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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원전의 경제학] 매몰비용·전기요금·신재생 에너지 논란 가열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원전 공사 중단되면 줄 소송 우려 … 태양광·풍력 발전 안정성 떨어질 우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4호기(왼쪽) 옆에 5·6호기 건설 현장이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지난 6월 28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3·4호기 부지 옆 5·6호기 건설 현장. 하루 전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원전 폐쇄 관련 공론화 작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지만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건설 부지에는 10여 대의 타워크레인이 쉴 새 없이 자재를 옮겼고 레미콘 차량과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다녔다. 지난해 6월 건설 허가가 난 신고리 5·6호기의 현재 시공률은 약 10%다. 설계·구매·시공을 포함한 사업종합공정률은 5월 말 기준 28.8%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정부에서 아직 공사 중단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의 사업비는 총 8조6000억원이다. 이 중 4조9000억원을 업체와 계약했으며, 이미 1조6000억원이 집행됐다. 만약 정부의 (원전 폐쇄) 공론화 작업 이후 사업 중단이 결정되면 이미 집행된 1조6000억원을 허공에 날릴 뿐만 아니라 1조원의 계약 해지 비용까지 들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과 업계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표 참조].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하기로 발표하기 앞서 한국수력원자력은 정부 방침이 나올 때까지 신한울 3·4호기 시공 설계를 보류했다. 부지 매입 단계에 있는 천지 1·2호기 건설 준비 작업도 사실상 중단됐다. 가동 중인 원전 중에서는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34년 된 월성 1호기(679MW)는 조만간 폐쇄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9일 고리 1호기 폐로 행사에서 “현재 수명을 연장해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건설 중 또는 건설 예정이었다가 대기 상태에 놓인 원전의 설비용량은 현재 가동 중인 전체 원전 용량의 4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청와대는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공사가 일시 중단된 신고리 5·6호기의 설비용량은 1400MW씩 모두 2800MW다. 건설 준비 단계에 있는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의 설비용량은 한기당 각 1400MW와 1500MW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의 총 설비용량(2만2529MW) 대비 신규 원전 6기의 설비용량(8600MW)은 38.2%에 달한다. 문 대통령은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중장기 전력 부족과 전기요금 인상: 탈(脫) 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전기요금과 전력수급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신고리 5·6호기를 다른 발전 수단으로 대체할 경우 최대 10.8%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신재생 에너지 구성이 변동성이 큰 태양광과 풍력으로만 이뤄진다면 2016년 예비력이 542만kW로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예비력이 500만kW 미만이면 전력수급 비상경보가 발령된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전력난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정지할 것은 정지하고 지을 것은 더 짓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반박했다. 2015년 7월 확정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신고리 5호기는 2021년, 신고리 6호기는 2022년부터 전기를 공급한다. 정부는 원전 2기가 없어도 현재 가동 중인 24기를 정상 가동하고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와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늘리면 수급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원전 2기 중단에 따른 영향은 중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하게 계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시절 전력 수급 전망을 보수적으로 잡으면서 발전소를 짓지 않았다가 2011년 9월 15일 공급 부족으로 블랙아웃(대정전) 사태를 겪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LNG발전소를 급하게 지었지만 오히려 전기가 남아도는 부작용을 겪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중단했던 일본에서는 어땠을까. 2014년까지 가정용 전기요금이 25% 올랐다. 일본 정부는 2011년 ‘원전 제로(0)’를 선언하고, 원전 54기 가동을 모두 중지했다. 2010년 전체 발전량의 26%를 차지하던 원자력 비중은 2015년 0.3%로 급감했다. 이 빈 자리를 석탄과 가스 발전으로 채웠다. 이들의 발전량 비중은 기존 54%에서 72.7%로 높아졌다. 그러나 연료 수입이 늘면서 2011년 일본의 무역수지는 약 26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연료 비용이 늘어나자 발전 회사들은 전기요금을 올렸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0년 1킬로와트시(kWh)당 208원에서 지난해 250.8원으로 20.6% 올랐다. 2015년 일부 원전을 재가동하면서 전기요금이 조금 내렸다. 2014년 1kWh당 260원에서 246.7원으로 떨어졌다.

오락가락 원전 중단 손실: 정부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잠정 중단키로 하면서 시공업체에 대한 보상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진행한 지난 1년간 부지 매입부터 기자재 마련까지 상당한 절차가 진행돼 이미 조 단위 공사비가 투입된 데다, 보상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금액에 차이가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종합 공정률은 5월 말 기준 28.8%이며 총 1조6000억원이 투입됐다.

토목공사가 중심인 주설비공사는 삼성물산·두산중공업·한화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행하고 있다. 컨소시엄 지분율은 삼성물산 51%(약 6000억원), 두산중공업 39%(약 4600억원), 한화건설 10%(약 1200억원)이다. 원전 건설 등 실제 시공은 약 10% 정도 진행됐다. 5호기는 터빈 건물의 구조물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고, 6호기는 땅 파기를 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두산중공업은 2014년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로·증기발생기·터빈 등 신고리 5·6호기 주기기에 대한 공급 계약을 체결, 이미 원자로 용기 등 주요 기자재를 만드는 작업을 상당 부분 진행했다. 두산중공업의 주기기에 대한 공급 계약 규모는 2조 3000억원이다. 현재 공정률은 50%를 넘었으며 두산중공업은 1조1700억원을 받았다.

업체들은 공사 중단에 따른 매출 감소는 물론이고 이미 투입된 비용 탓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업체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상 범위를 두고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한수원이 업계와 계약한 금액은 총 4조9000억원이며, 이 중 지난 5월 말까지 집행된 공사비는 1조6000억원이다. 정부는 이미 쓴 1조6000억원에 보상비 1조원을 합해 총 손실(매몰비용)이 2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업계의 계산은 다르다. 계약금과 이자비용, 소송비용까지 모두 고려하면 매몰비용이 정부 예상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특히 국내에서 원전 공사가 중단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컨소시엄 업체 관계자는 “공사 중단이 확정되면 정산 과정을 거칠 텐데 공사에 투입한 비용만큼 발주처가 지급해줄지에 따라 다툼이 생길 소지가 있다”며 “발주처와 시공업체 사이에 생각하는 금액의 차이가 크면 ‘줄 소송’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협력사들도 1차 계약을 맺은 컨소시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컨소시엄 회사들은 결국 협력업체들이 요구한 피해액을 포함해 정부나 한수원을 상대로 보상을 요구할 확률이 높다.


신재생 에너지 대폭 늘릴 수 있을: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리기 위해 해마다 신재생 설비를 3.7GW(기가와트)씩 보급할 계획이다. 신재생 에너지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차지하는 비중도 8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문제는 개발할 수 있는 입지가 부족하고 규제도 많다는 것이다. 자칫 전력 공기업 중심으로 설비를 늘리는 데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더구나 신재생 에너지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커 전력 예비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6월 29일 주관한 ‘신재생3020 이행계획 수립을 위한 민·관 합동 회의’에 따르면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53GW 규모의 신규 설비를 보급해야 한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의 총 설비용량이 22.5GW인 점을 고려하면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현재 원전 설비 용량의 두 배 넘는 수준으로 늘려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딴판이다. 현재 국내 신재생 에너지 설비가 증가하는 속도는 연평균 1.7GW에 그치고 있다. 좁은 국토와 농지 보전 정책 탓에 개발할 수 있는 입지가 점차 줄고 정부와 지자체의 관련 규제도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건축물 옥상에만 태양광시설을 짓도록 하고 있다. 논 위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면 벼농사를 지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도 생산할 수 있지만 농업진흥구역 내 농지에는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수 없다.

태양광과 풍력 비중을 80%로 끌어 올리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햇빛이 약하거나 바람이 불지 않은 경우에는 전력 생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늘리기 위해 주민들이 직간접적으로 신재생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세제 감면 혜택 등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원전 수주 어떻게 하나: 원전 관련 산업계는 정부 방침에 대놓고 반발하지도 못한 채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특히 해외 수주 문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제 원전 수주전에서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춤했던 세계 원전 발주는 최근 영국·인도 등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인도는 2030년까지 1500억 달러를 투입해 신규 원전 30기를, 영국도 2030년까지 16기를 건설할 방침이다[표 참조]. 원전 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이 커지고 있으니 해외로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지 쉽지만 국내 실적이 없으면 해외에서 수주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원전을 나라 경제의 미래 먹거리로 인식한다면 무작정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391호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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