없이 물적분할만으로 규제를 피해갔다가는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추정된다.

여당과 야당이 각각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사익편취 지분율 기준을 산출할 때 간접 지분까지 다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분할과 지분 일부 매각 후에도 한화S&C서비스에 대한 총수 일가(아들 3형제)의 간접 지분율은 규제 대상이 된다. 단순 계산으로 ‘100%(총수 일가의 한화S&C 지배력)×51%(한화S&C의 한화S&C서비스 지배력)=51%’가 되기 때문이다.

간접 지분 포함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규제 대상 지분율 요건(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자체가 높은 데다 간접 지분을 포함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미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부당 이익에 세금을 매길 때 간접 지분을 포함하는데, 공정거래법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고도 주장한다. 기업 분할로 규제를 쉽게 회피한 사례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과거 삼성에버랜드가 급식사업을 물적분할해 삼성웰스토리를 설립한 사례를 말한다. 이에 대해 반대 측은 상속·증여법과 공정거래법은 목적이 다르고, 간접 지분을 포함하는 경우 지분율 산정이 매우 복잡한데다 지분율이 수시로 변동하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선다.

찬반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화S&C가 분할만으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찬성 측 명분과 논리만 강화해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한화 측이 내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강화 쪽으로 무게중심이 확 쏠릴 수 있는 ‘트리거(방아쇠)’를 만들 필요가 없다. 한화 측은 “한화S&C 분할과 지분매각 이후에도 적절한 추가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기업들이 주목하는 개정법안 내용 중에는 지분율 기준을 상장사나 비상장사 모두 10% 또는 20%로 낮추는 규정이 들어 있다. 지분율 조건이 20%로 낮아지면 당장 현대차그룹의 물류회사 현대글로비스와 광고대행사 이노션 같은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두 회사 모두 총수 일가가 전액 출자해 설립했다. 출발은 개인회사나 다름없었다는 말이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의 물류와 광고 물량을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사익편취 지분율 기준 산출할 때 간접 지분까지 포함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각각 40.2%와 59.8% 보유했다. 시간이 흐르며 지분 일부 매각과 상장 등을 거쳐 총수 일가 지분이 낮아졌다. 박근혜 정부 당시 공정거래법 시행령에서 일감 몰아주기 지분율 조건을 상장회사 30%로 정하자, 총수 일가는 지분 일부를 매각해 29.9%로 떨어뜨렸다. 현대차그룹이 물류사업을 그룹 내에서 수행하기로 판단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물류 물량이 많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계열사들이 공동출자해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왜 총수 일가의 사실상 개인회사로 출범시켰을까.

총수 일가 지분율이 29.9%인 이노션도 성장 배경과 일가 지분 감소 상황이 현대글로비스와 거의 비슷하다. 5월 24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4대 그룹(삼성·LG·SK·현대차) 최고경영자간 간담회 때 재미있는 보도가 나왔다. 정진행 현대차 사장이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안심하고 돌아간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김 위원장에게 일감몰아주기 이슈에 대한 현대차그룹 입장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현대글로비스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며 “우리가 하지 않으면 외국계 기업이 하게 된다는 점 등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간담회 후 기자들을 만나 “김 위원장이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양적 규제보다는 질적으로 산업 특수성을 감안하겠다는 정책방향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제 안심하고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익편취에 대한 현대차 내부의 민감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외국계에 대항하는 ‘우리’가 왜 ‘총수 일가’가 되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많은 기업이 오랫동안 일감 몰아주기 비난을 받아왔고, 2013년 규제 법제화와 2015년 본격 시행 후에도 상당수 기업들이 제재를 피할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기업의 효율성·보안성·긴급성 등과 관련한 거래는 예외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IT서비스의 경우 보안성을, 물류회사 등은 효율성이나 긴급성을 내세웠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도 예외를 인정한다. 그러나 조건을 더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예를 들어 효율성과 관련해서는 같은 그룹사 외의 다른 기업과 거래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비용 절감, 판매량 증가, 품질 개선, 기술 개발 등 명백하게 효율성이 증가하는 거래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 보안성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업과 거래하면 영업활동에 필요한 기술 또는 정보가 유출돼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적절한 구제 수단이 없는 경우에만 예외 인정이 가능하다. 현재 규정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면 개정 규정은 한층 촘촘해졌다.

CJ·한국타이어그룹 등도 고심 중

한진그룹은 문제가 된 총수 일가 지분을 최근 아예 계열사에 넘긴 케이스다. 한진그룹 계열 IT서비스 회사인 유니컨버스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한 회사였다.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계열사들이 부당하게 유니컨버스에 일감을 몰아줘 총수 일가가 부당 이익을 얻은 혐의로 조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진그룹은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을 대한항공에 무상 증여하는 방식으로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어설프게 지분율을 낮추는 방법보다는 아예 완전 정리를 선택했다. 아울러 조 사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 외 모든 계열사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대한항공 외 5개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조 사장이 핵심 사업에 집중해 경영 효율화를 꾀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한화그룹·한진그룹에 이어 몇몇 기업들이 여러 방법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CJ그룹의 IT서비스 계열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는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는 이재현 회장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과장 등 총수 일가 지분이 44%에 이른다. 롯데정보통신(롯데 총수 일가 지분 24.7%)도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IT서비스 회사 엠프론티어와 타이어금형회사 엠케이테크놀로지 때문이다. 한국타이어그룹 계열사들이 이 두 회사와 지난해 거래한 규모는 1500억원에 이른다. 외부에서는 이 두 회사가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지주회사) 사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형제의 승계용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엠프론티어는 두 형제가 지분 24%씩을 보유하는 등 총수 일가 지분이 60%가 넘는다. 지난해 매출은 1094억원, 영업이익은 40억원인데, 매출의 90% 정도가 계열사에서 나왔다. 엠케이테크놀로지는 조현식 사장이 20.0%, 조현범 사장이 29.9%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매출 573억원, 영업이익 177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 역시 매출의 80%가량을 그룹 계열사와 거래에서 올렸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나 한국타이어 등과 합병을 단행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부친인 조양래 회장의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세금을 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두 회사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밖에도 영풍그룹·현대산업개발·넥센그룹·삼표그룹 등의 회사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관련해 언론에 오르내린다.

한편 5월에 또 하나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에게 분할이나 계열분리 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해 김상조 위원장은 청문회에서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여기에도 찬반 양론이 있을 것이다. 발의됐다고 해서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이제 기업분할이나 계열 분리까지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

1391호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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