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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독일의 최장수 총리 메르켈의 과제] 동서독 경제 격차 더욱 줄여야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옛 동독지역 기반으로 극우정당 급부상...미래형 첨단기술 투자 늘릴 듯

▎메르켈은 2000년 독일 최대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의 첫 여성 당수, 2005년 독일 첫 여성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옛 동독 출신의 최초 총리 등 다양한 정치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9월 24일의 독일 총선(연방의회 선거)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국민 통합’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겼다. 이는 선거 결과를 반추해보면 드러난다. 메르켈이 이끄는 집권 우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DU·CSU) 연합은 기민당이 26.8%, 기사당이 6.2%를 각각 득표해 합계 33.0%로 1위를 차지했다. 기사당은 바이에른주에만 있는 지역 중도보수 정당으로 사실상 기민당의 바이에른주 지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승리로 기민·기사 연합을 이끌어온 메르켈 총리는 4선 연임을 했던 헬무트 콜 전 총리와 함께 독일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될 전망이다.

나치 몰락 이후 극우정당의 연방의회 진출 첫 사례

지난 4년 간 기민·기사 연합과 대연정을 해온 사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20.5%로 2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2005년 11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물러난 뒤 메르켈이 주도하는 대연정에 참여해 당의 명맥을 이어왔던 사민당은 이번에도 집권 주도에 실패했다. 사민당이 이번에 거둔 선거 결과는 역대 최악이다. 지난 2013년 총선에선 기민 34.1%, 기사 17.4%로 양당 합산 41.5%의 지지를 확보하고 사민당 득표율이 25.7%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양대 주류 정당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점은 2013년 창당한 극우성향의 포퓰리스트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무려 12.6%의 지지를 받아 일약 제3당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AfD는 지금까지 16개 주의회 중 13곳에서 의석을 얻었지만 연방의회 진출은 이번에 처음이다. 독일에선 전국적으로 5%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연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선거에서 AfD 는 4.7%의 지지율에 그쳐 연방의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극우성향의 정당이 5% 이상을 득표해 연방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한 것은 1945년 나치가 몰락한 이래 처음이다. AfD는 연정 구성에서 중도우파 기민·기사 연합이나 중도 좌파 사민당 등 좌우 어떤 정당에서도 손을 내밀지 않을 전망이다.

2013년 총선에서 5% 득표에 실패해 연방의회에 입성하지 못한 친기업 성향의 자유주의 정당 자유민주당(FDP)은 이번에 10.7%를 득표해 무난히 복귀했다. 메르켈이 주도하는 연정 참여 가능성도 있다. 진보적인 좌파당은 9.2%, 녹색당은 8.9%를 득표했다. 지난 2013년 선거에선 좌파당 8.6%, 녹색 8.4%, 자민 4.8%의 성적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좌파당과 녹색당은 별 변화가 없는 셈이다.

정당 득표율에 따른 의석 분포는 기민 200석, 사민 153석, AfD 94석, 자민 80석, 좌파 69석, 녹색 67석, 기사 46석 순으로 전망된다. 독일의 연방헌법인 기본법에 따르면 의회 구성을 위한 첫 본회의는 투표 다음 날부터 계산해 늦어도 30일째 되는 날까지는 열려야 하며 그 다음 본회의 때 의원 표결로 총리를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메르켈이 처음 총리가 된 2005년에는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 간의 연정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총선 후 65일이나 지난 다음에야 총리 선출 표결이 이뤄졌다. 차기 총리는 사실상 메르켈로 정해졌다. 하지만 독일 새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이번 연정이 어떻게 구성되는 지를 봐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극우성향의 AfD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정체다. AfD 지지자는 옛 동독지역 유권자와 남성 사이에서 특히 많았다. 9월 25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에 따르면 AfD는 옛 동독지역에서 유난히 강세를 보여 2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AfD는 전국적으로는 3위지만 옛 동독 지역에선 기민당(28.2%)에 이어 2위 정당으로 부상했다. AfD가 얻은 이 같은 득표율은 독일에서 가장 좌파적인 정당으로 옛 동독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삼아온 좌파당(17.4%)보다도 높다. 좌파당은 냉전 시절 옛 동독을 일당지배했던 사회주의통일당(동독 공산당으로도 알려짐)을 1989년 통일 이후 법적으로 계승한 민주사회당이 2007년 6월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과 통합한 정당이다. 통독 과정에서 옛 동독 주민의 소외감을 반영해온 정당인데도 이번 선거에서 극우세력에 밀린 셈이다. ‘오스탈지아(옛 동독에 대한 향수)’가 정치적으로 좌파 정당이 아닌 극우정당 지지로 변질된 셈이다. 심지어 드레스덴 중심의 옛 동독지역의 작센주에선 AfD가 1위를 차지했다. 중도좌파의 사민당은 옛 동독지역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득표율이 14.3%로 4위에 그쳤다.

이에 따라 메르켈은 옛 동독지역에 대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 연방정부는 신연방주(옛 동독지역을 가리키는 공식 행정용어)의 기술혁신을 강화해 여기서 나온 기술을 바탕으로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산업고도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독일 교육부의 혁신 이니셔티브 부서는 2016년 연방 예산에서 옛 동독지역에 164억 유로를 투입했다. 그 가운데 66억 유로를 연구혁신 시스템 강화에 쓰고, 56억 유로는 새로운 하이테크 전략을 시행하는 데 사용했다. 44억 유로는 교육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데 투자했다.

옛 동독지역에 연구혁신 투자 집중


▎독일 극우정당 AfD의 알리스 바이델 공동대표(왼쪽)와 알렉산더 가우란트 공동대표. / 사진:연합뉴스
독일 연방법은 각 지역이 동일(equal)하지는 않더라도 동등 수준(equivalent)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는 통독 후 ‘연대협정(Solidarpakt)’을 맺고 1995~2004년 연방 예산을 동독에 우선 배정했다. 하지만 이런 투자에도 경제 격차가 줄어들지 않자 20년 일정의 ‘연대협정Ⅱ’를 맺고 2005~2019년 동독 지역에 연방예산 1560억 유로를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인프라 투자에 1050억 유로, 일반 회계에도 특별 예산 510억 유로를 투입한다.

독일이 이렇게 동독지역의 혁신연구에 눈을 돌린 것은 1990년 통일 후 1990년 초까지 옛 동독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이 옛 서독지역에 지속적으로 상당히 뒤졌기 때문이다. 옛 동독지역의 1인당 GDP는 2000년 60%, 2014년 67% 수준이었다. 상업화와 영업 조직을 제대로 갖춘 대기업이 옛 동독지역에 드물었다는 점도 컸다. 이런 경제 시스템 아래에선 동독지역의 연구개발 조직은 서구 파트너에 창의력만 빌려주는 상황이 됐다. GDP에서 R&D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가리키는 R&D집중도도 동독 지역이 낮았다. 독일 전체가 3%인데 비해 동독지역에선 베를린이 3.6%로 유일하게 평균을 웃돌았고 작센 지역이 3%로 같았을 뿐 다른 지역은 1.4~2.2%로 현저히 낮았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스스로 개술을 개발해 이를 기업에 전달하고 기업은 이를 상품화해 시장에 출시하는 시장경제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형 연구소들도 동독지역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유럽 최대의 응용 연구조직인 프라운호퍼협회의 경우 예산의 3분의 1이자 공적 자금(연방 90%, 주정부 10%)의 30%에 해당하는 연구비를 드레스덴·마그데부르크 등 동독지역의 프라운호퍼 연구소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통독 직후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45세 정도를 기준으로 조기 정년을 시행했다. 젊은층은 재교육을 통해 새 직장이나 직업을 구하게 했다. 현재는 실업자 비율이 8%로 떨어졌다. 이 연구혁신으로 기업에 생존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이다. 자연과학과 공학기술에는 이데올로기가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독 엔지니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도 큰 기여를 했다. 결과적으로 연구혁신은 옛 동독지역 경제를 살려온 핵심이다. 앞으로 메르켈은 이 분야에 더욱 투자할 수밖에 없다.

옛 동독지역 주민 불만 잠재울 방안 고심

이는 독일 연방정부가 통독 후 연구혁신을 동독지역 경제 살리기의 핵심으로 내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통독 후 노사가 합의한 동독지역의 임금 수준은 서독지역의 90~92%에 이르렀다. 하지만 생산성은 70%쯤에 불과했다. 그 간극을 줄이는 것이 독일 경제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결국 동독지역 인력의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다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과거 연구개발(R&D)로 불렀던 연구혁신(R&I)을 강화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혁신적인 신상품을 개발하는 데 전력투구하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옛 동독지역에선 광학업체 카를자이스나 기계생산업체 나일스&시몬스 같은 히든 챔피언이 줄이어 탄생했다.

통독 28년이 지났는데도 동서독 지역 간의 경쟁력이 여전히 차이가 나는 것은 메르켈의 표를 갉아먹고 극우세력이 준동하는 배경이다. 현재도 동독지역의 경쟁력은 서독지역의 75%쯤이라고 한다. 물론 옛 서독지역의 경쟁력이 워낙 높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옛 동독지역의 생산성은 사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같은 옛 소련지역보다 높으며 심지어 서구권인 프랑스와 비교해도 그리 낮지 않다. 그래도 생산성 향상은 독일의 동서간 격차를 메울 힘을 제공한다.

동독 지역에 대한 연구혁신 투자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혁신 기술이 중심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래형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동독지역의 연구혁신에 집중 투자해 동·서독이 4차 산업혁명을 나란히 맞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첨단기술에 중점적으로 투자해 세계 최고인 넘버1(No1), 다른 경쟁자가 넘볼 수 없는 온리1(Only 1) 연구혁신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가동하겠다는 게 독일 정부의 연구혁신 전략이다. 독일의 동독지역 연구혁신 투자를 한국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집권 4기를 맞을 메르켈은 옛 동독지역을 대상으로 더욱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옛 동독지역 주민의 불만을 잠재우지 않으면 통일의 성과를 계속 내는 것도, 극우세력 준동을 막는 것도, 기성 정당의 집권도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2000년 독일 최대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의 첫 여성 당수, 2005년 독일 첫 여성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옛 동독 출신의 최초 총리 등 다양한 정치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위상은 독일의 최고 지도자 수준을 넘어선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통한다. 유럽에서 재정이 가장 튼실하며 가장 경제 사정이 좋은 독일의 국가수반으로서 유럽연합(EU)에서도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1404호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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