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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아파트로 본 재건축 층수 규제의 정치경제학] 49층 고집하다 ‘박원순 룰’에 백기투항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서울시, 공공성 내세워 아파트 35층 이하로 규제 … 사업 수익성보다 속도 택해

▎최고 49층 높이로 재건축을 추진하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가 층수를 최고 35층으로 낮춰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재건축 사업의 상징과도 같은 서울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2003년 재건축 추진위가 설립된 이후 14년째 추진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재건축시장에서 은마가 갖는 상징성은 작지 않다. 1970년대 말 강남 개발의 주역이자 상가 건물까지 거느린 대규모 아파트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초고층 아파트에 밀려 구식 아파트로 취급받을 때도 사교육 열풍에 힘입어 대치동 명당 자리의 위용을 굳건히 지켜왔다. 1970년대 이후 우리가 겪어온 경제개발과 주거·교육 환경의 변천사가 은마라는 이름 하나에 응축돼 있는 셈이다. 그런 이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그것도 초고층으로 재건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부동산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35층 재건축안 찬성 조합원 71%


49층(이하 최고 층수 기준)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하던 은마가 그러나 최근 두 손을 들었다. 초고층을 포기하고 35층 재건축을 추진한다. 서울시와 추진위는 2015년 말부터 5차례에 걸쳐 층수 조정을 위한 사전협의를 해왔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서울시는 도시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 근거해 35층 높이를 고수했고, 추진위도 49층 재건축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추진위가 10월 19~25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에서 ‘49층 재건축안’보다 ‘35층 재건축안’이 압도적(71%)으로 많았다. 전체 조합원 4803명 중 3662명이 참여해 2601명이 35층 재건축안을 선택했다. 기존 49층 재건축안을 선택한 조합원은 1061명(29%)이었다.

서울시가 ‘35층 규제’를 들어 초고층 재건축안에 번번이 퇴짜를 놓자 조합원들이 결국 손을 든 것이다. 추진위는 불과 두 달 전인 8월에도 49층 재건축안을 서울시에 내밀었지만 서울시는 이례적으로 ‘미심의’ 결정을 내렸다. 미심의 결정은 35층을 넘보면 들여다보지도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러자 조합원들은 49층으로는 재건축 사업이 더 나아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건축은 속도가 관건인 만큼 수익성보다는 속도를 택한 셈이다. 현재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조합원은 “2003년 추진위를 구성한 뒤 재건축 추진만 14년째”라며 “안 그래도 (사업이) 지지부진했는데 49층을 고집하면 또 10년 이상 공회전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마는 1979년 준공한 복도식 아파트로 지하 주차장이 없어 공터마다 차량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수압이 약해 물을 제대로 쓸 수 없는 데다 녹물이 떨어지고 난방도 열악하다. 그만큼 재건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은마가 49층을 고집했던 건 사업성 때문이다. 재건축은 건축 규모를 결정하는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지상층 전체 바닥 면적의 비율)이 수익성을 좌우한다. 기존 아파트의 용적률과 재건축 후 용적률 차이가 클수록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 분양 수입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일반분양 수입이 많으면 주민들의 사업비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나 은마아파트의 현재 용적률은 197%(일반3종주거지역)로 높은 편이다. 사업성이 그만큼 떨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은마는 초고층을 돌파구로 삼았다. 일부 용지를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해 해당 구역 용적률을 500%(일반3종주거지역은 300%)까지 늘리면 일반분양 분 물량을 늘릴 수 있고, 초고층으로 짓는 만큼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층 아파트는 일반 아파트에 비해 조망권과 희소성이 반영돼 분양가도 비싸고, 아파트 값도 주변보다 높게 형성된다.

실제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최고 56층짜리 래미안 첼리투스는 아파트 값이 3.3㎡당 평균 4800만원 정도로, 이촌동 평균(3043만원)의 1.6배 수준이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초고층을 포기한 만큼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추가분담금(새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조합원이 내는 돈)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은마는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여서 입주민 추가분담금을 정확히 따지기 어렵지만 부동산 업계에서는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49층을 포기한 만큼 추가분담금이 기존 계획 대비 최대 2배 가까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전용면적 76㎡을 갖고 있는 조합원이 재건축 후 전용면적 84㎡를 배정받을 경우 49층으로 재건축할 때는 2억원 정도일 추가분담금이 35층으로 하면 최대 3억~4억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은마와 비슷한 용적률 조건으로 재건축을 한 인근의 래미안대치팰리스(대치청실 재건축 단지)를 고려했을 때다. 대치청실은 76㎡에서 84㎡로 옮겨갈 때 2억원 안팎의 추가분담금을 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재건축 조합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35층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35층 규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4년 발표한 ‘2030 서울플랜’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박원순 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30 서울플랜’은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의 별칭으로 도시기본계획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18조에 의거해 각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수립할 수 있다. ‘2030 서울플랜’에 명시된 35층 규제는 ‘토지이용계획’의 ‘도시공간 구조를 고려한 높이관리’라는 항목에 있다. 이에 따르면 서울시 내 3종 주거지역의 주거용 건물 높이는 35층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35층인 이유에 대해 서울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한강변에 초고층을 허용했던 ‘한강변 공공성 재편 정책’ 이전에 심의를 통해 결정한 최고 층수”라며 “전문가·시민의 의견을 모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서울시가 올해 6월 발간한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라는 책에서도 “(35층은) 주먹구구로 나온 숫자가 아니다. 한강변 주요 조망 지점을 중심으로 배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적정 높이가 35층”이라며 “용적률 상한선(300%)을 적용했을 때 무리 없는 수준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조합원 추가분담금 부담 최대 2배로 커질 듯

높이를 규제하는 이유에 대해 서울시는 도시 경관을 보호하고 한강 조망권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한정된 용적률 안에서 건축물을 지으려면 층수 제약이 있다. 그런데 층수 규제를 두지 않자 한강변이 고층 아파트 개발로 인해 병풍처럼 차폐된 경관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조망권과 경관에 대한 정치적 관점이 깔려 있다. 조망권이나 경관은 특정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인데 고층 아파트가 늘어나면 고층 아파트에 사는 일부 사람들만 조망권을 누리게 된다. 서민이 누릴 수 있는 조망권은 훼손된다는 것이다. 경관 역시 이들로 인해 획일적이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규제가 오히려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양산해 도시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서울시는 “일반 주거지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되 강남·여의도 등 도심과 용산·잠실 등 광역 중심지는 비주거 용도를 포함하는 복합 건물을 50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 뉴욕도 맨해튼에는 상업용 고층 건물을 허용하지만, 주거지인 브롱크스의 공동주택 높이는 최대 14층 안팎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조망권, 경관은 모두의 것”


▎2003년 재건축을 위한 은마 아파트의 예비안전진단 신청이 반려되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은마는 2010년에야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그럼에도 35층 규제는 계속해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은마처럼 조합원들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층수 규제에 반대하는 측은 이미 용적률 규제가 있기 때문에 35층으로 제한하는 것은 이중규제라는 주장도 한다. 건폐율(대지 전체 면적에서 건물 부지의 면적이 차지하는 비율) 규제가 있고, 용적률이 건폐율과 층수를 곱한 방식으로 계산되므로 이미 층수가 규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용적률은 도시 내 건물 밀도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기준이지 높이 규제가 아니다”라며 “지역적인 여건과 특성에 맞춰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가 35층 규제의 근거로 ‘2030 서울플랜’을 내세우자 층수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서울시의 또 다른 도시계획 가이드라인인 ‘2025 서울특별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이하 ‘2025 기본계획’)에 예외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025 기본계획’은 재개발·재건축 등 지역의 개발 사업에 관해 규정한 서울시의 도시관리계획이다. ‘2025 기본계획’에는 “정비계획 수립시 특별건축구역지정 등으로 인해 특별히 높이 완화가 필요한 경우 시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경우 재건축·재개발 부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 조항에 따라 높이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법정 최상위 도시기본계획인 ‘2030 서울플랜’보다 도시관리계획인 ‘2025 기본계획’이 앞설 수 없으므로 강남 재건축 단지도 35층 규제의 예외로 둘 수 없다”고 설명한다.

‘2030 서울플랜’의 위상에 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이석주 자유한국당 서울시의원은 “‘2030 서울플랜’ 작성에 참여했다고 알려진 100여 명 모두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뿐만 아니라 100여 명의 전문가가 만들었다고 해서 ‘헌법’이라고 규정하기도 모호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쨌거나 서울시의 35층은 강경하고, 재건축 아파트의 대표격인 은마까지 두 손을 들면서 다른 재건축조합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 단지들은 은마아파트를 위시하며 ‘35층 이상 건축 고수’를 선언하고 지속적으로 35층을 넘는 개발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해 왔다. 부동산개발회사인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내야 하는 단지는 은마를 따라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단지는 계속해서 35층 이상 규제에 반발할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재산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논란이 이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1408호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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