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재정 폭식(暴食)효과를 경계하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더불어 잘 사는 경제’ 등 5대 국정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100대 국정 과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5년 간 소요 예산으로 178조원을 추산하고, 지출 구조조정과 자연스러운 세수 증대로 이를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증세 없이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증세 없이 막대한 재정 소요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정부 때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명제를 천명했지만, 현실에서는 명시적인 세율 조정만 하지 않았지 사실상 증세가 이뤄졌다. 이번 정부도 결국 앞으로 증가할 재정 지출 소요에 대비하기 위해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대해서는 각각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해 재원 소요에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소득이 5억원을 넘는 고소득자에게 부과되는 소득 세율을 40%에서 42%로 인상하더라도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은 연간 1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포함하더라도 추가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은 연간 총 3조~4조원에 그치고, 일부 재원을 추가해도 178조원으로 추산된 국정 과제 재원을 충당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정부 지출을 늘리는 정책 과제를 제시할 때는 거기에 부합하는 재정 소요를 정확히 추산하고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세워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기본이다. 증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세금이나 부채 없이 재정 지출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옳지 않다. 더구나 명시적으로 100대 국정 과제 추진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 이외에도 다양한 추가 재정 소요가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공 일자리 확대는 궁극적으로 예산을 많이 필요로 할뿐 아니라, 공무원 연금기금이 사실상 고갈된 상태여서 채용 인원의 퇴직 후까지도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중단되면 사업 중단에 따른 피해 보상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 변경 과정에서 다른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도 재정 자금을 투입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지원 보조 등의 부담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정부가 타당성 있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재정을 지출하는 것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당연한 작업이다. 하지만 자신의 사적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재정에서 공공서비스의 이름으로 이를 충당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기에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재정 지출은 정부가 아니면 이를 집행할 민간 주체가 없는지, 좀 더 적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먼저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대략적인 방향 정도가 아니라 각 정책 과제에 따른 예산 소요, 조달 방안,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에 의해 특정 지출 분야에 재정이 방만하게 집행될 가능성이 있고, 그럴 경우 결국 경제도 어려워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된 바 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인 필립 레인이 트리니티 대학 교수 시절에 UCLA의 아론 토넬 교수와 함께 발표한 ‘폭식(暴食)효과’라는 논문이 대표적이다.

재정 지출 관련 법·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원이 생겼을 때, 여러 강력한 이해관계자들이 정책 결정에 관여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맞춰 지출을 확장하면, 국가의 공통 자본인 재정은 파괴되고 결과적으로 성장이 저해된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어떻게 잘 나눌지 규칙과 절차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그런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새로 먹을 것이 생겼을 때 딴 사람이 먹기 전에 내가 빨리 먹어 치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로 생긴 양보다 더 많은 양을 먹어 치워 새 것뿐만 아니라 원래 있던 것도 없어진다는 논리다. 논문에서는 나이지리아·베네수엘라·멕시코에서 원유가격이, 코스타리카·코트디브와르·케냐에서 커피가격이 올라 그 재원으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경제 성장보다 재정이 확대되며 오히려 성장을 갉아먹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편, 스톡홀름 대학의 제이콥 스벤손 교수는 개발도상국 가운데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재정 확충이 아닌 일시적 해외 원조로 재정 자금을 조달한 국가에서 거시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익단체들이 늘어난 정부 재원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단기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이를 관료집단이 통제하지 못하면서 해외 원조로 들어온 자금보다 더 많은 국가 자원이 낭비되거나 비효율적으로 집행된 결과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경제에 부정적 영향만 끼쳤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지출을 확대하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했고, 그 방향은 타당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에 대해서는 의회에서 법정부채상한과 자동지출삭감 등의 제도로 관리했다. 자동지출삭감이란 국가 부채가 일정 금액에 도달하면 사전에 합의된 금액과 스케줄에 따라 자동적으로 지출을 줄여가는 제도다. 2013년 당시 미국 정부의 재정 지출이 증가하면서 법정부채상한에 도달하자 재원이 부족해 연방정부를 폐쇄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당시 정치권의 합의로 법정부채상한을 적용하지 않도록 해서 연방정부가 작동하도록 하되 자동지출삭감은 유지했던 사례도 있다. 그때 국제 신용평가사 S&P는 연방정부 폐쇄 및 지출 삭감에 따른 피해를 200억 달러로 추산했다. 더구나 불확실성이 커져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지출을 관리 가능한 방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1년과 1995년에도 유사한 법정부채상한과 관련된 조처를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에서 경상 경제성장률 증가에 비해 재정 지출 확대 속도가 더 빠른 반면, 재원 조달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재정 지출의 혜택은 누가 누리며, 그 비용은 누가, 언제 부담할지 좀 더 명확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또 일시적이고 특정한 산업의 호황에 기대는 재원 조달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 지출 측면에서도 합리적인 절차와 제도를 통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 일어나도록 지출의 규칙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만약 명시적인 제도로 사전에 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재량(裁量)적으로 사후에 지출을 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정치적으로 강력한 이익단체의 영향은 최대한 배제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1396호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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