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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케어 vs 오바마케어 뭐가 다른가] 보장 항목 늘리자(문재인케어) vs 보험 가입자 늘리자(오바마케어)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건강보험 시스템 따라 입장 달라 ... 국내선 보험료 인상 반발 더 클 수도

미국 사회가 다시 건강보험 문제로 들끓고 있다. 핵심은 오바마케어 존폐 여부다. 지난해 11월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인 ‘오바마케어 폐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오바마케어 반대론자들은 민간 영역에 대한 정부가 개입 반대와 재정 악화를 내세우며 오바마케어를 폐지·수정하는 ‘트럼프케어’를 주장하고 있다. 이와 달리 오바마케어 지지자들은 오바마케어로 새로 보험에 가입한 2000만 명을 다시 무보험자로 내몬다며 ‘트럼프케어’ 총력 저지에 나섰다. 같은 시각, 한국에서도 문재인케어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민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 축소를 통해 공공의료 보장 범위를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재정과 보험료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의료 혜택 확대와 재정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은 미국이나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7월 27일 미국 상원이 표결에 부친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이 과반 확보에 실패해 부결됐다. 이보다 앞선 상원 회의에서도 오바마케어를 전면 개정하는 법안과 대체 입법 없이 오바마케어를 우선 폐지하는 법안이 잇따라 제동 걸린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당인 공화당과의 갈등까지 불사하며 의회에 압박을 가했음에도 민주당과 공화당 내부 일부 의원의 반발로 잇따라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후 미국 상원은 여야 합의로 9월 건강보험정책 공청회를 각각 열기로 했다. ‘트럼프케어 8월 입법’ 목표를 포기한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9월부터 공청회를 통해 새로운 건강보험법 마련을 위한 접점을 찾아보려는 취지라고 미국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분석했다. 앞으로 오바마케어의 세부적인 내용은 수정될 수 있지만, 큰 틀과 핵심 내용은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美 의회, 오바마케어 폐지안 제동


▎2010년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하원을 통과한 건강보험 개혁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2010년에 발효한 오바마케어는 사실상 모든 미국인의 건강보험 가입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건강보험은 민간 의료보험 중심으로 구성된다. 직장인 대다수는 회사가 보조하는 민간의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미성년자, 저소득층·장애인이나 65세 이상 고령층 정도만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같은 공공 의료보험 대상이 된다. 나머지는 개별적으로 민간 보험사의 개인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소득이 안정적인 계층은 문제가 없지만 저소득 자영업자나 무직자, 보험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소규모 직장 종사자는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렇게 보험 가입을 포기한 이들이 오바마케어 시행 당시 전체 인구의 14% 정도인 48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오바마케어는 당근과 채찍을 통해 이들의 건강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경제적으로 보험 가입이 부담되는 계층에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보험을 들지 않을 땐 벌금을 부과해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는 게 기본 골격이다. 이렇게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조금을 받는 민간 보험상품을 좁은 의미의 ‘오바마케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또 50인 이상 기업의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일정 금액 이상 보험금을 의무적으로 보조하도록 했다. 보험사는 신청자의 지병 등을 이유로 가입 거부를 할 수 없게 됐다. 이와 함께 메디케이드 등 기존 공공 의료보험의 대상을 확대했다. 미국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오바마케어가 발효된 이후 새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된 이들이 200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00만 명은 메디케이드 프로그램 확대 수혜자다. 이에 따라 미국 미보험자 비율은 2013년 13.3%에서 지난해 상반기 8.6%로 낮아졌다.

“오바마케어 폐지하면 사회적 비용 더 들어”


그러나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핵심은 역시 재정과 보험료다. 공공 의료보험의 확대와 저소득층의 의료보험 가입 보조금으로 나가는 재정 규모가 만만치 않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오바마케어를 위한 정부 지출이 10년 간 총 1조7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오바마케어를 완전히 폐지할 경우 2026년까지 재정적자를 4730억 달러 축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보험사가 선별적으로 가입자를 받을 수 없게 되면서 위험 부담이 커진 보험사가 보험료를 올린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오바마케어의 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올랐고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점을 중점적으로 공격했다. 실제 오바마케어 보험료 인상률은 2015년 2%에서 지난해 7.2%, 올해는 22%로 계속 늘었다. 내년에도 큰 폭의 상승이 예상된다. 더힐은 “전국적으로 오바마케어 보험료 인상률이 평균 30%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케어를 찬성하는 쪽에선 오바마케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의료비가 절감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바마케어를 통해서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을 가지고 조기 진단을 받아 질병을 예방하면 결과적으로는 의료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지출 증가율과 민간 의료보험의 1인당 의료비 지출 증가율은 오바마케어 시행 이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료 인상의 원인도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고령화 시대의 여파로 보험료 상승폭이 커진 것이 작용한 데다, 내년 인상률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케어 폐지를 위해 보조금 중단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조금 지급에 불안함을 느낀 보험사가 보험료를 올리거나 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고려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또 CNBC는 지난 1월 비영리재단 커먼웰스펀드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오바마케어를 폐지함으로써 보건복지 지출에 드는 비용 14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지만, 약 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어 사회적 비용 지출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재인케어는 공공의료 범위 확대, 의료의 사회보험적 성격 강화라는 점에서 오바마케어와 방향성이 같다. 다만 건강보험 시스템이 달라 논쟁이 될 부분도 조금씩 상이하게 나타난다. 우선 한국의 경우 오바마케어가 지향하는 ‘모든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이 이미 이뤄진 상태다. 사실상 모든 국민이 공공 의료보험인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이기 때문이다. 대신 문재인케어는 국민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바꾸는 게 목표다. 즉 오바마케어가 의료보험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라면, 문재인케어는 이미 가입한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보장 항목’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또 한국은 미국과 달리 공공 의료보험 중심으로 이뤄진다. 국내의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과 의무적으로 급여계약을 맺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상 유일한 의료보험 제공자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입하는 민간 보험사 상품은 ‘실손보험’으로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직장인 대다수 적으로 돌릴 수도”

건강보험 시스템의 차이로 두 정책을 둔 이해당사자의 반응도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보험사와 경영자 단체가 오바마케어를 강하게 반대했다. 보험사는 가입자를 가려 받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은행으로 치면 ‘부실대출’을 강제로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보험사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경영자 측은 보험금 보조 의무조항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 오바마케어를 위해 세금을 더 내게 된 고소득층(연방 빈곤선의 4배 이상)의 불만도 크다. 의료보험 의무가입 조항이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정치 철학적 반대도 있다.

문재인케어에 대해 국내 보험 업계에서는 반기는 분위기다. 구상대로 3대 비급여 항목(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등이 급여 항목으로 전환되면 보험사들이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이 줄어들어 손해율이 개선될 수 있어서다. 반대 목소리가 큰 곳은 의료 업계다.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항목은 병원 입장에서는 가격 책정의 자율성이 거의 없는 서비스다. 더구나 급여 항목에 책정된 의료수가가 충분치 않아 원가에 못 미치는 진료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는 상황에서 급여 항목 확대가 반가울 리 없다. 반면 미국에서는 전미병원협회(AHA)·미국병원연맹(FAH) 등 의료계에서도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민간 보험 위주로 돌아가는 만큼 공공 의료보험으로 인한 의료비 책정 문제에서 비교적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이미 공공 의료보험이 정착한 상황에서 문재인케어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 침해라는 철학적 논쟁으로부터는 자유롭다. 다만 앞으로의 정치적 해결 과정에서 문재인케어는 오바마케어에 비해 보험료 인상 문제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오바마케어는 정부가 주도하고 지원하지만 결국 국민이 가입하는 보험은 민간 상품이다. 보험료 역시 정부의 승인을 받지만 결과적으로는 민간 보험사가 정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만약 재정 부담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료를 올리는 일이 생기면 불만이 고스란히 정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의 건보개혁은 증세 대상인 일부 고소득층의 반대를 불렀지만, 국내에서 건보료 인상은 국민 대다수인 직장인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난관이 있을 수 있다”며 “국내 이해관계에 맞춰 정치적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398호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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