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빠른 사고 늦은 사고 

 

김해동 비브라운코리아 대표

성선설과 성악설은 역사 이래 가장 뜨거운 논쟁 주제 중 하나였지만 요즘은 시들하다. 진화심리학, 뇌 인지과학 발전 등의 결과다. 인간은 선하게도, 악하게도 태어나지 않았다. 단지 생존하기 위해 태어났을 뿐이다. 나의 행위가 남에게, 그리고 다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겪으며 진화한 인간의 뇌 속에 거울 뉴런이 생겨, 남이 슬프면 나도 슬퍼지고, 남이 좋으면 나도 좋아지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타적 행위가 자신을 위하는 이기적 행위임을 깨닫고, 선하게 처신하게 된다.

결국 선과 악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타고난 성향과 살아온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인간은 이기적이고, 동시에 이타적이다. 인간의 감정은 무의식 중에 끊임없이 주위 상황을 살펴 이기적으로 반응할지, 이타적으로 반응할지 정한다. 이 반응에서 남들보다 자주 또는 심하게 이기적이면 악한 사람으로, 이타적이면 선한 사람으로 인상 지어진다.

예컨대 1이 가장 이기적이고 10이 가장 이타적 반응이라면, 내 감정 속에 1에서 10의 반응성향을 가지고, 어떤 상황이나, 어떤 상대에게 몇 번의 성향으로 반응할지 직관적으로 정한다. 상대가 나에게 2로 대하면 나도 2에 가깝게 이기적으로 반응하고, 상대가 9 카드를 들면 나도 착해 보이는 이타적 카드를 꺼낼 확률이 높다.

인간은 두 가지 다른 체계로 사고한다.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수렵시대에 생존하는 데 최적화된 무의식 중 감정에 따라 즉각 반응하는 ‘빠른 사고’와, 의식을 깨워 고도의 논리적 추론을 하는 ‘늦은 사고’ 두 가지다. 상대가 3으로 대하니 나도 3으로 대하거나, 혼을 내기 위해 2로 반응하면, 상대는 다시 2나 1로 반응하는 것이 빠른 직관적 사고 영역이다. 한편 이렇게 악순환으로 치달으면 내 생존에 무슨 도움이 될까, 혹시 상대의 3이 나의 선입관 이나 오해에 의해 잘못 받아들여진 것이 아닌가, 만약 내가 참고 5 또는 아예 6, 7단계로 호의를 베풀면 상대는 어떻게 반응할까 하고 다시 한번 의문을 갖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의식적 느린 사고의 영역이다. 이타적 판단을 할 때는 배외측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는데, 전전두엽은 곰곰이 생각하는 부위로 절대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

내 안에서 빠른 사고와 늦은 사고가 밀고, 당기며 힘겨루기를 할 때 나 자신은 심판을 자처할 수 있다. 두 가지 다른 사고체계를 인지하고 ‘아! 이 생각은 빨리 떠오른 걸보니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또는 이 부분은 의식적 추론에서 나온 의견이구나’라는 것을 그때그때 인지하고 사고의 심판이 되어 다시 한번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힘겨루기는 공평치 않다. 직관적 감정에 따른 빠른 사고를 거역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의도적으로 미래지향적 늦은 사고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바로 지혜가 아닐까? 이런 과정이 바로 지식사회에서 경쟁력의 원천으로 알려진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는 능력인 초인지(meta cognition)이고,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해탈로 가는 길이다.

1413호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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