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우회축적과 분업의 심화 

 

김경준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대나무로 간단한 낚싯대를 만들어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어부가 있다. 하루 동안 잡는 물고기가 평균적으로 가족이 먹고 사는 분량일 경우는 매일 먹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조그만 배와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으면 훨씬 많이 잡을 수 있겠지만 배와 그물을 만드는 동안에 물고기를 잡지 못해 가족이 굶주린다는 문제가 있다. 어부에게는 현 상태 유지와 배·그물을 만드는 두 가지 대안이 있다. 배·그물을 만들기로 결정하면 공백기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물고기를 잡는 시간을 늘리거나, 조금씩 아껴 먹어서 잉여식량을 확보해 대처할 수 있다. 배·그물을 사용하니 낚싯대로 잡을 때보다 훨씬 많은 물고기를 잡게 돼 동일한 노동의 투입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잉여생산물이 늘어난다. 이처럼 도구를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을 ‘우회축적’이라고 한다.

대지는 자연의 선물이지만 농토는 우회축적의 산물이다. 자연 상태에서 씨를 뿌린 후 추수만으로 충분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땅은 드물다. 농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구획을 정리하고 사람과 농기구가 이동하는 농로가 필요하다. 저수지 등의 관개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 비옥한 농토에서는 높은 수확을 기대할 수 있기에 일단 농경이 시작되면 잉여생산물을 활용해 농토를 비옥하게 하고 새로운 농토를 개간하는 우회축적이 부단히 이어진다. 수렵과 채집 단계에서는 식량 조달의 불확실성이 컸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생활 특성상 휴대 가능한 최소한의 도구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만2000년 전에 시작된 농경생활은 식량생산의 예측성을 높여 대규모 우회축적이 시작됐고, 집단적 정착생활로 분업이 발달했다.

분업이란 교환을 의미한다. 대장장이가 철제 농기구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농기구를 먹을 수는 없기에 농기구와 식량의 교환은 자연스럽다. 수공업자가 만든 신발도 마찬가지로 교환의 범위에 들어가기에 물물교환의 형태로 필요한 자원을 교환하면서 공동체 내부의 효율을 높인다. 교환이 확대되면 공동체 외부와의 교환도 시작된다. 자급자족 수준이 높아도 내부적으로 모든 물자를 조달하기는 한계가 있고, 또한 계층 형성에 따른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사치품은 희소성이 핵심이기에 높은 가격으로 유입되는 외부 물품이 더욱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집단 내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분업은 점차 범위를 확대해 지역이나 국가 간 단계를 거쳐서 오늘날에는 글로벌 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리건과 같은 지역에 와서 나무를 베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또한 톱을 사용하려면 강철을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브라질로 날아가 안전모를 쓰고 광산에 들어가야 한다. 다음으로 피츠버그로 돌아와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 밖에 연필심과 지우개를 둘러싼 금속재질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시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로 떠나야 한다. 그 모든 여행, 화학과 공학은 물론 의사소통에 필요한 외국어 공부까지 마쳤다 하더라도, 우리는 멋진 그래픽으로 장식된 종이상자에 담겨 사랑을 받는 연필 한 자루를 13센트의 가격에 만들어낼 수 있을까?’- 토머스 프리드먼, [늦어서 미안해]

오늘날에는 사소한 물품인 연필조차도 제조방법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거대한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연필을 만든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용품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자원과 기능이 결합된 분업의 산출물이다. 심지어 매일 대하는 식탁에서도 글로벌 경제가 압축돼 있다. 아프리카 세네갈의 갈치, 북유럽 노르웨이의 고등어 등 생선에서 칠레의 포도, 필리핀의 바나나, 호주의 쇠고기, 스페인의 올리브 기름 등을 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분업의 심화는 사회·경제적 구조뿐만 아니라 개인적 삶의 양상도 변화시킨다.

과거 자급자족 위주 경제의 특성은 팔방미인이 많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낮고 소득이 적어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일을 시킬 여력도 없고, 또한 집짓기, 바느질, 요리 등 특정한 일만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수요가 없어서 사람들은 가정 단위로 자체적으로 여러 필요한 작업을 수행했다. 그래도 부족한 영역은 서로 돕는 품앗이 형태로 해결했다. 남성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지붕과 울타리를 수리하고, 때로는 병사가 되어 전장에 나선다. 여성은 농사일을 거들면서 요리와 육아, 베짜기와 재봉업무 등을 수행했다. 시장이 발달하고 분업이 심화되면서 달라졌다. 개인도 각자의 영역에 특화해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면서 분업이 더욱 발전했다.

오늘날 일정한 경제 수준에 도달한 지역에서는 일상적 삶에서도 정교한 분업이 이뤄지고 있고, 이는 계속 심화되고 있다. 예컨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20~30년 전에는 없었다가 새로 생겨난 직업이 많다. 대리운전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기사를 고용할 여유가 없는 중산층도 자가용을 보유하게 됐다. 술을 마신 날 저녁에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 다음날 차를 찾으러 식당에 가야 해서 번거롭고, 운전하면 음주운전이 되는 상황에서 시간제 기사인 대리기사라는 직업이 탄생했다. 오토바이 특송과 택배기사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보내는 화물량이 적었던 과거에는 우체국 소포만 있었지만, 온라인 쇼핑이 도입되면서 개인탁송 물량이 폭증하자 택배업이 생겨났다. 시내를 다니는 오토바이 특송도 빠른 시간 내에 물건을 전달하려는 수요에 대한 반응이다. 특히 IT분야 웹디자이너, 시스템 개발자 등의 직업은 1980년대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각자 자신이 종사하는 업종 주변을 둘러보면 직업의 부침이 실감날 것이다. 직업의 분화는 곧 분업을 통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나타내는 징표다. 각자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돈을 지불하고 구매해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직업의 종류는 1만2000개다.

옛날에 처음으로 서울 오는 시골 할아버지가 기차로 상경해 서울역에 내렸다. 커다란 대합실이 사람으로 가득하고, 역을 나서니 온 천지를 사람이 뒤덮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에 놀라 마중 나온 아들에게 물어 보았다. “얘야, 농사지을 땅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사냐?”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서로 뜯어먹고 삽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분업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는 이야기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08호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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