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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보다 뜨거운 폭염의 경제학] 33℃가 가른 유통업계 희비곡선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무더위 길어지면서 ‘여름 한때 장사’에서 ‘반년 장사’로 상품 개발·마케팅 전략 달라져

▎폭염이 지속되면서 에어컨 판매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 이마트 목동점을 찾은 시민들이 에어컨을 고르고 있다.
#1. 맞벌이 부부인 홍모씨는 여름이면 가족과 외식을 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다. 해가 지고도 30℃ 이상의 고온이 계속되면서 집 안에서 땀 흘리며 음식 장만하는 일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선택한 곳은 아파트단지 앞 대형마트다. 4층 식당가에서 식사를 한 후 매장을 둘러보며 저녁시간을 시원하게 보낸다. 주말이면 홍씨와 같은 가족 단위 손님들로 대형마트는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한낮의 열기가 그대로 남은 맞은편 재래시장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2.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에어컨·선풍기 등 여름철 가전제품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6월 1~18일 에어컨 매출은 지난해 대비 30% 증가했고, 전자랜드에서도 같은 기간 동안 10% 늘었다. 특히 올해도 폭염이 예상되면서 구매 시점이 빨라졌다. 하이마트의 올 1~5월 에어컨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0% 증가했다. 이마트에선 지난 5월 에어컨이 약 290억원 어치 팔리면서 전통적인 인기 상품인 라면(약 190억원) 등을 큰 격차로 제쳤다. 라면이 1위 자리를 놓친 것은 이마트 개점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쇼핑몰·에어컨·얼음 판매 늘어


▎대형마트·커피전문점, 워터파크와 호텔 수영장, 극장가는 폭염 특수를 보는 대표적인 곳이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이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한반도에 불어 닥친 폭염이 산업계 표정을 바꾸고 있다. 대형마트·쇼핑몰 등은 매출이 고공 행진하며 웃는데 반해 재래시장과 고깃집 등은 울상이다. 특히 올해는 한여름 무더위가 앞당겨지면서 ‘폭염 특수’가 일찌감치 나타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지난 5월 3일 처음으로 섭씨 30도를 넘어섰다. 지난해 기록(5월 19일)보다 약 2주 빠르다. 기상청에 따르면 5~6월 전국에 폭염 특보(33℃ 이상)가 38차례 발령돼 지난해 같은 기간 7차례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올해 6월 기온이 평년수준(21.2℃)보다 높고, 7~8월에도 비슷하거나 높을 것(평년 7월 24.5℃, 8월 25.1℃)이라는 예상이다. 7월 들어 12일까지 이미 7차례의 폭염 특보가 발령됐다.

폭염 특수의 대표적인 제품은 냉방가전이다. 최근 폭염주의보가 이어지면서 냉방가전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 인기 모델의 경우 재고 부족으로 설치까지 일주일가량 걸린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특히 에어컨은 올 초부터 판매가 급증했다. 지난해 여름 주문량이 밀리면서 에어컨 구매부터 설치까지 3~4주씩 기다려야 했던 ‘학습효과’가 구매 시기를 앞당기게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에어컨 판매량이 250만~280만 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140만~150만 대이던 평년 판매량을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 역대 최고인 지난해(220만 대) 판매량을 1년 만에 갈아치울 전망이다. 이는 올해 200만~230만 대로 예상되는 TV 판매량을 추월한 수치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 에어컨 판매 물량의 70~80%가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냉방 관련 상품군이 다양해진 것도 눈에 띈다. 6월 23일 오픈마켓 옥션이 최근 한달(5월19일~6월18일) 간 여름철 인기 제품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세컨드 계절가전과 열대야 숙면 용품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에어컨 전기요금을 피하고자 냉방효과를 극대화해주는 세컨드 가전인 써큘레이터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4%나 늘었고, 냉풍기 판매도 124% 증가했다. 또 지난해 인기몰이를 했던 핸디선풍기 역시 찾는 이가 늘어 421%나 급증했다. 반면 가뭄으로 모기 출현이 늦어지면서 모기용품 수요가 크게 줄었다.

대신 장마 관련 용품은 저조한 매출을 나타내고 있다. 옥션의 조사에서 5월 27일~6월 26일 한달 간 우산과 제습기 등 장마철 상품의 판매량이 각각 22%, 36% 줄어들었다. 특히 장마철 대표 가전인 제습기는 직격탄을 맞았다. 오기명 옥션 소형 가전팀장은 “때 이른 더위로 여름이 길어진데다 연이은 폭염주의보와 가뭄 등으로 여름 제품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식용얼음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6월 들어 편의점 GS25의 봉지얼음과 얼음컵 매출은 지난해 대비 약 30% 증가했다. 판매 수량에서 2위 생수보다 4배 이상 많다. 편의점 아이스커피 판매량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데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음료나 빙수용으로 얼음만 따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식용얼음 시장 규모는 300억원 수준으로, 올해는 4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음 매출이 급격히 늘자 식용얼음 제조업체들은 설비를 증설하고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얼음시장 점유율 1위인 풀무원은 올해 얼음컵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 하루 50t을 생산하고 있다.

재래시장·고깃집·서민은 힘들고

마케팅업계에선 폭염을 ‘양날의 검’으로 부른다. 폭염으로 특수를 누리는 곳이 있는 반면 매출 감소에 허덕이는 분야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재래시장과 고깃집이다. 서울 도심에 자리한 남대문시장·광장시장 등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데다 폭염까지 덮쳐 오가는 행인이 절반가량 줄었다. 고깃집들도 폭염에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서대문의 한 곱창집 주인은 “날 더운데 누가 불 앞에 앉아 있으려 하겠나. 여름철 대체 메뉴라도 개발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레저·숙박·음식업 등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휴가로 산이나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 여름 특수를 누릴 수 있지만 폭염이 계속되면 야외 활동 자체를 자제하며 이른바 ‘방콕족’이 늘게 된다. 매출 하락 등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너무 더우면 휴가지에 가서도 숙소 안에 주로 있는 등 바깥 활동을 자제하게 된다”면서 “서비스업 등 우리 경제가 ‘바깥 활동’에 기대는 부분이 커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선선해도 ‘폭염 마케팅’하는 유통업계


▎최근 폭염과 가뭄으로 귤·사과·포도 등 과일 가격이 계속 오르며 과실물가지수가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5월 과실물가지수는 118.15로 2013년 5월 이후 가장 높았다. / 사진:뉴시스
폭염은 서민들에겐 달갑지 않다. 장바구니 물가를 흔들기 때문이다. 7월 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안정세로 접어드나 싶던 농산물 가격은 무더위·가뭄에 장마까지 겹치면서 다시 들썩이고 있다. 7월 7일 기준 양파 1kg은 1960원으로, 평년 가격보다 18.9% 높다. 마늘(깐마늘 1㎏, 9535원)은 18.1%, 당근(1kg, 3346원)은 16.4% 비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배추와 무 등도 재반등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과일값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6월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과실물가지수는 118.15로 2013년 5월(118.189) 이후 가장 높았다. 2015년 가격을 100으로 놓고 값을 산출한 결과 7개월 연속 상승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폭염 탓에 작황이 부진했고, 올해 역시 일찍 찾아온 더위에 여름 과일 수요가 늘며 물가 상승 폭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채소 등 농산물 가격도 폭염에는 급등하지만 사람들이 외식 등 소비를 줄이면 다시 가격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원재료 가격 상승은 결국 가공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폭염이 소비를 위축시킨다”고 진단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성태 거시경제연구부장 역시 “마이너스 요인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날씨 좋은 5월에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던 것도 ‘야외 활동이 늘어나 내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였는데 지금은 너무 더워 야외활동이 줄고 있으니 반대효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폭염이 지속되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노동생산성도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유통업계의 ‘폭염 마케팅’은 뜨겁기만 하다. 실제로 해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 여름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올해가 제일 뜨겁다”는 날씨 마케팅도 관련 상품 매출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4년과 2015년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두 해 모두 평년에 비해 비교적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유통업계는 ‘폭염’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고, 매출 증가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게다가 유통업계의 여름마케팅은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백화점·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은 5월부터 여름행사를 시작했고, 6월에도 더운 날씨 덕에 성수기를 맞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불황을 이기는 마케팅 방법은 할인, 날씨, 희소성 등 다양하다”며 “‘싸게 파니 살까’ 보다는 ‘내게 꼭 필요한가’를 먼저 따지는 합리적인 구매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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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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