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반복되는 국가의 흥망성쇠 패턴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숙명이듯, 국가의 흥망성쇠도 불가피하다. 개별 인간의 삶과 특정 국가의 운명은 각자 나름대로의 전개 과정을 겪게 마련이지만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저명한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최근작 [다시, 국가를 생각한다]에서 국가 단위에서 경제적 번영에서 출발해 정치·사회적 요인으로 쇠퇴기에 들어서는 패턴을 찾으려 했다. 그는 국가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5년 단위로 두 번 연속 2.5% 이상을 기록할 때 출산율은 대체율(여성 한 명당 2.5명의 자녀)을 밑돌게 된다는 현상으로 시작되는 패턴은 ‘출산율 저하, 애완동물 선호도 증가, 공무원 증가, 국가부채 급증’으로 이어지고 ‘근로윤리의 쇠퇴와 애국심의 소멸’로 연결되면서 파국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 로마제국, 나폴레옹 이후의 프랑스와 빅토리아 시대 영국 등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고 오늘날 우리나라도 유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문명 단위에서는 중심과 주변이 순환하고 이동하면서 부침하는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주변과 중심이 교차한다. 서양의 경우 메소포타미아에서 형성된 초기 수메르 문명의 도시가 중심이었고, 오늘날 대륙의 명칭이 이를 뒷받침한다. 4000여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최초로 통일한 아카드 왕국의 언어로 해 뜨는 동쪽을 의미하는 아슈(Asu)에서 오늘날 아시아(Asia)가 유래했고, 해 지는 서쪽인 에레브(Erebu)가 유럽(Europe)의 어원이 됐다. 아카드가 쇠퇴하면서 주도권이 바빌론·메디아로 이어지다가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페르시아가 평정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기준으로 변방의 해적무리에 불과했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이집트나 소아시아 해안을 노략질하며 쌓은 항해술을 지중해 교역에 활용해 문명을 발전시켰다.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 페르시아와의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면서 지중해 무역을 주도하게 되고,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로 원정해 패망시킨다. 이후 그리스의 시각으로 변방의 야만인에 불과했던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북아프리카, 서유럽을 평정하고 제국을 이룬다. 역시 로마의 입장에서는 변방에 불과했던 게르만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멸망하고 중세가 이어지다가, 12세기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스페인의 짧은 전성기를 지나 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 등으로 문명의 주도권이 이동한다. 서양사의 큰 흐름을 보면 발전된 중심 문명에 편입돼 선진 문물을 흡수하고 재창조해 역량을 키운 주변부가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는 순환이 이루어졌다.

중국도 고대 이래 황하 유역을 주무대로 주변과 중심의 주도권 순환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황하 유역에서 형성된 은나라·주나라의 봉건질서에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남쪽 변방의 이민족 초나라·오나라·월나라가 편입되고, 서쪽 변방에서 이른바 오랑캐 취급을 받았던 진나라가 강국으로 부상해 중국을 통일한다. 진나라를 이은 한나라의 400년 왕조가 중국의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멸망한 후 혼란기를 거처 한족과 이민족의 혼혈인 수와 당이 들어서면서 세계 제국으로 도약한다. 이후 전개된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이민족 간의 주도권 쟁탈전의 반복이면서 주변과 중심이 교체되면서 융합되고 발전하는 과정이다.

둘째, 개방성과 보편성에 따른 부침이다. 일단 중심으로 부상한 문명이나 국가가 지속적으로 재창조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협소한 사고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민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자국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지역과 혈연, 종교 등에 기반을 둔 강력하고 단일한 통합기제가 필요하지만, 일단 강자가 되어 중심으로 부상한 이후에는 정복자로서 군림하기보다는 편입된 다른 공동체나 민족을 포용하는 개방적인 플랫폼의 형성 여부가 국가의 지속성을 판가름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군사력으로 상대를 제압해 일시적으로 패권을 차지했더라도 통치할 능력이 없는 나라는 단기간에 쇠퇴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대표적인 사례이고 스파르타가 주도권을 확보한 이후의 그리스도 마찬가지이다. 스파르타는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에 승리한다. 그러나 전사집단 스파르타는 그리스 세계를 주도할 정치·사회적 역량이 부족했고, 30여년 만인 기원전 371년 또 다른 전사집단 테베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이후 그리스는 쇠퇴기에 들어선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막대한 금은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스페인은 대항해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서유럽 최대의 부국으로 떠올랐지만 영광은 짧았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이베리아 반도에는 다민족·다문화의 전통으로 유대교·기독교에 관용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에 유대인 추방령을 내려 2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떠났고 이어서 농업을 담당하던 이슬람교도까지 추방하면서 산업 전반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1556년 독실한 가톨릭 신자 펠리페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유대인과 이슬람은 물론 개신교도까지 탄압하고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면서 스페인은 본격적인 몰락으로 들어섰다. 종교 탄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페인의 국외 영토였던 네덜란드는 독립했고, 이어서 영국과의 해전에서 무적함대까지 패배하자 스페인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스페인이 추방한 유대인은 당시 관료·의사·상인·금융업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고, 이들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종교적 관용정책을 채택한 네덜란드, 영국과 북부 독일로 이주했다. 이들은 스페인 이후의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근대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한다.

무력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 기반에 선진화된 문화와 법, 제도 등의 소프트파워를 갖춘 국가는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고 후대에도 유무형의 자산을 남겼다. 이런 국가들의 소프트파워의 원천이 바로 포용성과 개방성이다. 다양한 문화와 사고방식, 종교를 포용하고 흡수해 보편적 가치를 형성하고 이를 실제 통치에 적용해 다민족·다문화가 공존하는 안정적 공동체로 운영할 수 있었다. 영원불멸이 없는 인간 세계에서 이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이들이 운영했던 법과 제도, 보편성과 개방성이라는 사회·문화적 유전자는 후대에 전승됐고,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그 유산이 남아 있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09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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