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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비서 전쟁 2라운드] 이종 기업간 합종연횡, 가격 경쟁 치열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음악 감상, 검색 등 단순 서비스로는 한계...딥러닝 기반의 복합 서비스가 성패 좌우할 듯

국내외 AI 비서 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1라운드에서 서로 닮은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데 치중했다면 2라운드에서는 차별화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음악 감상, 검색 등 단순 서비스로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카카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경쟁 관계의 기업이 선뜻 손을 잡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또 이종 기업 간 결합으로 새로운 플랫폼을 쓰거나 복합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스피커나 스마트폰에 갇힌 AI 비서를 자동차 등에서 접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getty images bank
#1. 미국 전자상거래업계 최강자인 아마존은 10월 10일 자사 AI 스피커인 ‘에코쇼’ 가격을 229.99달러에서 199.99 달러로 30% 이상 낮췄다. 에코쇼는 스피커만 있는 기존 제품과 다르게 화면으로 각종 동영상 콘텐트를 검색해 보여주는 제품이다. 아마존의 이번 결정 배경에는 구글이 있다. 구글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를 ‘에코쇼’에서 이용할 수 없도록 했다. 미국 IT 전문 온라인 매체 더버지는 “아마존이 에코쇼가 유튜브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 구글과 화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경쟁 제품의) 가격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2. 삼성전자와 카카오는 9월 14일 음성인식 시장 활성화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협력한다고 밝혔다. 카카오 AI 플랫폼 ‘카카오 아이’를 삼성전자 ‘빅스비’와 연동하고 음성인식을 비롯한 AI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것이다. 두 회사는 이번 협력을 계기로 카카오 아이와 빅스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내 AI 업계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협업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협업 결과물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며 가전·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 등으로 협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이번 제휴는 각자의 영역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회사의 만남이란 점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플랫폼에서 경쟁관계인 회사가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 비서 시장을 둘러싼 국내외 IT기업들의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과감히 내릴 뿐 아니라 경쟁력 강화와 시장 확대를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삼성과 카카오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도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 손을 잡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코타나를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 소비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아마존의 알렉사에서는 회의 예약이나 일정 체크 같은 MS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 비서 전쟁 1라운드가 누가 흥미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시장 주도권을 잡느냐는 전통적인 싸움이었다면, 2라운드는 본격적인 생존 경쟁이 펼쳐지는 합종연횡의 모습도 나오고 있다

적과의 동침도 불사


누가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와 맞설지와 더불어 시장을 이끌 킬러 서비스·콘텐트의 등장도 기대된다. 예컨대 구글은 10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재즈센터에서 ‘구글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AI를 활용한 7가지 종류의 기기 9개를 선보였다. 구글 최고경영자(CEO) 순다 피차이는 첫 연사로 나서 “구글은 모바일 우선에서 인공지능 우선(AI First)으로 전환했다”며 “모든 제품을 인공지능에 기반해 새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글의 AI 연구 결과는 그대로 모든 제품에 반영됐다. 이날 나온 구글의 신형 스마트폰 ‘픽셀2’ ‘픽셀2XL’에는 후면 카메라가 1개뿐이었는데 이는 대부분의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가 2개인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애플·삼성·LG 등이 후면 카메라 2개로 선회한 건 스마트폰 렌즈의 구경이 작고 일반 카메라처럼 렌즈를 교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물 사진을 찍으면서 배경을 흐리게 하려면 카메라 1개는 배경에, 다른 한 개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삼각측량 방식으로 피사체와 배경을 구분해야 한다.

구글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구글 측은 “인공지능으로 인물과 배경을 구분해 영상을 처리하므로 (추가적인) 카메라는 필요 없어졌다”고 단언했다. 스마트폰에서 더 이상 혁신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AI로 간단히 깬 셈이다. ‘구글 클립스’라는 AI 카메라는 사진을 찍어야 할지 말지를 알아서 판단해 촬영한다. 사용자는 어디에 카메라를 놓고 언제 전원을 켤지에만 관여한다. 그러면 카메라가 스스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다. 구글이 ‘구글 포토’ 서비스 등으로 구도와 인물 움직임 등의 데이터를 모아와 사용자들의 촬영 습관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글의 이어폰인 ‘픽셀 버즈’는 AI 비서 시장이 어디로 향할지 힌트를 준다. 구글은 이날 픽셀 버즈를 스마트폰에 연결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나라 언어로 대화하는 장면을 시연했다. 동시통역까지 가능한 AI 비서를 갖게 된 셈이다. 이 모든 기능을 합친 AI 비서가 나온다면 아마존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공산이 크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 1분기 AI 비서 스피커 출하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배 이상 늘어난 240만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출하 대수도 직전 해보다 6배 이상 늘어난 420만대였다. 이 중 70% 이상이 아마존 제품이다.

진화된 새로운 제품·서비스 봇물


이론상으론 애플 에어팟이든 LG전자 V30의 B&O 번들 이어폰이든 음성인식·통역 등으로 이어지는 구글의 동시통역 시스템에 연결만 된다면 누구나 동시통역 AI 비서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구글이 모든 회사에 접속 권한을 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선 어떨까? 구글이 지금처럼 LG전자와만 손을 잡을까?

AI 비서가 최근 주목을 받는 건 크게 두 가지 배경에서다. 우선 음성인식 정확도가 2010년부터 5년 간 비약적으로 발전해 최근에는 95% 이상의 정확도를 보이고 있다. 언어는 인간 지능의 가장 높은 영역이다. 구글 같은 회사가 번역 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 기술 중 핵심인 머신러닝이 딥러닝이라는 분야를 중심으로 최근 몇 년간 크게 발전한 것도 AI 비서 서비스를 부추긴 요인이다. 머신러닝은 데이터로부터 규칙이나 특정 패턴과 같은 유의미한 정보를 기계가 스스로 찾아내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됐을 때 이 범주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식 출시된 국내 AI 비서 서비스는 삼성전자의 빅스비, SK텔레콤의 누구, KT의 기가 지니 등이다. 네이버는 자회사 라인과 함께 클로바라는 AI 비서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당분간 음성인식 스피커 웨이브로 일본 시장 공략에 주력할 예정이며, 카카오 아이도 아직 정식 출시를 하진 않았다.

카카오 사외이사인 최재홍 강릉원주대 멀티미디어학부 교수는 “올 하반기에 AI 비서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고 내년 초쯤 시장점유율 쏠림 현상이 생기면서 국내 기업 간에도 우열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교수는 “누가 시장 주도권을 잡을지는 2라운드 전쟁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음악을 들려주고, 뉴스를 알려주며, 농담처럼 재미있는 말을 단편적으로 해도 사용자가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앞으론 다를 전망이다. 쇼핑을 하거나, 금융 거래를 하는 등 좀 더 복잡하고 이종 기업 간 협력이 필요한 서비스가 사용자를 사로잡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보다 업그레이드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 회사의 AI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보면 이들 기업이 생각하는 AI 비서 서비스의 향방을 엿볼 수 있다. 구글 브레인팀 사령탑을 맡았던 앤드류 응을 영입했던 중국의 바이두는 그가 사임하자 내부인사인 왕하이펑 부총재에게 이 역할을 맡겼다. 구글은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와 딥러닝 개념을 창안한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를 영입했다. 페이스북은 힌튼 교수의 제자이자 딥러닝 전문가 얀 레쿤 뉴욕대 교수를 자사 AI 연구소 사령탑에 앉혔다. 이후 페이스북은 자사 메신저의 가상비서 서비스 ‘M’을 선보였다.

국내 움직임도 활발하다. 네이버는 김준석 파파고 리더를, 카카오는 김남주 카카오브레인 AI 연구총괄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준석 리더는 음성인식 기술 전문가로 LG전자에서 음성인식 개발을 하다가 2007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그는 AI 번역 애플리케이션(앱) 파파고의 핵심 기술인 인공신경망 번역 기술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의 김남주 총괄은 스타트업 자몽랩에서 감성챗봇, 강화학습, GAN(정답을 주지 않고 기계가 데이터에서 스스로 지식을 얻는 비지도 학습기술) 등 딥러닝을 연구하다가 올해 초 카카오브레인에 합류했다.

AI 책임자 교체도 활발

이처럼 국내외 IT기업들이 AI 사령탑으로 딥러닝 분야의 전문가를 내세운 건 우연이 아니다. 머신러닝 중에서도 딥러닝이 뜨고 있는 이유는 클라우드 서버가 대세가 되면서 데이터 양이 크게 늘어났고, 예전과는 급이 다른 수퍼컴퓨터가 엄청난 속도로 이를 처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기계학습에선 종종 데이터의 양이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데, 딥러닝은 데이터가 많을수록 학습력도 비례해서 정교해진다.

AI 비서 전쟁 1라운드는 비교적 평온했다. 앞으론 다를 듯하다. 어느 기업이나 AI 스피커 하나쯤은 팔게 될 올 하반기부턴 ‘진짜 비서’만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최재홍 교수의 말처럼 2차 서비스, 킬러 콘텐트에 성패가 좌우될 전망이다. 당장 삼성전자는 빅스비의 개발 사령탑을 교체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삼성전자 빅스비는 스마트폰에서 앱을 불러낼 수만 있고 앱 운용은 앱 개발사가 하게 된다”며 “카카오톡을 빅스비에 맞게 개발하거나, 빅스비와 우리 AI 플랫폼을 연동시켜야 하는데 삼성전자가 후자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의 협업도 이와 비슷한 취지다. 카카오 관계자는 “지금도 현대자동차·코멕스(아파트 비디오폰 제조사) 등과 협업을 하고 있다”며 “AI 플랫폼이 없는 기업에는 우리 AI 플랫폼을 빌려주는 형태로 협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합종연횡은 AI 비서 전쟁 2라운드가 정점을 이룰 내년 상반기까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스마트폰 제조업체에선 삼성전자가 자체 AI 비서 빅스비를 탑재했고, LG전자는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했기 때문에 서로 같은 진영이 되긴 힘들어 보인다. 이동통신 업계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과 KT가 서로의 제품과 서비스를 밀고 있기 때문에 연합은 어려워 보인다. 이들이 손을 내밀 곳은 포털이나 구글, 아마존 등과 같은 이종 업계 기업들이다.

AI 비서의 가장 큰 역할은 아직까진 음악 재생과 뉴스 듣기, 검색 등이다. 이 분야에서 앞서있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어느 진영과 손을 잡을지가 중요한 이유다. 카카오는 국내에서 연합세력을 결집시키는 반면 네이버는 해외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지난 7월 일본에서 음성인식 스피커 웨이브를 내놓았는데 당분간 일본 시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지난 1월 AI 연구소 격인 네이버랩스를 설립하고 6월 프랑스에 자리한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을 미국 제록스로부터 인수했다. 제록스가 1993년 설립한 유럽 최대 규모 AI 기술 연구소다.

“모두 망할 수 있다” 회의론도

인공지능 기술 자체가 크게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AI 비서 시장도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는 “모두 다 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AI 비서 시장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플이 2011년 시리를 만들었지만, 최근 홈포드를 냈다. 아이팟을 스피커에서만 쓰는 것이다. 애플이 AI 비서에 자신이 있었으면 스피커에 시리를 넣었을 것이다. 이 시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애플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애플이 조심하고 있다. 쉬운 시장이 아니다.”

1405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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