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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25) 투자의 적 ‘현상유지편향’] 노후 빈곤 피하려면 익숙한 것과 이별부터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후회 않으려 하던 대로 하려는 경향 강해 ... 기회비용 따져 현상유지편향 극복을

우리나라 은퇴자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한 은퇴연구소에서 50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건강, 돈과 생활, 일과 인간관계라는 삶의 3가지 영역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먼저 건강에서는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지 못한 것, 스트레스 해소법을 익히지 못한 것 순으로 후회했다. 돈과 생활에 관련해선 노후에 쓸 여가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것,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여행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일과 인간관계에서는 평생 즐길 취미를 만들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하고 있었으며, 자녀와 대화가 부족했던 것, 자녀를 좀 더 사교성 있고 대범하게 키우지 못한 것, 부부 간 대화가 부족했던 것 등 주로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나이 들어 후회하면 이미 늦어

후회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해서 현재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됐다는 뜻이다. 젊었을 때엔 후회해도 얼마든지 만회하거나 복원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나 늙어서 후회하면 이미 때는 늦었다. 기차는 떠나가버렸다. 은퇴한 노년기에 돈을 모은다는 것, 잃은 건강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노인은 자기 중심적이고 고집이 강해 훼손된 인간관계를 복원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은 퇴직 전 현역에 있을 때 미리 준비해야 한다. 평소 연금 재원을 많이 만들어 놓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며 가족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당장 눈 앞이 급하고 먼 훗날은 그렇게 절박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탓이다. 노후준비처럼 목표 달성에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이슈에서 그런 인간의 본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퇴직연금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퇴직금을 연금화해 노후생활비에 보태라는 게 제도 도입 취지인데, 가입자의 90%가 일시금으로 찾아 쓴다. 운용 대상도 은행예금 같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원금을 지켜주는 상품 중심이다. 가입자에게는 퇴직연금이 노후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다.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찾아 급한 대로 써버리면 노후에 어찌되는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리고 저금리가 장기화함에 따라 원금보장형의 쥐꼬리 만한 금리로는 노후에 쓸 연금을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쯤도 안다. 그러나 주식이나 펀드 등 실적 배당 상품으로 갈아타야 한다는 이야기를 언론 등을 통해 매일같이 듣는다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처음에 안전한 상품을 선택했던 사람은 죽으나 사나 안전상품 일편단심이다. 70%가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한다. 투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바로 이런 일시금 선호현상이나 안전제일주의 때문에 퇴직연금제도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정부는 세제혜택을 강화하는 등 유인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입자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나중에야 어찌 되든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일까. 은퇴하고 나면 후회할 게 뻔한 데도 말이다.

장기적으로 하지 않는 행동 더 후회

합리적 인간이라면 좀 번거롭더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웬만해선 이미 익숙한 일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런 인간의 특징을 두고 행동경제학자들은 ‘현상유지편향’이라고 한다. ‘고집의 오류’라고도 부른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사람들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누고, A그룹에겐 다음과 같은 조건을 주었다. “당신은 투자에 관심이 많지만 투자금이 없다. 그런데 당신은 상속인이 되어서 갑자기 많은 현금을 물려받게 됐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투자 옵션은 ①중간 정도 위험을 가진 회사의 주식 ②위험성이 큰 회사의 채권 ③지방채 ④국채 등 네 가지로 이 중 하나, 혹은 여러 개를 택해 다양하게 투자할 수 있다.” B그룹에겐 “당신은 상속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이 상속재산은 현금 100%가 아니라 ‘중간 정도의 위험을 가진 회사’의 주식에 대부분이 투자돼 있다. 이 상속 재산은 당신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이를 활용해 다양하게 투자할 수 있다”며 A그룹과는 다른 조건을 제시했다. 실험 결과 A그룹의 경우 말 그대로 자신의 성향에 맞춰 투자자산을 배분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반면, B그룹은 이미 기존에 사둔 것으로 설정된 ‘중간 정도의 위험을 가진 주식’을 그대로 보유한 상태에서 투자를 진행했다. 그럼 왜 B그룹은 여러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도 있었는데, 주식만 고집했을까.

아마 B그룹 사람들의 머릿속엔 ‘가만히 있어도 중간 정도의 위험을 유지할 수 있는데, 굳이 이런 저런 자산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투자가 잘못돼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는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똑같이 나쁜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그것이 적극적인 행동의 결과일 때 더 큰 책임을 느끼게 마련이다. 능동적으로 행동했을 때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기 몫이지만 아무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책임은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아예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다. 말하자면 현상유지편향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편향 수준이 ‘오늘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기존에 먹었던 대로 구내식당을 갈까? 밖에서 식사를 할까? 에이 귀찮아, 구내식당이나 가자’ 정도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생이 걸린 노후준비에서 현상유지편향에 말려들어 은퇴 후 삶이 빈곤에 허덕인다면 큰 일이다. 가령 남편이 은퇴를 앞둔 부부가 있다고 치자. 이들은 젊었을 때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샀다 팔았다 하는 방법으로 재산을 불려왔다. 이 부부에겐 부동산은 불패 신화다. 투자한 아파트들은 한결같이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겨주었고, 혹 상투를 잡았다 해도 몇 년만 고생하면 원금회복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은퇴하면 재산이라곤 아파트 밖에 없는데, 이걸 처분해 아이들 결혼자금 보태주고 부부의 노후자금을 마련하자는 제의를 했다. 이에 아내는 “무슨 소리, 앞으로도 아파트는 계속 오를 텐데, 팔자니 말도 안돼”하면서 펄쩍 뛰었다. 남편 말대로 아파트를 처분해 은퇴자금과 작은 주택으로 옮기는 것이 부부에게는 최선의 노후준비 방법이다. 아내처럼 현상유지편향 때문에 아파트를 팔지 못한다면 노후의 삶을 그르칠 수 있다.

현상유지편향을 극복하려면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했을 때 들어가는 기회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꼼꼼히 계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분명히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선 사람들이 단기간엔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만 장기적으론 하지 않은 행동을 더 후회한다고 말한다. 퇴직이 임박했는데도 노후 준비를 하지 않으면 단기적으론 아무렇지 않겠지만 말년에 반드시 후회하게 돼 있다. 이를 역이용하면 노후준비를 방해하는 심리를 고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 나타날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다. 노년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거나 운동 부족으로 건강을 잃게 되는 장면을 그리다 보면 평생 후회하며 사는 것보다 뭔가 하는 것이 더 나음을 깨닫게 된다.

※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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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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