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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사례로 본 택배 업계 첨단 자동화 기술] 손 많이 가던 물건 분류도 기계가 도맡아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터 접목 기술도 연구 … 실버택배에 친환경 카트 활용

▎‘휠 소터’를 도입한 CJ대한통운 강서B터미널 / 사진:전민규 기자
택배 업계가 운송·분류 작업의 자동화 시스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어느 새 일상화된 온라인 배송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는 만큼 물류 시스템 개선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작업을 효율화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인프라 투자 여력이 충분한 상위 업체 중심으로 수요가 몰리는 한편 운임 상승의 기반이 되는 서비스 차별화가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택배 자동화와 관련해 가장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건 국내 시장 1위 사업자인 CJ대한통운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물류 자동화 시스템인 ‘휠 소터’를 전국 터미널 중 40여곳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강서B터미널 외에도 울산에 2곳,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남양주시에 1곳씩 설비를 들였다. 내년까지 전국의 모든 택배 터미널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올해까지 80곳에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고 내년 4월까지는 터미널 200곳에 모두 휠 소터를 적용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이를 위해 약 13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택배기사 손 덜고, 배송시간도 다변화

지난 9월 6일 휠 소터를 도입한 인천 서운동 소재 CJ대한통운의 서브 터미널 서울강서B터미널을 방문했다. 옥천·대전 등 전국 각지의 허브 터미널로부터 11t 대형 트럭이 모이는 곳이다. 하루 약 4만개의 택배를 최종 분류해 서울 화곡동·마곡동·내발산·외발산동 등지로 배달한다. 오전 9시 대전 터미널에서 올라온 트럭의 뒤쪽 짐칸의 문이 열리고 컨베이어 벨트 위로 택배 상자가 쏟아져 나왔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가던 상자들은 붉은 빛이 나는 스캐너를 지나가더니, 컨베이어 벨트 양 옆으로 열린 10여개의 출구로 나뉘어 빠져 나갔다. 각 출구의 끝에는 각 배송지에 맞는 택배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치 승객들이 각 행선지별 플랫폼을 찾아가는 기차역 모습 같았다.

휠 소터는 작은 바퀴를 이용해 택배 상자를 배달 지역별로 분류해주는 설비다. 핵심은 상품 정보를 수신하는 스캐너와 초속 2m 이상의 속도로 움직이는 휠 및 컨베이어다. 우선 택배 터미널에 도착한 화물은 컨베이어를 타고 대형 스캐너를 통과하게 된다. 터미널 직원들은 물건이 스캐너를 통과하기 전에 스캔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화물의 위치를 조절한다. 휠 소터는 수신한 화물의 정보에 따라 컨베이어를 타고 움직이는 화물을 배송해야 하는 지역의 트럭 쪽으로 보낸다. 택배기사들은 자신 앞으로 온 화물을 각자의 트럭에 싣기만 하면 된다.

휠 소터를 적용한 작업 현장은 기존의 택배 서브 터미널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택배기사들이 상자가 옮겨지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 다닥다닥 붙어 선 채 상자에 붙은 배송지를 눈으로 보고 직접 상자를 골라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택배기사는 자신이 배달할 상자를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했고, 오전 내내 택배기사들이 직접 분류한 물건을 일일이 트럭에 실은 다음 오후에 각 지역으로 배송에 나설 수 있었다. 오전 내내 화물 분류에 매여 있다가 오후에 집집마다 배송하다 보면 이미 한밤중인 일이 다반사였다. 컨베이어를 따라 화물이 빠르게 지나가다 보니 자리를 뜨기도 어려웠고, 택배기사들의 피로도 역시 높았다. 물건을 빨리 집어내야 해 트럭 앞에 대충 쌓아놓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작업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였다. 그 과정에서 포장이나 물건이 파손될 가능성도 그만큼 컸다.

휠 소터 도입으로 택배 분류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진 않았지만, 택배기사들이 손을 크게 덜 수 있게 됐다. 분류 작업 도중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커피 한 잔을 할 여유도 생겼다. 또 일괄적이었던 배송시간을 다층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택배기사들이 전부 물건 분류에 동원될 필요가 없어지면서 집배점별로 조를 나눠 일부만 출구로 나온 물건을 정리하고, 나머지는 분류가 끝난 물량만 먼저 실어 배송에 나가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덕분에 오전에도 택배를 받을 수 있다. 기사들은 오전 배송작업을 마치고 터미널로 복귀해서 오후에도 남은 화물을 전달할 수 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기사의 여유와 친절은 곧 택배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며 “택배기사의 작업 환경 개선이 고객 서비스 관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화 설비 도입으로 수익성 개선될 것”


▎기존 방식의 터미널.
택배 자동화는 업체의 수익성 개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택배의 수익성은 시기에 따라 몰리는 택배 물량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달려 있다. 택배 물량은 연말연시나 명절 등의 시기에 집중된다. 이와 달리 공급 능력은 상대적으로 고정적이다. 성수기에는 물량 쏠림에 따른 병목현상이 나타나 터미널과 배송 과정에서 단기 인력 고용, 물류 지연 등 불필요한 비용이 증가하기 쉽다. 가령 지난해 CJ대한통운의 경우 성수기인 11월 물량은 비수기 2월보다 36% 많았다. 그 결과 4분기에 물량이 처리 능력을 뛰어넘어 수익성이 신통치 않았다. 물류 자동화는 이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CJ대한통운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물류자동화를 통해 택배 매출총이익률은 지난해보다 0.4%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국내 택배 업계의 물류 기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대부분의 업체가 전통적인 방식의 물류 시스템을 고수해왔다. 특히 국내 택배 기업들은 물동량이 많은 ‘허브 터미널’에는 택배 자동 분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말단 조직인 ‘서브 터미널’에는 설치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규모의 경제에 따른 비용-편익 문제다. 국내 택배운송 시장과 각 업체의 물동량 규모를 봤을 때 자동화 기계를 도입하는 것이 수지 타산에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비싼 값의 기계를 도입하는 것보다 인력을 동원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논리도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환경이 바뀌었다. 온라인 쇼핑의 증가 등으로 택배 물동량이 매년 약 10% 이상 증가했다. 특히 CJ대한통운의 경우 2015년 이후 시장점유율 40% 이상을 유지하면서 말단 서브터미널에서 처리해야 하는 물동량도 늘었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을 때의 효용성이 커진 것이다. 또한 국내 중소기업과의 협력으로 자동화 기계를 국산화하면서 도입 비용을 줄였다. 국내 설비 업체는 그간 판로를 장담하지 못해 선뜻 자동화 기계의 개발과 제조에 나서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공급처가 확보되면서 이런 우려가 해소됐고, 택배 회사 입장에서는 해외 업체로부터 수입하는 것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설비를 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택배 물량 증가로 자동화 효용성 커져


택배 시장은 최근 정부의 근로자 처우 개선 요구와 인건비 증가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관련 기술 개발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7월 국토부는 택배 일자리 개선 차원에서 ‘택배 상·하차 작업 자동화 기술’과 ‘차량의 적재함 높이를 조절하는 기술’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추진하는 ‘택배 상·하차 자동화 기술 연구개발(R&D)’은 상·하차, 분류, 배송 등 작업별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으로 추진된다. 내년부터 2022년까지 약 130억원의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상차의 경우 상하좌우 조절이 가능한 컨베이어를 사용해 근로자들이 직접 택배를 싣는 작업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하차의 경우 제품인식 센서가 탑재된 반자동 리프트가 택배상자를 차량에서 내리는 등 작업 전반에 걸쳐 자동화가 추진된다. 아울러 국토부는 업계·전문가 등의 의견수렴 결과를 토대로 택배종사자 보호 방안을 추가로 발굴해 하반기에 마련할 예정인 ‘택배 서비스 개선 대책’에 포함해 발표할 계획이다.

CJ대한통운은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첨단 융복합 기술과 국내 최대 네트워크,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차별화한 서비스 개발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CJ대한통운은 국내 물류기업 중 유일하게 기업 부설 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150여 명의 석·박사급 연구인력이 물류 첨단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에 기반한 첨단 기술을 연구·개발해 택배 산업에 적용한다는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2017 국제물류산업전’에서는 종합물류연구원에서 지속적으로 개발해온 운송로봇과 드론을 활용한 무인 배송 및 자동 낙하산 시스템을 비롯해, 사물인터넷(IoT)에 기반한 지능형 고속 복합 인식시스템, 특송 전용 패키징 솔루션인 스마트 큐브 등을 전시했다. 정태영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기술을 바탕으로 온라인 비즈니스 확산 등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스캐너를 통해 확보한 택배 화물의 빅데이터를 배차 운영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휠 소터 같은 자동화 설비의 스캐너는 상품 정보뿐 아니라 부피, 무게 등 체적 정보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부피가 상대적으로 크고 작은 물건이 어느 시기에 많이 배송되는지 분석한 다음 어떤 크기의 차량을 몇 대나 투입할지 결정하는 식이다. 또한 차량에 실려있는 택배상자의 개수와 크기를 분석하는 물량예측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허브터미널에 어느 정도 물량이 도착하는지 예측할 수 있어 인력과 차량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드론, 배송 챗봇, 운송로봇도 개발


지난해 초부터 택배용 드론 개발에도 나섰다. 같은 해 11~12월 강원도 영월에서 시험 비행을 마쳤다. 드론이 추락할 때 낙하산이 자동으로 펼쳐지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기술력 면에선 글로벌 업체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드론 내부 부품 국산화 비율은 70% 수준이다. 드론 이름은 ‘CJ스카이도어’다. 배송 가능 거리는 왕복 5㎞, 최대 무게 3㎏의 물품을 실어 나를 수 있다. 기체에 매단 여러 종류의 물건을 차례차례 내리는 데도 성공했다. 현재 시험 비행으로 얻은 데이터를 분석, 제품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비자의 문의에 대해 24시간 회신할 수 있는 챗봇도 개발 중이다. 배송 후 안내 메시지나 사진 전송 등 택배기사의 손이 많이 가야 했던 업무를 덜어주는 기술이다. 산·학·연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율주행 운송로봇도 연구하고 있다. 운송로봇은 물류센터 내에서 상품과 적재 장소의 위치정보를 파악해 상품을 실어 나른다. CJ대한통운 측은 이 기술이 실용화될 경우 작업 시간 30% 단축, 물건 선별 오류율20% 감소 등의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물류 신기술과 최신 설비 도입을 통해 국내 사업은 물론 미국·중국 등 해외에도 적용, 생산성 향상과 운영 최적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특히 글로벌 제조기업들을 수주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개발한 배송기술을 실버택배 등 새로운 사업 모델에 활용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CJ대한통운은 국토부의 ‘녹색물류 전환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100대의 택배전동장비 구매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받아, 지난해 11월 국토부·인천시·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노인일자리 비전 보고회 및 친환경배송장비 전수식’을 개최하고 실버택배용 친환경 택배전동장비를 보급했다. 이번에 보급된 택배전동장비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동 카트다. 짐칸에 약 40~50여개의 택배물품을 실어 옮길 수 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친환경 장비를 활용해 탄소저감 효과도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버택배는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에 물량을 싣고 오면, 인근 거주 노인들이 친환경 전동 카트로 배송하는 거점형 택배 사업 형태다. 택배 기사가 차량에 특정 아파트 단지의 물량을 분류 및 적재한 후 아파트 단지 내 실버택배 거점까지 전달한다. 해당 거점의 실버 배송원들은 전달된 택배 상품을 아파트 동별로 재분류하고, 친환경 전동 카트나 손수레 등을 이용해 각자 맡은 구역에서 배송하는 구조다. CJ대한통운은 2013년 보건복지부와 ‘시니어 일자리 창출 MOU’를 체결한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부산·경남 등 전국 각지 140여개 거점에서 1066개의 노인 일자리를 창출했다.

1401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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