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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특수고용직 처우 개선 논란] 각양각색 신분 탓에 십인십색 목소리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산재·고용보험 가입 의무화, 노동3권 보장이 쟁점...근로지성 인정 범위 두고도 이견

노동 시장의 주체는 크게 둘로 나뉜다. 고용하는 사람과 고용되는 사람, 고용주와 근로자다. 그런데 이 둘에 속하지 않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다.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골프장 캐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근로 환경과 조건은 비정규직에 가깝다. 이와 달리 법적 지위나 신분은 1인 사업자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국회도 나서기 시작했다. 경영계는 물론 반대 방침이다. 일부 특수고용직도 반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의 애매한 신분과 처우만큼 논란의 실타래도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사진 : GETTY IMAGES BANK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택배기사(지입차주·대리점주 제외)의 노조 설립이 허용됐다. 고용노동부는 11월 3일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관련 판례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전국택배연대노조가 설립신고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해 노조 설립 신고증을 교부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택배기사가 지정된 구역에서 사측이 정한 배송 절차와 요금에 따라 지정된 화물을 배송하는 등 업무 내용이 사측에 따라 지정되는 점을 고려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택배기사가 사측이 작성한 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근무시간이 정해져 택배회사 또는 대리점으로부터 업무 내용·수행과 관련해 지휘·감독을 받는 점, 사용자 허가 없이 유사 배송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

택배기사뿐 아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화물차 운전자 등 이른바 특수고용직의 고용·산재보험 가입과 노조 설립 논의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가시적인 변화가 나온 건 지난 10월 17일 고용부가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노동3권을 위해 법률을 제·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을 수용하면서다.

앞서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노동자) 보호 방안에 대한 의견 표명’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률 조속한 제정, 휴일·휴가 보장, 노동3권 보장, 4대 보험 보장’ 등을 권고한 바 있다. 고용부는 이를 일부 받아들여 올해 하반기 특수고용직 실태조사를 하고, 노사정 및 민간전문가 간 사회적 논의를 통해 법률 제·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인권위에 회신했다.

고용부의 인권위 권고안 수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용부는 그동안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2월 “특수고용직의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 출범 이후 특수고용직에 대한 산재 및 고용보험 적용 확대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명시하고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3권 보장 및 사회보험 적용 확대를 위한 법안 등이 다수 발의돼 논의가 활발할 전망이다.

고용부, 택배기사 노조 설립 허용


특수고용직은 일반 노동자처럼 사업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수입을 얻지만, 법적 지위는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직종을 말한다. 근로자와 유사하게 일하지만, 형식상으로는 ‘회사-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이 아니라 ‘사업자-사업자’ 사이의 용역·도급·위탁·위임계약 등을 한다. 예를 들어 보험설계사가 특정 회사와 위탁계약을 하고 상품을 판매하면서 출·퇴근 등에 구속을 받지 않고 자영업자처럼 일하는 식이다. 계약 형태와 업무수행의 내용과 방법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일한 만큼 소득을 번다는 점, 회사의 지시와 감독이 없다는 점에서 노동법상의 ‘근로자’와는 구별된다.

계약의 특성 때문에 특수고용직은 정해진 보수를 받기보다는 실적과 연동해 수당이나 보수를 받는 업종이 많다.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인터넷 설치기사, 화물차 운전자, 택배·퀵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특수고용직으로 언급된 직종은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골프장 캐디 등 4개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 들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산재보험 규정상으로도 위 4개 직종 외에 택배기사와 퀵서비스 기사가 공식적인 특수고용직에 포함됐다. 이 밖에 대리운전사, 야쿠르트 아줌마 같은 각종 상품 외판원, 애니메이터 등과 같은 전문직 프리랜서 등으로 특수고용직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특수고용직의 확산 이유는 비정규직 증가 배경과 비슷하다.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른 비정규직이나 1인 사업자 아웃소싱 같은 비전형적 고용 형태의 확산과 기업의 경영 전략 측면이다. 시장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기업들은 정규 고용을 비정규 고용으로 대체하거나, 고용 관계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직·간접적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하거나, 특수고용직처럼 기존 고용을 일종의 하도급계약으로 전환해 인건비에서 사업비로 지출항목의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다. 인권위의 ‘민간부문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는 “오늘날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기업들이 경직성 인건비를 사업비로 전환해 기업 지출의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플랫폼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모바일을 통해 노동력 거래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대가가 지급되는 또 다른 형태의 특수고용직도 등장하는 추세다.

통계청 49만 명 vs 인권위 229만 명


특수고용직 종사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규모는 파악이 어렵다. 특수고용직의 정의 자체가 다소 애매한 탓에 어느 직종까지 포함시키느냐에 따라 추정치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특수고용직 종사자는 49만3000명이다. 2002년 이후 규모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2년 77만2000명에서 2003년 60만 명으로 떨어졌고, 2012년부터는 2015년에는 5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이와 달리 인권위는 임금노동자 외에 자영업자로 구분돼 있는 특수고용직 종사자까지 포함, 2014년 기준 국내 특수고용직 종사자가 229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기준 전체 취업자 가운데 8.9%가 특수고용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의와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은 특수고용직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들이 회사의 지휘나 감독을 받는 등 현실적으로는 근로자와 유사하게 일을 하면서도 형식상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등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특수고용직은 근로시간 규제가 없고, 휴게·휴가도 보장되지 않는다. 1년 이상 근무하면 받아야 할 퇴직금도 없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9개 직종(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 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을 제외하고는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이들도 최근 고용부가 택배기사 노조를 허용하기 전까지 노동조합 결성이나 단체교섭 요구, 쟁의행위 같은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특수고용직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핵심은 특수고용직을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보고 노동권을 부여할 것인가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2006년 권고를 통해 “고용관계의 원칙은 ‘사실 우선의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고용관계의 존재에 대한 판단은 노동의 수행, 노동자에 대한 보수의 지급과 관련된 사실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사실과 상반되는 계약형태, 당사자 간 합의된 바와 상관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법원 판례도 이 기준에 따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2006년 이전까지는 판단 기준을 사용자의 ‘구체적·개별적 지휘·감독’이라고 규정했으나, 이후로는 ‘상당한’ 지휘감독으로 넓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제도적 차원에서는 특수고용직이 여전히 권익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산재·고용보험 가입 의무화와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인정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특수고용직 문제는 1990년대 후반 처음 불거진 후 20년 간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이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돼왔다. 하지만 2008년 4개 특수고용직에 산재보험 가입을 허용하고 이후 2012년 2개, 지난해 3개 직종을 추가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그나마 특수고용노동자 자신이 보험료 절반을 부담해야 하고, 본인이 원치 않을 경우엔 보험에 들지 않을 수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고용부가 2015년 특수고용직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채 업종별 표준계약서를 보급하는 데 그쳤다. 국회에서도 다양한 법안이 발의 및 폐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실을 맺지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

문제는 특수고용직이라도 직종별로 업무환경과 수입 등이 천차만별이라 일부는 근로자에 가깝고 일부는 자영업자에 가깝다는 데 있다. 직종이 워낙 다양하고 같은 직종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직종별로 근로자성 인정 여부나 범위의 문제를 두고 첨예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입법 과정에서 혼란이 예상된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고용직 전반을 보호하는 입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들 가운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될 수 있는 사람도 많은데, 직종 전체를 특수고용노동자로 규정하면 ‘2등 노동자’를 만들 수도 있어 법률 제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의 근로자화를 반대하는 입장의 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특수형태종사자 내에 상당히 다양한 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세분화해 그들 중 보호 필요성이 있는 그룹과 없는 그룹 등으로 나누어서 접근을 달리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직 종사자가 산재보험 기피하기도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한 기준을 정해 포함되는 특수고용직 종사자에게 일괄적으로 새 규정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일부 직종에만 적용한 후 점차 그 범위를 확대시킬 것인지도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고용·산재보험 가입과 노조설립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특수고용직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할지, 기존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을 개정해 근로자 개념에 특수고용직을 포함시킬지를 두고도 이견이 있다.

특수고용직 종사자 사이에서도 직종과 조건에 따라 입장이 크게 갈린다. 대표적 특수고용직인 보험설계사의 경우 보험인 권리연대노조 등은 지속적으로 노동3권 보장을 촉구해왔지만, 영업성과가 좋은 설계사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보험설계사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소득의 3.3%만 사업소득세로 내면 된다. 그러나 근로자로 인정되면 소득 수준에 따라 6~40%의 근로소득세율을 적용 받는다. 보험 업계는 보험설계사의 4대 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경우 보험사의 추가 부담액이 연간 6037억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부담 때문에 정부 방안이 오히려 해고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게 특수고용직의 근로자화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특수고용직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이후 정책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거리다. 가령 문제로 지적되는 저조한 산재보험 가입률이 원인은 특수고용직 당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보험료의 절반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소득 감소를 우려해 산재보험 가입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산재보험료를 ‘세금’으로 인식하고, 직종 특성에 맞춰 보장성이 높은 민간 상해보험을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 2013년 노사정위원회의 ‘비전형근로자 보호방안연구위원회’에서도 “고용보험 역시 이미 자영업자로서 자율적인 가입 자격을 부여했는데도 수요가 낮은 상황에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김창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제3의 객관적인 기관을 선정해 4대 보험에 대한 정확한 설명과 함께 당사자의 분명한 수요를 확인한 후 4대 보험 확장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409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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