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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급등한 제약·바이오株 그 끝은…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90년대 중소형주 열풍 이끈 자산주, 환경·신물질 관련주, IT주 결국 폭락

▎사진 : GETTY IMAGES BANK
경험은 세상을 판단하는 축적된 힘이지만, 변화를 읽는 데에는 걸림돌이 된다. 주식시장에서도 그렇다. 바이오 주식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과거 중소형주 행태, 특히 고점 이후 급락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이번 바이오 주식 상승을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고 있다. 그 때문에 일찌감치 바이오에서 손을 떼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경험이 수익을 가로막았지만, 앞으로는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난 30년 간 중소형주가 시장을 흔들었던 때의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5년 자산주가 갑자기 상승했다. 2년 반 동안 계속된 중소형주 강세의 시작이었다. 재무제표에 미처 반영되지 않았거나 과소 반영된 자산을 찾아내 이를 주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자산주의 상승 논리였다. 삼부토건이 첫 주자였는데, 보유하고 있는 호텔의 가치가 장부가보다 높은 게 재료였다.

중소형주 강세의 시작 자산주 돌풍


1996년에 중소형주의 대상이 확대됐다. 이때 나온 게 환경 관련주다. 96년에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에 따라 환경오염물질 배출 기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환경 부문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텐데, 이런 필요성 때문에 환경산업이 기업의 성장전략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96년 한 해 가장 활발한 테마였는데, 수질·대기오염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종목이 상승 대열에 합류했다. 중요하게 거론됐던 기업만도 83개로 전체 상장기업의 12%가 될 정도였다. 어지간한 기업치고 환경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환경 관련주와 함께 부상한 게 생명공학과 신물질 관련주다. 이 주식들이 중간에 변화를 거쳐 지금의 바이오 테마로 발전했다. 20년 전 우리나라 생명공학은 시장 규모가 작고, 기술 수준도 저급했다. 간단한 기술로 생산이 가능한 예방약과 진단약, 항생제가 제품의 주를 이룰 정도였다. 전체 기술 수준이 선진국의 40~60% 정도였는데, 생명공학기술을 탐색기술, 개량기술, 생산기술로 나눌 때 생산기술만 선진국 수준에 접근했을 뿐 개량과 탐색기술은 선진국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가 생명과학 주식이 부상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정부는 2000년까지 생명공학 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높이고, 21세기 전략 수출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법과 지원책이 만들어졌는데 주식시장에서는 2년이 지난 후부터 반응이 나타났다. 생명공학 테마는 신약 개발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면서 상승해 96년에는 중소형주 장세를 이끄는 핵심 업종이 됐다. 해당 업체 중에서는 전통적인 제약사보다 새로운 의약품 개발 회사의 주가가 더 크게 올랐다. 현재 기업 실적보다 성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때문이었다. 96년 한 해 동안 주가 움직임을 보면 종합주가지수가 21.4% 하락한 반면 의약업 지수는 23.5% 상승할 정도였다.

96년에 신약과 함께 주식시장에 바람을 불러일으킨 또 다른 테마는 신물질 개발이다. 환경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새로운 소재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을 만든다는 개념이었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었다. 가장 성공적이어도 몇 년 후에나 상품화가 가능한 것을 당장 개발·판매가 되는 것처럼 포장해 주가에 반영했다. 특별한 이론적 배경도 없고, 특허를 출원 중인 수준에 불과해 검증도 되지 않은 물질이 재료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시간이 지나 정리해보니 당시 얘기되던 것의 대부분이 실제 수요자에 의해 검증되기보다 종이에 의한 검증으로 끝난 것 같다. 주가를 유지할 수 있는 어떤 힘도 신물질이란 테마가 제공해 주지 못한 것이다. 재미 삼아 당시 얘기됐던 신물질 몇 개를 살펴 보면 세프라인이란 주방기기 생산 업체의 주가가 ‘세계 최초로 초전도 냄비 관련 특허 출원 중’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배 이상 상승했다. 신동방이라는 음식료 업체의 주가도 무공해 산업용 ‘물’을 개발하고 있다는 얘기 하나로 2만원대에서 5만원대로 올랐다.

2년 동안 주식시장을 흔들었던 중소형주는 97년 마지막 상승과 폭락을 겪는다. 직접적인 계기는 외환위기였다. 위기 발생 전에 이미 약세로 기울기 시작했던 중소형주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폭락했다. 상당수 종목이 열흘 가까이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음에도 매수자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대단한 재료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돼 주가가 올랐던 종목이 가격이 하락하면서 재료가 소멸돼 버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결국 재료는 실체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2000년, 그 유명한 닷컴 열풍이다. 세계적인 IT 버블과 벤처 열풍, 인터넷 기업이 중심이 된 닷컴 열풍까지, 여기에 10%에 달하는 경제 성장이 더해지면서 전례없는 중소형주 강세가 나타났다. 닷컴 기업들이 코스닥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시가총액이 거래소의 웬만한 대기업 계열사 전체를 합친 것보다 커져 ‘닷컴 신드롬’은 영원할거란 전망이 의심없이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이 열풍의 배경에도 정부가 있었다. 대기업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낙인 찍히자 정부는 경제를 끌고 갈 새로운 주체를 찾게 됐다. 이때 선택된 게 벤처였다. 99년 정부가 벤처 살리기의 일환으로 코스닥 등록 요건을 완화한 데다, 증시마저 활황을 보이자 코스닥시장은 ‘벤처기업의 꿈의 장터’가 됐다. 시장에서 이런 투자가 먹혔던 건 닷컴을 포함한 IT기업들이 지금은 적자 상태지만, 앞으로는 선발 주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독점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전망했기 때문이다.

2000년 중소형주 장세 역시 폭락으로 마감됐다. 나스닥 시장이 5000을 돌파한 후 수익모델 논쟁에 휩쓸리면서 연말에 3000으로 떨어졌다. 4월 14일에는 하루 사이에 9.7%라는 기록적인 하락이 발생하기도 했다. 코스닥 역시 2000년 초 3000에서 연말에는 고점의 6분의 1 수준인 500으로 내려왔다. 기업은 더했다. 우량한 회사로 평가받던 다음커뮤니케이션마저 최고 주가 때 5조원이었던 시가총액이 2000년 말 1800억대로 주저앉았다.

셀트리온 3개 회사 시가총액 현대차보다 많아

이번은 바이오다. 셀트리온 3개 회사의 시가총액이 38조원이 됐다. 현대차의 시가총액보다 많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한미약품을 제외한 40개 거래소 제약사의 시가총액이 22조원이다. 다 모아봐야 셀트리온 한 회사만큼도 안 된다. 상장 후 1년도 되지 않은 신라젠의 시가총액이 장중 한 때 한미약품보다 커졌다. 한달 전만 해도 한미약품은 우리나라 바이오와 제약회사 중 현재 이익은 물론 성장성까지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히던 회사다. 기업에 대한 판단과 주식의 선택이 다른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건데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바이오 주식 상승에 힘입어 코스닥시장이 크게 올랐다. 연초 이후 상승률만 보면 거래소와 격차가 없어졌다. 코스닥 주가 상승의 단초는 거래소시장이 제공했다. 반도체 주가 급등으로 거래소시장에서 투자 종목을 찾기 힘들게 되자 매수가 시장을 뛰어넘어 코스닥으로 이동한 것이다. 때마침 바이오 대형주의 주가가 급등했고, 이를 계기로 시장이 바이오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모든 가격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지만, 상식과 맞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다. 지금 바이오 주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그렇다. 투자자들이 현재 주가 움직임이 상식에 맞는 걸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주가가 위험해 질 수 있다.

1411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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