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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행동과 각인효과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알에서 갓 깨어난 아기 오리는 처음 본 물체를 엄마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따라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1903~1989)는 1937년 인공부화시킨 기러기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자신을 엄마로 여기고 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을 관찰했다. 오리·거위·까마귀 등도 동일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조류들이 태어난 후 일정 시간 내에 접한 물체를 엄마로 인식하는 현상을 ‘각인(imprinting)’으로 명명했다. 그는 동물의 행동에서 본능과 학습을 분리해 접근하고 분석한 비교행동학의 창시자로 인정받으면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본능은 학습되지 않은 행동을 의미한다. 인간의 행동도 근본적으로 본능과 학습의 조합에 근거한 섬세하고 정교한 반응이고, 출생에서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단계별 초기 입력에 따라서 반응체계가 형성된다.

중국 삼국시대가 배경인 삼국지의 주요 인물로 유명한 조조(曹操, 155~220)는 장남인 조비(曹丕, 187~226)를 후계자로 삼았다. 조비는 껍데기만 남아있던 한(漢)왕조를 폐하고 위(魏)나라를 개창해 황제자리에 올라 위나라 문제(文帝)가 된다. 그는 “삼대(三代)에 이른 가문의 어른이 되어야 올바로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법을 안다(三世長者知服食)”고 언급했다. 조조가 200년의 관도대전에서 화북지역 전통의 강자 원소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53세인 207년에 화북지방을 평정하던 시기 조비는 10대 중후반의 나이였다. 부친 조조가 대업을 일으키면서 조비는 젊어서부터 자연히 술과 음식, 의복, 서화 등에서 최고급품을 접하고 즐기며 자연히 안목을 갖췄다.

하지만 유년기를 지난 이후 부귀해졌기에 특히 입맛에서는 한계를 느꼈다고 회고한다. 조조의 집안이 화북의 전통적 명문 원소, 양자강 이남의 맹주 손권 등 전통의 명문세가와는 격차가 컸기에 조비의 술회는 유년기 형성되는 입맛과 취향에서 높은 안목을 지니려면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대에서 입신출세해야 유년기부터 좋은 음식을 접하면서 입맛이 섬세하게 발달된다는 의미이다.

70여년 전 미국 남부 아칸소 소도시 호프(Hope)에 살던 10대들인 윌리엄 블라이드 3세와 버지니아 캐시디가 가정을 꾸린다. 가난한 남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다가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러 인근 대도시인 애틀랜타로 간다. 중장비 외판원으로 취직해 고향에 있는 임신한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렌터카를 몰고 토요일 밤 고속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3개월 후인 1946년 8월 19일 유복자인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는 남편의 이름을 따서 윌리엄 블라이드 4세로 이름을 짓는다.

20대 초반에 혼자된 여인은 호구지책을 위해 병원에 일자리를 얻었고 1950년 자동차 판매상인 로저 클린턴과 재혼했다. 아이의 이름은 윌리엄 클린턴으로 개명된다. 재혼한 남편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가난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빌 클린턴은 학교에서 성적, 미식축구, 음악 활동 등 다방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특히 고교 졸업반이던 1963년 우수 학생으로 선발돼 백악관을 방문, 존 F 케네디를 만났다.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아칸소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어린 시절 가난한 시골과 흑인 빈민구역에서 성장한 클린턴이 가장 즐겼던 음식은 길거리 패스트푸드였고, 마음을 터놓는 가까운 친구 중에는 흑인이 많았다. 흑인들과 교감이 뛰어났던 클린턴이 치른 모든 선거에서 흑인 지지율은 80%를 넘었다. 대통령이 되었지만 백악관에서 세계 정상급 셰프들이 차리는 최고급 요리가 무언지 허전했던 대통령은 보좌관에게 길거리 햄버거, 감자칩과 콜라를 사오게 해서 즐겼던 일화로 유명하다. 정통 프랑스 요리사였던 백악관 수석 셰프는 클린턴의 입맛에 맞는 냉동 식재료와 토마토 케첩의 사용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반대하다가 해고됐다는 후문도 남겼다.

사람들은 성장 단계에 따라서 일정한 영역에서 각인이 된다. 입맛은 이유식에서 사춘기까지 먹었던 음식에서 결정되고, 음악·의복 등 문화적 취향은 사춘기에서 20대 초반까지 유행한 사조에 지배를 받고, 세계관은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접했던 가치체계에 영향을 받는다. 영역별로 초기 입력된 기억과 경험이 기본적 틀을 규정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유아기에 외국으로 입양돼 성장한 사람의 입맛과 취향은 입양된 그 지역의 현지인과 동일하다. 70대 어르신들에게는 젊은 시절 유행했던 트로트가 각인돼 현인·남인수·백년설 등 1950~60년대 가수의 노래가 음악의 원형질을 이룬다. 50대에 들어선 7080세대들은 포크와 발라드 풍의 가요와 함께 나이가 먹는다.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기간에 유행한 음악이 평생의 취향으로 자리잡기에 ‘가수는 팬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현상이 생겨난다. 세상을 보는 관점, 즉 세계관도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10여년 간접했던 학문 분야, 사고방식 및 시대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 시기에 형성된 가치관은 30대 이후 평생 근간이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100%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은 없고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에 20대에 형성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반복 재해석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각인효과의 영향으로 형성돼 즐기는 음식과 음악은 개인적 취향의 영역이지만 세계관과 가치관은 인생을 좌우한다. 성장기에 형성된 왜곡된 세계관과 가치관은 시간이 흘러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 추상적 관념을 기반으로 형성된 세계관과 가치관이 숙성되려면 현실적 경험이 쌓여야 한다. 사회에 진출해 직업을 가지고 과거 학창시절 자신이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선험적으로 접근했던 부분을 반추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유년기 입맛처럼 사회생활도 초기 입력값이 기본 바탕을 좌우한다. 비록 능력이 뛰어나도 가치관이 왜곡되어 있는 사람은 조직을 퇴보시키는 유능한 썩은 사과가 되게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직원 교육과 오리엔테이션이 상당히 중요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새내기들이 시장경제의 본질, 기업의 가치와 역할, 조직생활의 기본자세에 대해 처음에 올바른 관점을 가져야 미래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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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호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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